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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Feb 27. 2024

새롭게 꾀할 수 있는 힘 vs. 공명정대한 중도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드디어 마지막입니다. 지난 글에 이어서 최봉영 선생님의 《나도 알 수 없는 내 마음》을 묻고 따져 풀어보는 글입니다.


새롭게 꾀할 수 있는 힘

14번은 마지막 다발말[1]입니다.

14.
사람이 젊을 때는 새롭게 꾀할 수 있는 힘이 많아서 무엇이든 묻고 따져서 굳은 믿음으로 키워나가고자 한다. 그들은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를 받아들여서 믿음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일에 매우 적극적이다. 그들은 밑바탕 마음에 튼튼하고 탄탄한 굳은 믿음을 심고자 한다. 그런데 사람은 나이가 들면 새롭게 꾀할 수 있는 힘이 줄어들면서 묻고 따져서 굳은 믿음을 키우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반면에 그들은 오랫동안 수많은 알음알이를 믿음으로 쌓아왔다. 이런 까닭으로 그들은 밑바탕 마음에 굳은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 이제까지 갖고 있던 믿음을 더욱 굳세게 붙잡는 일에 매달리는 일이 많다. 이런 이들은 이미 갖고 있는 믿음과 결이 같은 것만 받아들이고, 결이 다른 것은 피하거나 물리치려고 한다.

뜻밖의 내용이 나옵니다. 포기말[2] 단위로 묻고 따져 봅니다.

사람이 젊을 때는 새롭게 꾀할 수 있는 힘이 많아서 무엇이든 묻고 따져서 굳은 믿음으로 키워나가고자 한다.

'새롭게 꾀할 수 있는 힘'을 떠올릴 때 여러 가지 기억이 있는데, 그중에서 최고는 큰 애가 걸음마를 배울 때입니다. 저와 눈만 마주치면 손을 잡아 달라고 달리듯 오던 모습이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준비 없이 아기발걸음 바로 실천하기

포기말을 다시 읽고, '꾀'를 발견합니다.

그러고 나서 다음 포기말을 읽으니 녀김이 달라집니다.

그들은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를 받아들여서 믿음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일에 매우 적극적이다.

젊었을 때는 꾀한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이죠. 반면에, 힘은 넘쳐서 새롭게 또 꾀하게 되죠. 제가 켄트 벡의 '아기 발걸음' 원칙을 익힐 때, 큰 아이의 걸음마 배우는 본능과 얽혀 강렬하게 이미지를 형성했던 루프가 생각납니다. 그래서, 현재 저의 습관이자 행동 양식인 <준비 없이 아기발걸음 바로 실천하기>가 만들어졌죠.


알음알이로 드러나는 의식과 무의식(마음의 작용)

다음 포기말은 스무 살의 제 열망을 드러냅니다.

그들은 밑바탕 마음에 튼튼하고 탄탄한 굳은 믿음을 심고자 한다.

대학에서는 밑바탕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지 못해서, 자기 개발서도 읽어 보고 종교도 탐색해 보았지만, 어디에도 제가 찾는 것은 없었습니다.[3]


다음 포기말로 갑니다.

그런데 사람은 나이가 들면 새롭게 꾀할 수 있는 힘이 줄어들면서 묻고 따져서 굳은 믿음을 키우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나이가 들면의 기준은 몇 살일까요? 혹은 단순히 나이 말고 다른 잣대가 있을까요? 당장 답을 알기 어려워 보입니다. 계속합니다.

반면에 그들은 오랫동안 수많은 알음알이를 믿음으로 쌓아왔다.

빙산[4]과 같은 알음알이가 작용하는군요. 빙산이라고 하니, 그 믿음이 무의식과 뭉쳐지는 이유도 알겠습니다. 의식과 무의식이 하나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쓴 다발말에 소제목을 붙여 보니 선생님의 그림의 제목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듯합니다.


고집의 기원

다음 포기말을 보자마자 '고집'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떠올렸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그들은 밑바탕 마음에 굳은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 이제까지 갖고 있던 믿음을 더욱 굳세게 붙잡는 일에 매달리는 일이 많다.

가까운 지인과 그 자리에 머물려는 마음에 대해 '매몰 비용 오류'로 풀었더니, 그는 벗어나는 일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답이 무엇이든 그러한 믿음이 굳어지면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이들은 이미 갖고 있는 믿음과 결이 같은 것만 받아들이고, 결이 다른 것은 피하거나 물리치려고 한다.

