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과 함께 배우기
둘째 아이의 <축구에 대한 흥미를 학습에 활용하기>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유로2024가 한창이고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점을 활용해서 며칠 전에도 어휘력 훈련(?)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이때, 앞서의 잡지 탓인지 큰 애가 둘째는 어휘력과 문해력이 부족하다고 놀리곤 했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유로 2024 조별 리그 배정표를 보여주었습니다. 아직 한글에 익숙지 않지만 축구에 대한 관심사를 활용해서 글자를 따라서 쓰게 유도한 것이죠.
그러고 나서 16강 대진표를 보았습니다. 아이가 1등 하면 올라가는 것이냐 물었습니다. 출전 국가가 24개이기 때문에, 1,2위만 올라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를 설명하려고 수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흥미를 읽었습니다.
<항해하듯 아이와 밀당하기>를 잊은 대가가 이어졌습니다. 아이가 기분을 풀고 다시 진행하는 데에는 국기 그리기가 주효했습니다.
평소에도 이미 아이에게 국기 그리기는 익숙했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에 아이가 빙고를 재미있어하는 점을 활용해서, 다시 복습을 유도했습니다. 옆에서 아내가 낯선 이름을 말하는 아이에게 놀라며 반응해 주자 아이는 더 신이 났습니다.
아이의 흥미와 기억은 그대로 이어져 이후에 저에게 '여름'을 주제로 한 빙고를 몇 차례나 제안해서 함께 빙고 놀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앞선 경험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나서 페북에서 본 김영주 선생님의 <수업이 안 될 때>가 떠올랐습니다. 저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어 새기며 읽어 보았습니다.
가장 시사점이 큰 부분은 준비한 것이 많을수록 되려 '따라오는 이 아무도 없이 나 혼자 보여주기'가 될 수 있다는 성찰입니다.
준비한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한꺼번에 두 가지를 가르치겠다고 욕심을 내면 낼수록
나는 설명이 길어지고 아이들의 작은 질문을 쉽게 무시한다
<중략>
따라오는 이 아무도 없이 나 혼자 보여주기다.
그리고 가르칠 내용 준비와 배움이 일어나는 순간을 구분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글쓰기 수업할 때 나는 가르칠 내용 준비와 배움이 일어나는 순간을 구분해야 한다.
하지만 앎과 행은 늘 따로 논다.
이에 대해서는 저도 나름의 경험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바로 가르칠 준비를 하는 것은 인간성을 무시한 행동이기도 하고, 유기체적 교류에 대해 아직 무지한 탓이란 점을 깨닫습니다. 내가 익히는 것과 아이와 상호작용하며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인데, 급한 마음에 혹은 한 번에 두 가지를 해치우려는 마음이 작동할 때가 있습니다.
뒤이어 정교한 어휘들을 보면서 저도 업그레이드(?)를 하고 싶어 졌습니다.
배울 계기, 배움이 일어날 길, 배움의 꼴
나눌 계기, 나눔의 길, 나눔의 꼴을 잘 열어주는 것이 제대로 된 가르침이다.
그래서, 2년 전의 기록 <항해하듯 아이와 밀당하기>을 다시 봅니다. 당시 제 내면 묘사를 보니 교육이나 육아를 통해 스스로의 집착을 다스리는 수행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밀당을 넘어서 교류의 시간을 섬세하게 차려 보고 싶다는 욕심이 듭니다.
이런 욕심에 대해 필요로 하는 마음자세가 다시 김영주 선생님의 글에 있는 듯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나를 비워야 하는데
그래야 배움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참 쉽지 않다.
다행히 '소를 놓아주기'라는 힌트가 있습니다.
8. 아이들의 시선에서 보기
10. 아이들과 결정적 지식 공부하기
15. 아이의 문제 푸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도우미로 참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