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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Sep 06. 2024

한자가 드러나는 장면에서 씨말로 인식하게 돕기

두 아들과 함께 배우기

아이가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한자를 다루는 만화책 덕분에 아이가 한자와 친숙합니다. 그러한 호기심을 힘으로 하여 종종 아이에게 한자어를 쓰는 낱말을 경험하게 합니다. 우리말에는 한자어가 어근이나 어간으로 들어가 있는데,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최봉영 선생님은 이러한 쓰임을 '씨말'이라 정의했습니다.

이 글은 한자를 씨말로 쓰는 낱말을 활용해 학습을 유도한 두 개의 사건을 기록합니다.


규칙에서 진법으로

둘째 아이가 형에게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형, 여덟 시야! 아, 아이스크림, 이렇게 말하고 먹어야지. 아빠가 그랬잖아?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첫째 아이가 잘 시간이 되면 항상 잊어버렸던 아이스크림을 먹는다고 소동을 벌였기 때문에 제가 저녁 8시가 되면 아이스크림을 떠올리는 장면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인데, 옆에서 둘째도 보고 있었는지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제가 오후 8시를 말했는데, 둘째 아이가 오전 8시에 이를 환기시켰습니다.[1]


진법의 응용

하루는 아이들과 이야기하다가 큰 아이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하루는 24시간이고, 3 x 8 은 24인데 8시는 둘 밖에 없을까?


큰 아이는 흥미로워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시간은 12진법이라 그렇다고 말했더니 아이가 수긍했습니다. 대화가 이어진 후에 진법으로 설명하는 일이 적절했는지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이런 궁금증을 계기로 또 <밀당을 넘어서 준비하고 나를 비우기>를 실천하려고 위키백과를 찾았는데, 방대한 내용과 부족한 배경 지식으로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러다가 곧 구글 검색을 안 할 듯합니다>를 쓴 여파로 망설이다가 금세 제미나이에게 물었습니다.

내친김에 요일을 7진법으로 볼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제미나이의 답은 수학적 규칙성으로 인해 연결해 볼 수는 있지만 차이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진법과 주기의 차이란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민첩하게 우연을 활용하기

두 번째 사건은 아침에 둘째가 먼저 깨어나서 거실에 둘이 있을 때 밥솥이 내는 소리에서 시작합니다.

OO가 맛있는 백미 밥을 완성...


아이가 '아빠 밥이 다 되었나 봐요?'라고 말했습니다. 뒤이어 어떤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가 '백미'를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휴대폰으로 한자 사전을 찾아 '백미' 구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빠, 그런데 백이 들어간 말들은 거의 다 '흰 백'을 써요.


이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대신에 <사전 보는 습관 아이에게 물려주기> 루틴을 적용했습니다. 밀당 경험이 알려주었습니다. 제 눈앞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려면 '자기 주도'의 형태를 띠게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섬세한 관찰이 필수란 점을 말이죠. 아이에게 사전을 찾아보자고 제안하고, 아이가 받아들이는지 관찰했습니다.[2]

아이가 사전을 꺼내 펼쳤지만, 아직 'ㄱㄴㄷ'순을 모르는 지라 제가 끼어들어서 '백'자로 시작하는 부분을 찾아준 후에, 다시 아이가 아는 두 개의 백 자를 대비시켜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정 대로 백미를 찾아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제 기획 범위가 끝나고 나서 계속된 시간에도 아이는 사전에 관심을 뒀습니다. 그러더니 마당에 핀 버섯을 발견한 모양입니다. '보리 국어사전'을 산 보람을 느낍니다. 사전에 그림이 있어서 어릴 적 보던 백과사전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듯합니다.

아이가 사전의 그림을 보고 마당에 핀 버섯이 저도 모르는 '침비늘버섯'이란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내 대칭에 대한 묻따풀을 이어간 영향을 확인합니다. '아, 이 장면은 비대칭이군'하고 깨달은 것이죠. 평소 제가 대칭으로 여긴 순간들은 시공간을 기준으로 특정 지식을 다시 만날 때의 느낌을 표현한 듯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비대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제가 자주 활용하던 <민첩하게 우연을 활용하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만남을 기획하는 일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주석

[1] 나중에 이 글을 읽은 둘째가 장난치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2] 정확하게 말하면 간소한 형태로 '협상론적 세계관'을 활용해서 설득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지난 두 아들과 함께 배우기 2024 연재

(16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6. 숙제를 의무가 아니라 아이의 눈높이에서 문제로 정의하기

17. 무지를 여행지로 활용하고 체험 위주로 설계하기

18. 글감을 뽑아서 매듭을 짓는 방법을 일러주기

19. 아이가 슬퍼하는 순간에 감정 과학자로 변신하기

20. 큰 아이가 익히게 도운 나의 똘레랑스

21. 밀당을 넘어서 준비하고 나를 비우기

22. 둘째와 영어 책을 읽다가 감성 지능과 마음챙김도 배운다

23. 주기율표를 따라 그리는 아이에게 경험을 살짝 더하기

24. 우리 가족의 작은 역사가 되는 국기 놀이

25. 경험의 확장을 학습의 기회로 이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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