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덕후의 탄생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똑같은 가치를 지닌 존재다>를 쓰다가 잠시 멈췄던 '대칭'에 대한 저의 느낌을 생각으로 바꾸는 글쓰기를 계속합니다.
대칭이란 말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부정확한 검색 결과로 인해 우연히 마주친 <공부의 90% 손으로 하는 겁니다>에서 본 다음 그림은 대칭의 범주에 넣고 싶었습니다.
대충이라도 연결 짓고 싶어서 이런 속말을 해 봅니다.
말은 생각에 대칭점을 제공한다.
현상을 보고 어떤 말이 떠오르는 것은 대칭적이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제가 말차림법에 끌린다고 느낍니다.
한편, <공부의 90% 손으로 하는 겁니다>라는 제목과 위에서 인용한 그림이 함께 소환하는 '손때'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의 기원은 고스란히 아래 그림에 담겨 있습니다. :)
기억을 쌓고 생각을 키우는 첫 단계는 분명 작업 기억으로 해야 합니다. <이해는 하는 게 아니고 오는 거다>라는 말도 이에 대한 경험적 증거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요즘 읽고 정리 중인 <테니스 이너게임>을 작업 기억을 효과적으로 단련하는 방법에 대한 방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음은 묻따풀 혹은 말차림법과 연관해서 등장하는 '대칭'의 흔적들입니다. 모두 다섯 개의 글을 검색 결과로 찾았습니다.
가장 먼저 <한국말에서 이것과 저것과 그것>을 살펴보면 이-그-저의 대칭 관계가 보입니다.
임자가 <이것>이나 <저것>을 어떻게 느껴서 어떤 것으로 알아보는 것은 마음의 밖에 자리한 <이것>이나 <저것>을 마음의 안에 자리한 <그것>으로 헤아려서, <이것>이나 <저것>을 <그것>으로 알아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이것은/저것은 빛깔이 붉다”라는 말은 마음의 밖에 자리한 <이것>이나 <저것>을 마음의 안에 자리한 <그것>으로 풀어서 “이것/저것 = 빛깔이 붉은 것”으로 알아봄으로써 “이것은/저것은 빛깔이 붉다”라고 말한 것이다.
동일한 것에 대해서 이것, 저것 혹은 그것은 시공간 대칭으로 바뀐 위치의 존재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사람은 어떻게 말이 뜻을 갖게 만드는가?(下)>에서 대칭을 찾아봅니다.
인용한 내용을 보면 다시 <한국말은 어떻게 나눠지는가?>에서 인용한 마디말의 구성 방식이 떠오릅니다. 동일한 앛씨말에 다른 겿씨말을 붙이면 의미의 씨는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뜻의 변형이 가능해집니다.
이번에는 <두루 함께 하는 말과 ‘그위(公)’의 지배>에서 대칭의 쓰임을 봅니다. 바로 다음 내용인데요.
어찌 보면 말이 누리(혹은 자연)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졌으니 지각(혹은 늦알이)는 물리적 자극과 대칭을 이룰 듯합니다. 한편, 느낌을 말로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지각은 생각으로 대응시킬 수도 있는 듯합니다. 느낌을 말로 표현하는 일이 바로 그 행위인 듯도 하고요.
또한, 지각과 달리 생각은 문화와 문명의 결과물인 말로 이루어져 있기에 말을 한다는 일 자체와 말을 매개로 하는 인식 자체가 문화와 문명의 영향을 받는다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다시 말해 어떤 말을 쓰는지로 그 사람의 행동 양식을 어느 정도는 대칭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예로 '사투리 사용'이 대칭적 이해를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어서 <말은 말에다가 말아서 말해라>를 보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마디말의 구성 방식의 또 다른 양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씨말에서 마디말로 나아갈 때뿐 아니라 마디말과 마디말을 덧붙여 포기말이 만들어지는 단계에서도 역시 대칭적인 확장이 가능합니다. '왜 그럴까?' 질문을 던져 보면 <작동하는 지식과 기억 용량을 주여주는 대칭화>라는 문구에 답이 있습니다. 바로 박문호 박사님이 소개한 대칭화의 이점이죠. 지식의 작동과 기억 효율이 뛰어나니까요.
마지막으로 <쓸개와 쓰지: 말맛과 기억 그리고 유통>을 살펴보겠습니다. 거기서 대칭은 '쓰지의 전이(Transfer)'를 예로 들어 서술하고 있는데요. 앞서 씨말에서 마디말로 나아갈 때 보이는 대칭에 대해서 그 글에서는 '말의 씨앗에 해당하는 씨말의 펼쳐짐에서 보이는 일종의 대칭'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쓰지의 전이(Transfer)'는 다음과 같이 손때를 묻힌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쓸개에서 전이가 일어나서 '쓰지'와 '쓰다'로 나아가죠.
이외에 <유튜브 물리학 강의가 작명을 돕는 우연>에도 대칭이 등장하는데 이는 과학적 맥락에서 다루는 편이 좋을 듯하여 뒤로 미루고 글을 마칩니다.[1]
[1] 글에 포함된 박문호 박사님의 글귀를 키워드로 구글링을 했습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8. 늘어나는 AI 고용주(?)와 생각의 자동화라는 부작용
9.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일 때, 옵션(선택권)을 인식하다
11. Value Object 이전에 Object란 사실
12. 생성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리다
13. <AI 미래>로 배운 집필, 소통의 이면, 작명 모순
14. 생명의 위대함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