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과 함께 배우기 2024
<몸으로 배우는 자기 주도 학습 도우미>에 이어 이번에는 아이가 주도한 한자 공부에서 촉진자 역할을 한 내용입니다.
이야기 전개에 앞서 입시 공부의 '자기 주도 학습'과 구분을 위해 제가 말하는 '자기 주도 학습', 그것도 6세의 어린 아들[1]에게 적용하는 특징을 나열해 봅니다.
주제를 아이가 정하게 한다 (아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내용을 다룬다)
아빠(선생)는 진도를 목적으로 하기보다 아이의 부족한 경험을 채우는 역할로 함께 한다.
<새로운 운칠기삼(運七技三) 활용법>에서 인용했던 '트리거'란 표현이 있습니다.
사뭇 다른 뜻으로 트리거를 말하려 하는 참이라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뜻이 쓰였는데, 네이버 사전에서 가장 비슷한 풀이를 가져옵니다.
경험이 부족한 아이에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요인들을 활용하면 자기 주도 학습의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트리거는 아이의 삶 속에서 작용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라 관찰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글로 쓰려는 경우도 의도한 트리거가 아닙니다. 도리어 트리거작동을 발견했다고 봐야죠.
물론, 의도적으로 트리거가 될 만한 것을 찾으면 시험하기도 했습니디. <그리스 수학의 번영 (上)>를 쓰면서 읽은 <수학의 역사> 내용 중에서 '삼각수'는 아이가 흥미를 느끼는지 시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럭저럭 따라오기는 했지만 아이가 여기서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할 방법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 아이가 앞서 혼자 보던 책을 들고 와서 노트에 쓰겠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 어렵지 않아?
아마도 속으로는 '한자도 배우지 않았는데?' 하는 신기함이 작동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내 과거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진도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았습니다.
이왕 자기 주도로, 다시 말해 객관적인 진도를 무시하고 알고 싶은 것을 공부하기로 한 김에 '불 화'자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아이에게 해볼 것인지 물었고, 아이가 보관 중인 자기 수첩을 들고 왔습니다. <중략> 아이가 한자를 처음 써본 일이란 점을 고려하여 이 정도에서 멈췄습니다. 호기심을 느낀 부분에 한하여만 진도를 나갔습니다.
<아이의 호기심에서 출발하기>에 나오는 내용인데, 재작년 11월에 쓴 글입니다. 그리고 지난달에 쓴 <그리기 좋아하는 아이를 지지해 주기>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주도가 아닌 방식으로 진도를 나갈 이유는 없습니다.
제가 앞서 제시한 자기 주도 학습의 특징이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아빠(선생)는 진도를 목적으로 하기보다 아이의 부족한 경험을 채우는 역할로 함께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빠나 엄마나 선생님이 진도에 사로잡혀 아이를 끌고 가지 않아야 하는데, 진도에 길들여진(?) 성인의 경우 내면의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책을 보고 한자를 쓸 때 저는 무엇을 할까요? 저에게도 낯선 경험이었는데, 다행히 그 자리에 몰입한 듯합니다. 왼쪽은 아이의 글씨고, 오른쪽은 제가 노트의 옆 페이지에서 아이가 글자를 쓸 동안 이것저것 쓰고 그린 내용입니다.
'붕'이란 입말과 음이 비슷한 꿀벌이 내는 소리가 연상되어 이를 그리기도 했습니다.[2] 그러다가 큰 아이를 위해 샀다가 용도 폐기되어 책꽂이에 방치된 한자 쓰기 책을 들고 왔습니다. 이번에는 '진도'를 떠올린 것이 아니라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한자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유독 태극기 그리기를 좋아하고, '대한민국'이란 단어를 말할 때 힘을 주어 말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가 '한(韓)'자를 고르는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또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아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포착했습니다.
한국 한 그릴 거예요
아이가 처음 말할 때는 모르다가 이미 한글을 구성하는 글자도 포켓몬으로 독학으로 익히는 과정에서 '쓰기'가 아닌 '그리기'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획수가 많고 복잡한 한자야 말할 것도 없었는데 자신의 편향(고정관념)에 갇힌 것이죠.
아무튼, '한(韓)'자를 썼으니 '나라 국'자로 필요하리라 생각해서 한자 쓰기 책을 펼쳐 보여주었습니다.
아이는 지난주에 중국집에서 배운 '수제만두'란 단어에 '손 수'자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물 수'만 알고 있었는데, '손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손 수 그리고 싶어요.'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우리 둘의 호흡이 생기고 진도와 같은 리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으로 형과 이야기하다가 말했던 단어인 '지킬 수'와 '막을 방'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정성껏 그렸죠. 저는 아이의 호기김을 증폭하기 위해 장기알도 동원했습니다. 아이는 열심히 그렸고요. 한자 쓰기 책에서 '뚫을 곤(丨)'자가 너무 간단해서 흥미로운지 종이에 써서 형과 엄마에게 가서 퀴즈를 내며 즐겼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저는 조용히 첫 아이와 진도를 뽑던 기록을 사진 찍었습니다. 그렇게 유도한 학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행착오[3]가 제가 '자기 주도 학습'을 발견하는 길로 인도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저것 아무 글자나 배우는 아이를 보고, 아내는 자기 이름 쓰기부터 배워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일종의 진도(?)를 요구했습니다. 내면에서 저항감이 생겼지만, 제 방법에 대한 고집도 버렸습니다. 결국 아이가 택하는 것이 자기 주도의 골자입니다. 아이가 엄마의 뜻을 받아서 알려 달라고 하니 앱으로 찾아서 보여주었습니다. 마침 네이버 한자 사전에는 획순 보기 기능이 있어서 아이의 눈길을 끄는데 효과가 있었습니다.
[1] 초등 2학년으로 학교 공부와 숙제가 있는 큰 아이의 경우 숙제를 하는 일 외에 아빠와 함께 하는 학습이 많이 줄었습니다.
[2] 무의식적으로 아이의 주목을 끌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3] <작년의 어려움이 지키고 싶은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는 삶의 여정'에 해당하는 글에 담긴 내용을 바탕에 둡니다. 다음 그림이 많은 부분을 함축하고 있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