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최봉영 선생님의 페북 글《한국의 지식인과 얼치기 낱말》중에서 '4. 사람들이 배우고 쓰는 낱말'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다발말[1]중 일부를 묻고 따져 풀어 보는 글입니다.
육아를 해 보니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다발말입니다.
01.
사람들은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낱말을 듣고 배우는 일을 한다. ‘맘마’, ‘엄마’, ‘아빠’, ‘귀여워’, ‘먹자’와 같은 낱말을 하나씩 깨쳐가면서 머릿속에 말의 세계를 이룩해 나간다. 사람들은 생각하는 일을 더는 할 수 없을 때까지 끊임없이 낱말을 갈고닦는다.
그런데, 새삼 '모국어'라는 말의 뜻을 따져 보고 싶어 집니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 그리고 네이버 백과사전 풀이만으로는 굳이 왜 '모(母)국어'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말은 에너지를 쓰는 일이기 때문에 그냥 할 리는 없습니다.
02.
사람들은 낱말을 배우고 쓸 때,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를 좇아서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의 잣대를 가지고서 필요한 낱말과 그렇지 않은 낱말을 살펴서 고르는 일을 한다. 사람들은 그때그때마다 필요한 낱말을 챙겨서 갖고자 하는 반면에 나머지 낱말은 그냥 버려두거나 바로 잊어버린다.
물론, 나도 모르게 말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뇌과학으로 배우는 대화라는 작용>에도 관련한 인간의 행동 양식이 나오는 데요. 기본적으로 말을 하는 행위가 접근반응으로 마치 달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쾌감을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박문호 박사님은 본능을 이기고 상대의 상태를 관찰하며 경청하라고 강조합니다.
대화는 내가 손해를 봐야 이기는 게임
이 문구를 보니 다시 <논쟁 승리와 진리 추구 그리고 권위주의 청산>에서 최봉영 선생님이 설명하신 '남을 이겨보고 싶은 마음'이 떠오릅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무엇을 아는 일에서 남을 이겨보고 싶은 마음에 이끌려서 낱말의 뜻을 아는 일에 힘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들은 남을 이길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남을 이기는데 필요한 낱말을 찾아서 뜻을 또렷하게 알아보려고 한다.
다시 선생님의 다발말로 돌아갑니다.
사람들이 낱말을 살펴서 고르는 것은 낱말의 갈래를 잣대로 삼아서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낱말의 갈래가 어떤 것인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사람이 생각하는 낱말의 갈래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터박이 말'은 강학회 참여로 익숙해진 말이지만, 사실 처음 듣자마자 뜻하는 바를 바로 알 수 있었기에 좋은 이름이라 생각합니다.
첫째, 한국말에는 터박이 낱말과 뜨내기 낱말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낱말의 갈래가 있다.
터박이 말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뉩니다.
터박이 낱말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안에서 생겨난 터박이 낱말로서 ‘물’, ‘불’, ‘국’, ‘묵’, ‘떡’, ‘가다’, ‘오다’, ‘자다’, ‘먹다’, ‘붉다’, ‘검다’, ‘좋다’, ‘싫다’와 같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밖에서 들여온 터박이 낱말로서 ‘성’, ‘덕’, ‘법’, ‘도덕’, ‘교육’, ‘학습’, ‘정치’, ‘경제’, ‘정하다’, ‘대하다’, ‘금하다’와 같은 것이다. 이들은 밖에서 들어왔지만 터박이 낱말로서 자리를 잡고 있다.
선생님의 글에는 토박이 말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말의 현대적 쓰임에 맞춰 의도적으로 '터박이 말'이란 낱말을 보급하고, '토박이 말'이 갖는 논란과 폐쇄성을 극복하려는 듯이 보입니다. 이러한 저의 해석에는 강학회 참여 경험도 작용합니다.
강학회 참여했을 때 '토박이 말'과 '터박이 말'에 논의가 있었습니다. 다양한 견해가 오갔는데, 제가 내린 단순한 결론은 말의 기원을 따져야 하는 학자의 입장에서는 토박이 말이 중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모든 사람은 터박이 말이 훨씬 더 중요한 개념이란 사실입니다.
다음 다발말을 읽을 때, 앞서 언급한 견해는 더욱 강화됩니다.
터박이 낱말 가운데 어떤 것은 아직도 쓰이고 있는 것이 있고, 어떤 것은 이미 쓰이지 않게 되어 사라져 버린 것이 있다. 이를테면 ‘해’, ‘달’, ‘뫼’, ‘가람’과 같은 것은 터박이 낱말로서 오랫동안 쓰여 왔는데 ‘해’와 ‘달’은 아직도 쓰이고 있고, ‘뫼’와 ‘가람’은 ‘山’과 ‘江’으로 바뀌어서 이미 사라져 버렸다.
<생각을 또렷하게 펼치려고 힘을 쏟기>에서 '말이 말을 하는 것도 유기적인 일인가?'라는 구절에서 말 자체가 '유기적 oraganic'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말은 사람의 필수 도구이자 생각을 담고 있기 때문에 사람과 함께 진화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생물학자들이 그러하듯 '종속과목강문계역'과 같은 식의 분류를 언어에도 할 필요가 있겠지만, 대화를 위해서 낱말을 골라 뜻을 표현할 때라면 계통보다는, 상황이라는 바탕과 함께 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에 두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뜨내기 낱말은 어떤 낱말이 한국말에 뿌리를 튼튼하게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어떤 이들만 배우고 쓰는 낱말을 말한다.
진화는 도태를 포함합니다.
뜨내기 낱말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안에서 생겨난 터박이 낱말로서 ‘당근’, ‘스불재’, ‘꾸안꾸’, ‘완내스’, ‘설참’, ‘갑분싸’, ‘슬세권’과 같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밖에서 들여온 뜨내기 낱말로서 ‘덕후’, ‘코스프레’, ‘똘레랑스’, ‘트라우마’와 같은 것이다. 뜨내기 낱말 가운데 어떤 것이 뿌리를 튼튼하게 내려서 잎이 나고 가지를 뻗으면, 터박이 낱말로 바뀌어 가게 된다.
말이 유기적이라면 역시 그러하겠죠.
[1]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정신을 차리고 터박이 바탕 낱말을 또렷하게 따져 묻기
3. 말의 바탕치, 짜임새, 쓰임새, 펼침새 따위를 살피다
6. 말과 마디말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