결론으로 요즘 겪는 상황으로 풀어 보겠습니다. 선거철이 되니 자신 있는 말투로 레거시 미디어가 밀어주는 '한동훈' 지지를 말하는 지인을 볼 때, '가스라이팅' 당한 분이 자기 믿음이라고 믿는구나 여긴 일이 있습니다. '왜 지지하냐'라고 물으면 소위 '조중동'의 문구를 앵무새처럼 말합니다. '왜 그렇게 판단하느냐?'라고 물으면 장황하게 답하지만, 결론은 하나 같이 똑같이 자신을 공명정대한 중도라는 미신적인 단어를 말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덧붙이는 글: 강자를 믿지 말고 임자가 되자

글을 올리고 나서 페이스북을 통해 김영민 교수님의 기사를 접했습니다. 마침 결론으로 풀어 낸 글과 유사한 형상을 다룬 내용이 있어 눈길이 갔습니다.

이성적 토론이 요원한 꿈이라면, 남는 것은 이데올로기 투쟁밖에 없는가. 이데올로기 투쟁은 물리적 싸움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든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던가. 천 냥을 벌기 위한 노동보다 달콤한 말 한마디가 쉬운 법, 상대를 어르고 달래고 지배하기 위한 각종 ‘가스라이팅’(?)이 세상에 난무한다. 특히 국가는 표어, 담화문, 교과서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려 든다. 정부가 세금을 걷는 것도, 국회에서 고성을 지르는 것도, “이게 다 네 손해 같지만, 실은 너를 지켜주고 싶어서 벌이는 일이야.”

그리고 내가 일종의 역겨움을 느껴서 과격하게 표현하는 이유도 기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서툰 이데올로기 주입은 역효과를 불러온다. 노골적인 프로파간다는 반발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던가. 상대의 설레발이 공허한 가장행렬처럼 느껴지면 그 연극은 실패한 것이다. 애써 큰 비용을 들여 서툰 연극을 할 필요가 없다. 프랑스의 역사가 폴 벤느는 이렇게 말했다. “주인은 노예에게 굳이 이데올로기를 주입하지 않는다. 자신이 노예보다 더 강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므로.”



주석

[1]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그러다가 춤에 빠져서 무아지경이 되도록 뭔가 집중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4] 빙산 비유에 대해서는 추후 바른 글에서 풀어 보겠습니다.


지난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연재

1. 마주해야 보인다, 본 것에 마음이 가면 녀긴다

2. 정신을 차리고 터박이 바탕 낱말을 또렷하게 따져 묻기

3. 말의 바탕치, 짜임새, 쓰임새, 펼침새 따위를 살피다

4. 속말과 말차림: 대화에서 얻은 보물

5. 임자인 사람은 살리고 그 결과는 크다

6. 말과 마디말에 대하여

7. 개념의 구성 요소: 원칙, 생각, 믿음

8. 생각을 또렷하게 펼치려고 힘을 쏟기

9. 아직 잔재가 남았지만 곧 사라질 형식적 권위주의

10. 아이와 영어책을 읽다가 영어 문장의 차림을 짚어 봄

11. 낱말의 뜻을 또렷하게 알아야 할까?

12. 말의 바탕치와 짜임새를 살펴보는 일

13. 말의 쓰임새와 펼침새를 살펴보는 일

14. 논쟁 승리와 진리 추구 그리고 권위주의 청산

15. 사람들이 배우고 쓰는 낱말의 유기체스러움

16. 낱말은 덩어리가 아니라 인수분해 하면 또렷해진다

17. 한국말 낱말 다시 분류하기: refactoring

18. 자기 잣대에 따라 말을 골라 쓰는 바탕

19. 한국인에게 지식인(知識人)은 누구인가?

20.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

21. 사람들이 한국말로써 무엇을 어떤 것으로 알아보는 일

22. 마음에 들어있는 온갖 것들의 바탕을 알아가는 일

23. 나의 마음에 들어있는 것

24. 알아보기는 머리가 마음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일

25. 객체의 속성 대응 그리고 내가 나의 바탕을 알아보는 일

26. 알음알이:늧으로 느끼거나 말로 녀겨서 갖가지로 아는 일

27. 머리로 알고 마음으로 믿고 용기를 내어 몸으로 행한다

28. 선과 악은 해로운 경우가 많은 개념이다

29. 불안을 피하려는 일이 만드는 삶의 굴레

30. 믿음의 바탕이 되는 알음알이와 속이는 일

31. 묻고 따져서 그러한 까닭에 맞는 것을 찾아서 굳게 믿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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