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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Mar 22. 2024

쓸개와 쓰지: 말맛과 기억 그리고 유통

한국말의 주기율표

지난 글 <파래는 파랗고, 풀은 푸르다>에 이어 <쓸개와 쓰지> 쌍을 다룹니다. 말의 씨앗에 해당하는 씨말의 펼쳐짐에서 보이는 일종의 대칭에 대한 호기심이 저를 이끈 것인데요.


씨말과 바탕치

그 출발은 <한국말 말차림법> 내용 중에 다뤄지는 '씨말과 바탕치'에서 비롯합니다.

한국사람이 씨말을 만들어 쓰는 것은 그냥 아무렇게나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들은 무슨 까닭에서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하는지 나름의 까닭과 방법을 바탕에 차려놓고서 그렇게 한다. 그들이 어떤 씨말을 새로 만들어 쓸 때, 바탕에 차려놓은 까닭과 방법을 씨말의 '바탕치(morphological foundation)'라고 부를 수 있다.

더 호기심이 생기시는 분은 책을 사서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책을 읽을 정도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 분은 제 글을 보고 평소 쓰던 말 습관과 비교해 보는 일로도 충분히 효용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쓸개와 쓰지

책에 나온 포기말[1]을 먼저 봅니다.

한국사람은 '쓸개'에서 볼 수 있는 맛깔을 기틀로 "쓸개는 쓰지."라고 말한다.

귀찮음을 이겨 내고 독자님들을 위해 손때[2]를 묻혀 보았습니다. 쓸개를 자주 먹지 않는 저로서는 "쓸개는 쓰지"라고 말할 일이 없지만, 한국말을 쓰는 겨레의 조상들은 그랬던 모양입니다.

지금처럼 시장이 발달하기 전의 환경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다음 포기말이 와닿을 수 있죠.

붕어, 피라미, 곰, 돼지와 같은 동물들의 쓸개가 쓴맛을 띠는 것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딱 한 해 시골에 산 일이 있는데, 저만 빼고 그곳에 살던 친구들은 쉽게 맨 손으로 붕어나 피라미를 잡았습니다. 그 일은 낚시 따위가 아니라 그저 하교 길에 하는 놀이였습니다. 재미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취할 수 있었다는 말이죠. 그곳은 지금 모두 아파트로 바뀌어 있다고 들었습니다.[3]


아무튼 그 기억을 돌아보면 산업화 이전의 옛날에는 붕어나 파라미를 먹다가 쓴 맛을 느끼는 부위가 어딘지 쉽게 경험했을 듯합니다.


쓰지의 전이(Transfer)

"나물은 쓰지"는 저도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 나물은 쓰지."라는 말을 들으면, "그 나물은 쓸개와 같거나 비슷한 맛깔을 갖고 있는 것이지."라는 생각으로 '그 나물'이 가진 맛깔을 제대로 풀어낼 수 있다.

어머니와 아내는 (육식 인간 중에 하나인) 저에게 강제로 나물을 섭취하게 하고, 그럴 때일수록 나물은 더욱 선명하게 쓰게 느껴졌으니까요.


나물의 맛 중에서 어떤 맛이 '쓰지'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기억에 그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을 떠올리자 어딘가에서 들은 말 때문에 '전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위키피디아에 Knowledge transfer 페이지가 있었고, 정의 중에 첫 포기말 하나만 DeepL 합니다.

지식 이전이란 사실에 대한 인식이나 실용적인 기술을 한 개체에서 다른 개체로 이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전보다는 전이가 마음에 드는데 한국어 설명은 위키백과뿐 아니라 네이버 백과에도 없었습니다.


쓰다의 풀이를 찾기

한편, 표준국어대사전 쓰다 풀이 예문에도 나물이 등장합니다.

나물이 쓰다.

쓰다 풀이를 볼까요?

「1」 혀로 느끼는 맛이 한약이나 소태, 씀바귀의 맛과 같다.

아쉽게도 '쓸개'는 없습니다. 그런데, 소태는 뭘까요? 들어본 말인데 뭔지 모르겠습니다. 예상했던 이 아니었습니다.

「1」 소태나무의 껍질. 약재로 쓰이는데 맛이 아주 쓰며, 매우 질겨서 미투리 따위의 뒷갱기, 또는 무엇을 동이는 데 쓰인다. =소태껍질.

구글링 하니 쿠팡이나 11번가에서도 아직 팔리고 있습니다. 나만 모르는 것인가요? :)


씨말에서 파생한 새로운 낱말

쓰다 풀이에 등장한 '씀바귀'가 눈에 띕니다. 당연히 쓰겠죠? 풀이를 봅니다.

『식물』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25~50cm이며 근생엽은 거꾸로 된 심장 모양이고 경엽은 달걀 모양이다. 5~7월에 노란색 꽃이 피고 열매는 수과(瘦果)이다. 줄기와 잎에 흰 즙이 있고 쓴맛이 나며 뿌리와 애순은 봄에 나물로 먹는다.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고채, 유동. (Ixeris dentata)

어머니한테 수차례 들은 듯한데, 길에서 만나면 알아볼 수는 없을 듯합니다. 연예인처럼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낯선 식물이네요.


