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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Mar 15. 2024

고양이와 사람이 무엇을 알아보는 단계 비교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임자는 자아인가?'라는 질문을 혼자서 풀지 못해 최봉영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카톡으로 숙제(선물)를 주셨습니다.


학습 대상에 친근해지고 이완을 만들기

일단, 제 수준에서 풀어 보기 위해 선생님의 노고는 뒤로 미루고 덩어리로 그림을 바라봅니다. 집약된 내용에 압도되지 않고 자기 페이스로 지식 덕후질을 하기 위한 노하우입니다.

그랬더니 머릿속에서 이런 속말을 했습니다. 자연히 미소가 지어지고 긴장이 사라집니다.

남녀의 인식 차이와는 굉장히 다르군


이완의 바탕에 다음 그림이 주는 이미지가 있는 것이죠. 고양이와 사람을 비교할 때는 팽팽한 긴장감 따위는 없는 논리적 사고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


묶어 보고 나눠 보며 묻고 따지기

모델링 경험 탓인지 다른 사람도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리면서 도식화를 해 보면 나도 모르게 묻고 따지는 효과가 나는 듯합니다.


먼저 고양이와 사람을 구분하는 관점으로 보면 뇌가 있으니 둘 다 지각은 가능한데, 고양이는 생각을 못한다는 주장이 그림에 담겨 있습니다. 이미 2021년에 최봉영선생님의 책 <본과 보기 문화이론>에서 배운 내용입니다. <지각에 따른 욕구와 생각에 따른 욕망>에 기록이 남아 있죠. 생각은 문장 놀이라는 최봉영 선생님의 주장입니다.

당시는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을 미처 몰라서 사전을 찾아보지 않았던 듯합니다. 이번에는 찾아볼까요? 생각은 여덟 갈래의 풀이가 있는 비교적 풍부한 뜻을 지닌 토박이 말입니다. 풀이를 훑어보면 판단, 기억, 관심, 각오, 상상, 느낌, 정성 따위를 두루 아우르는 말입니다.


지각의 풀이를 볼까요? 알 지(知)자와 깨달을 각(覺)의 조합으로 만든 낱말입니다. 세 가지 풀이가 있는데 앞서 두 가지는 생각과 겹치는 느낌이 들지만 분명하게 다른 뜻을 지닌 풀이는 심리학 용어로 쓰일 때입니다.

「3」 『심리』 감각 기관을 통하여 대상을 인식함. 또는 그런 작용. 그 작용의 결과로 지각체가 형성된다.

여기서는 최봉영 선생님의 주장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겠습니다. 그건 제 능력이나 관심 밖의 문제니 까요.


생각을 구상(構想)과 추상(抽象)으로 나누기

다만, 최봉영 선생님이 주장하는 구상과 추상의 구분과 사전적 의미를 빗대어 보기로 합니다. 묻고 따지기 좋게 저의 도식과 선생님의 도식의 관련 내용을 모아 봅니다.

그리고 또 사전을 찾습니다. 구상은 얽을 구(構)와 생각 상(想)을 모아 만든 낱말입니다. 풀이는 두 가지 중에 이것이 부합하겠네요.

「1」 앞으로 이루려는 일에 대하여 그 일의 내용이나 규모, 실현 방법 따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이리저리 생각함. 또는 그 생각.

추상은 뺄 추(抽)와 코끼리 상(象)을 합쳐서 만들어진 낱말입니다. 익숙한 단어인데, 생각 상(想)이 아니라 코리끼 상 혹은 상진 상(象)이란 점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풀이가 빈곤하게 느껴집니다.

『심리』 여러 가지 사물이나 개념에서 공통되는 특성이나 속성 따위를 추출하여 파악하는 작용.

역시나 소프트웨어 설계를 오래 한 개인 경험 탓에 심리학 개념으로 익숙한 단어를 만나니 마뜩지 않은 것이겠죠. :)


문장 놀이가 없다면 추상도 없다

구상은 말이 없어도 가능한 듯이 보입니다. 느낌 알음과 녀김 알음이 어우러진 것이라고 합니다. 느낌 알음은 지각의 작동에 따라 만들어진 것입니다. 반면에 녀김 알음은 사유물입니다. 뇌가 만드는 현상적 세계죠. 둘이 어우러진다는 것이 가치관의 반영이기도 하고, 잣대의 작용이기도 하고, 편향의 작동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최근 읽고 있는 <제정신이라는 착각> 내용에서 배운 '예측 기계'로서의 뇌가 떠오릅니다. 그 책에 따르면 우리 뇌는 예측 기계로 작동해서 감각 기관이 만든 내용에 개입하여 세계상을 구성합니다. 착시가 만들어지는 이유들의 상당 부분은 감각 기관 문제가 아닌 '예측 기계' 작동의 흔적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록을 남기기로 하고, 여기서는 녀김이 단지 최봉영 선생님 주장이 아니라 뇌과학적 근거가 있다는 사실만 남깁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꼭 말이 개입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추상이 나타나기 위해서 말이 필요한 꼴이 되네요. 흥미롭군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은 탓에 생각이 이런 흐름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듯합니다.


지난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연재

(3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31. 묻고 따져서 그러한 까닭에 맞는 것을 찾아서 굳게 믿기

32. 새롭게 꾀할 수 있는 힘 vs. 공명정대한 중도

33. 얽힘 상태와 의미를 두루 따지는 분별 그리고 대화

34. 오락가락하는 마음의 안과 밖이 맺는 관계

35. 분별은 다각도의 분석으로 볼 수 없던 얽힘을 보는 일

36. 새로운 차원을 공감하고, 얽힘을 풀어내고 얼개를 만들기

37. 소통의 가장 기본은 한쪽의 소리에 경청하는 마음가짐

38. 한국말 포기말의 5가지 바탕 얼개

39. 사람이란 무엇인가? 일상이란 무엇인가?

40. 임자는 한국말로 푼 자아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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