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글 말미에 목차를 만들어 둔 지난해의 글쓰기에 이어 올해도 묻고 따지고 풀어서 말을 차리는 훈련을 하려고 합니다. 독자들 그리고 저와 함께 교류하는 도반이나 지인들도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에 '함께 말 차리기'라고 연재의 제목을 붙입니다.
올해를 시작하는 이번 글은 최봉영 선생님이 페이스북에 쓰신《어떻게 큰일이 벌어지는가?》를 바탕으로 묻고 따져 보는 기록입니다.
다음 문장을 읽고 두 가지 연상을 하게 됩니다.
01.
사람들은 갖가지 낱말을 만들고 엮어서 온갖 생각을 끝없이 펼쳐나간다.
하나는 최근 '~짜리'라는 접사를 만났을 때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이었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띄어쓰기 오류가 쉽게 교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해하여 고쳐지지 않아서 '무용한 일'로 취급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존재하는 규칙이고 사소한 질서라 할지라도 무시하는 자세를 취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맞춤법 검사 과정에서 반복해서 틀리는 내용을 오답노트처럼 쓰는 습관을 들이는 일로 절충했습니다. 그래서, 재작년 12월부터 작년 말까지 대략 468(6 x 78) 개가 조금 넘는 낱말을 정리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만난 접사 '-짜리'는 낱말도 아닌 모호한 성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한국말 말차림법>의 8장 내용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중 일부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한국말 문법에 나오는 문법 용어는 거의 모두 19세기에 일본 학자들이 서양말, 특히 영국말 문법을 일본말로 번역하면서 만든 용어들이다. <중략> 번역해 놓은 것을 한국의 학자들이 한국말 문법을 만들 때 그냥 그대로 가져다 썼다. 이런 까닭으로 한국말 문법을 알려면 먼저 영국말 문법을 살펴보아야 한다. <중략> 그런데 백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두 번째로 연상되는 일은 역시 <한국말 말차림법>의 8장 문장을 읽다가 느낀 이미지와 생각입니다.
한국사람은 19세기말에 영국사람과 미국사람을 마주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영국말에 눈을 뜨게 되었다.
책에서 위 문장을 읽을 때 '마주하는'과 '눈을 뜨게'에 동그라미 표시를 했습니다. 손때[1]를 묻힌 탓에 <사람이 눈으로 무엇을 보는 것>에서 그림을 그리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마주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마음이 가야 합니다.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면 보이기 시작하죠.
이를 다시 녀김으로 바꾸는 현상을 통해 기억에 담고, 니름을 통해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습니다. 여기 제가 기록을 남기는 것도 니름을 글말로 하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글은 09번까지 있는데, 01번에서 이 정도 길이가 되었으니 여러 글로 나눠서 써야 할 듯합니다. 첫 글은 여기서 멈춥니다.
[1] <학습법과 창의성 모두 기억이 핵심이다>에서 박문호 박사님 발언을 이용한 것으로 감정의 손때를 묻혀야 기억이 만들어진다는 내용을 지칭합니다.
4. 두 가지 온인 나 그리고 쪽인 나로 살필 여섯 가지
10.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
11. 한국말은 어떻게 나눠지는가?
13. 한국말에서 자유란 무엇인가?
14. 한국사람에게 사람이란?
15. 한국사람에게 나 그리고 인간(人间)은 무엇인가?
24. 사람됨의 줏대 : 주관(主觀)
29. 인격을 존중하거나 무시하는 일
32. 사람답게 살아야 하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35. 사람이 눈으로 무엇을 보는 것
38. 사람이 떡을 먹는 일로 시작하는 바탕 차림 공부
39. 나-나다, 너-넘다, 그-긋다 그리고 한다의 바탕 차림
42. 바로 보고 녀기는 역량 그리고 바탕을 함께 하는 대화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