말은 사람이 뜻을 말아서 말하는 것!

최근 묻따풀 한 경험을 토대로 지식을 그림으로 압축하고 싶은 욕망을 느낍니다.

말은 느낌을 저장하여 지식을 축적하게 한다

지각(느낌 알음)과 생각(녀김 알음)으로 알아보기

고양이와 사람이 무엇을 알아보는 단계 비교

바로 이 연재 <한국말의 주기율표>의 동기가 되었던 <한국말에서 ‘말’과 ‘말다’에 대한 묻따풀>이 그 중심입니다. 몇 달 전에 느낀 느낌으로 돌아온 듯합니다. 누군가 쓸개에서 느낀 맛을 녀긴 후에 소리를 내어 말로 하면서 말맛을 느낀 사람들이 함께 써 왔으니 씨말이 되었으리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제 "쓰지"라는 말은 느낌을 담을 수 있는 도구가 된 것이죠.


말맛과 기억 그리고 유통

앞서 그렸던 그림을 조금 고쳐 봅니다. "쓰지"라는 말을 들은 사람이 '말맛'에 끌려 그 말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절로 지각이 아닌 생각을 하게 되죠. 그 후에는 뇌는 느낌을 말로 변환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먹고 나서 말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나중에는 보기만 해도 기억 속에서 떠올리겠죠. 이후에 다른 사람들도 말맛에 끌리면 터박이 말로 자리합니다. 그리고 다른 말까지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씨말로 다른 낱말의 구성요소 형태로 복제됩니다.


낱말 속뿐만 아니라 속담과 같은 관용어 형태로 유통되기도 하죠.

쓴 도라지[오이] 보듯

쓴 배[개살구/외]도 맛 들일 탓

그런데 속담을 보니 쓰다의 다른 뜻을 담고 있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2」 달갑지 않고 싫거나 괴롭다.

관련 속담들을 볼까요?

쓰니 시어머니

쓰다 달다 말이 없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킨다

쓴 것이 약

쓴 약이 더 좋다

오늘 낮에 나떼조아에서 배운 JMT처럼[4] 말맛이 나면 너도 나도 쓰게 될 것입니다.


왜 이전이 아니라 전이인가?

쓸개와 쓰지에 대한 묻따풀은 끝났는데, 전이와 이전에 대한 비교가 남았습니다. 앞서 DeepL 결과로 나온 지식 이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사전을 찾아봅니다. DeepL 결과인 이전부터 찾아봅니다.


옮길 이(移)와 구를 전(轉)을 씨말로 하는 낱말이고, 풀이는 풀이는 두 갈래인데 그중 가까운 풀이는 이렇습니다.

「2」 권리 따위를 남에게 넘겨주거나 또는 넘겨받음.

이제 전이(轉移)를 살펴봅니다. 제 느낌이 맞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씨말은 같은데, 세월에 따른 쓰임이 꽤나 달랐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1」 자리나 위치 따위를 다른 곳으로 옮김.

사전에서는 이동(移動)을 비슷한 말로 제시합니다. 이전의 첫 갈래 뜻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있어 다시 한번 이전의 뜻을 찾아봅니다.

「1」 장소나 주소 따위를 다른 데로 옮김.

같지 않네요. 전이(轉移)는 보편적인 말이고, 이전은 하위 개념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한편, 전이는 물리, 심리, 의학, 화학 따위의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말입니다.

「3」 『물리』 양자 역학에서, 입자가 어떤 에너지의 정상 상태에서 에너지가 다른 정상 상태로 옮겨 감. 또는 그런 일. ≒천이.
「4」 『심리』 앞에서 행한 학습이 나중 학습의 효과에 영향을 줌. 또는 그런 일. 나중 학습을 촉진하는 경우를 양의 전이, 방해하거나 억제하는 경우를 음의 전이라고 한다.
「7」 『의학』 병원체나 종양 세포가 혈류나 림프류를 타고 흘러서 다른 장소로 이행(移行)ㆍ정착하여 원발 병터와 같은 변화를 일으킴. 또는 그런 일. 전이성 안염(眼炎), 암 전이 따위에서 볼 수 있다.
「8」 『화학』 물질이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달라짐. 또는 그런 일. 기체ㆍ액체ㆍ고체상 사이의 상전이(相轉移), 같은 물질의 다른 결정형 사이의 다형(多形) 전이, 동소체(同素體) 사이의 전이 따위가 있다. ≒천이.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학습법과 창의성 모두 기억이 핵심이다>에서 인용한 박문호 박사님의 말, '내 감정의 손때를 묻히라는 겁니다'에서 유래합니다.

[3] 제발 좀 멈췄으면 하는 토건 공화국 대한민국의 현실의 단면입니다.

[4] '존맛탱'의 영어 표기이며,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국말의 주기율표 연재

1. 한국말에서 ‘말’과 ‘말다’에 대한 묻따풀

2. 말은 말에다가 말아서 말해라

3. 파래는 파랗고, 풀은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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