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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Dec 05. 2023

존비어체계와 민주적 인간관계의 충돌(下)

묻따풀 2023

지난 글에 이어서 최봉영 선생님의 사람됨에 대한 풀이를 스스로 묻고 따져 풀어 보기로 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보겠습니다.


인격 투쟁으로 권위나 권력을 드러내기

사람들이 유사신분관계 속에서 인격 투쟁을 벌이게 되면 권위나 권력을 드러낼 수 있는 모든 자원, 곧 나이, 성별, 외모, 치장, 출신, 학벌, 지위, 자본, 명성 따위를 인격 투쟁의 수단으로 끌어들인다. 그들은 세상에 널려 있는 모든 것을 권위나 권력으로 덧칠하고자 한다. 그들은 저에게 있는 모든 것을 뛰어나고 빼어나게 만들어서 고개를 쳐들고 다니고자 한다. 그렇게 해야 사람들이 저를 우러러보게 된다고 생각한다.

위 문장에서 설명하는 현상을 과하게 드러내는 사람들을 보면 평소 자존감(自存感)이 없다고 표현해 왔습니다. 자기 경계가 약한 심리적 상태가 행동으로 드러난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특히, <당신이 옳다>에서 정혜신 님이 제시하신 '적정 심리학'은 조금 다른 잣대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둘을 아우르는 이해는 불가하기 때문에 다시 선생님의 문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개인적 자유주의자로 살아온 긴 시간

다음 문장을 보면 부정할 수는 없지만, 저런 삶 안에는 자신 혹은 임자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유사신분관계 속에서 인격 투쟁을 벌이면 나이, 성별, 외모, 치장, 출신, 학벌, 지위, 자본, 명성과 같은 인격의 형식에 관심을 집중한다. 인격의 형식에서 앞서는 사람이 인격이 높은 사람이고, 인격 투쟁에서 이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만나면, 이런저런 방식으로 인격의 형식을 살펴서 고개를 쳐드는 사람과 고개를 숙이는 사람을 정해야 한다. 그래야 인격 투쟁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일이 버릇이 되면 사람들은 인격의 형식만 바라보는 형식적 권위주의에 빠져들게 된다.

따져 보면 19살부터 30년 가까운 꽤 긴 시간을 전체주의 관행을 거부하고 개인주의자[1]로 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무슨 '주의'가 있거나 '주의자'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굳이 사람들의 통념에 맞춰서 제가 살아온 이력과 그 이력의 근거가 되는 줏대에 이름을 붙인 것이죠.


그리고, 한 마흔 즈음에는 선생님의 글에서 설명하는 '형식적 권위주의'를 폄하했다고 기억합니다. 하지만, 근래에는 그저 공존하는 하나의 생각으로 인정합니다. 존중한다고 까지는 말할 수 없는데, 그런 생각을 지닌 사람은 존중합니다.


뭐 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음 글을 읽을 때는 '강력한 성취동기'란 표현 탓인지 주제를 조금 벗어나서 박문호 박사님 학습법 영상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한국사람이 갖고 있는 인격 투쟁에 대한 열망은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서 강력한 성취동기가 되어 왔다. 사람들은 인격 투쟁에서 완전한 승리자가 되려고 가장 높은 곳에 오르고자 한다. 그들은 어디서건 1등을 해서 최고 중의 최고가 되고자 한다. 그래야 어느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일 일이 없게 된다. 이러니 그들은 신기록을 세우고, 우승컵을 손에 들고, 금메달을 목에 거는 일에 목숨을 건다. 이 때문에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고서도 기쁨으로 소리치기보다 아쉬움으로 울먹이는 일이 벌어진다.

기억의 필요성을 '뭐 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라고 설명하신 내용이 충격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재의 공교육 환경이나 직장환경에서 자아실현이라는 험난한 길을 알지 못한다면 겉으로 드러나는(형식적이기에 권위주의일지라도) '인격 투쟁에 대한 열망'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사회적 성공과는 기준이 다른 줏대>란 글을 썼습니다. 적어도 제가 가진 줏대는 사회적 성공의 실체가 보여주는 형식이 도드라진 실체와는 굉장히 다르다는 생각을 표현했습니다. 관련해서 이미 따져 본 생각을 풀다 보니 사회체제가 분명하게 '인격 투쟁에 대한 열망'을 강제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에 저항하려고 했거나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한 사실과 무관하게 말이죠.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부정하는 세력들

아래 문단은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이끈 세력을 지칭하는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한국사람이 갖고 있는 인격 투쟁에 대한 열망이 밖으로 드러나 폭발하면 무섭고 놀라운 일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그들은 저만 또는 저들만 빛내기 위해서 엄청난 힘으로 인격 투쟁을 벌여왔다. 그들은 이기고 싶은 것을 이기는 일에서 어느 누구보다 힘차고 굳세고 야무지게 살아왔다. 그들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외치고 나선 지 몇 십 년이 지나지 않아서 멀리 앞선 나라까지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들은 세상이 알아주는 교육 강국, 기술 강국, 문화 강국으로 자리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투쟁에 앞장선 이들과 이들에게 피해자가 되었을지언정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보게 합니다.

한국사람이 저만 또는 저들만 빛내기 위해서 벌인 인격 투쟁은 밝은 쪽에 못지않게 어두운 쪽이 함께 하였다. 저만 또는 저들만 위해서 죽기 살기로 벌여온 인격 투쟁으로 말미암아 고루 하고, 두루 하고, 널리 할 수 있는 떨림, 울림, 어울림, 알아줌, 보아줌, 도와줌, 보살핌과 같은 함께 함의 바탕이 많이 허물어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어진 마음에서 비롯하는 따뜻한 눈길과 다정한 손길이 점점 낯선 일처럼 되어 왔다. 그들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일을 너무나 힘겨운 일로 여겨서, 아예 손을 떼고자 한다.

MB 집권시절 각자도생과 '헬조선'이란 표현이 유행했던 일 그리고 박근혜 시절 벌어진 세월호 참사 등이 떠오릅니다. 국힘이 다시 정권을 잡자 비슷한 감정을 소환하는 일들이 돌아옵니다.

한국사람은 거칠게 몰아치는 인격 투쟁 속에서 지치고 외로운 몸과 마음을 돌아보면서 “왜, 살아야 되지?”, “왜, 낳아야 되지?”, “왜, 키워야 되지?”를 거듭해서 되물어야 한다. 그들은 자살률에서 세계 최고를 달리면서 출산율에서 세계 최저를 달리는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그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나 세대를 생각한다면, 저만 또는 저들만 빛내기 위한 투쟁을 넘어서 남까지 두루 하고, 것까지 널리 하는 어울림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차라리 죽고 심정으로 내몰리는 것을 줄여나갈 수 있다.

개인주의로 살아온 시간이 매우 긴데, MB 정부를 보면서 사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중국에 있던 시절 촛불집회를 보면서 조금이라도 정치 참여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정치는 잘 모르지만, 민주적 인간관계를 망가트리는 주변의 일들에는 최소한의 저항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게끔하는 글이었습니다. ;)


주석

[1] 당시는 아는 개념이 '개인주의'라 스스로 그렇게 인식을 했습니다. 이제 와서 보면 '자유주의자'에 더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묻따풀 2023 연재

1. 한국말에서 위함과 바람과 꾀함과 보람

2. 욕망하는 두 개의 나: 온인 나와 쪽인 나

3. 사람으로 살아가는 네 가지 일

4. 두 가지 온인 나 그리고 쪽인 나로 살필 여섯 가지

5. 사람들이 한국말로써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

6. 사람들이 영국말로써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

7. 한국사람에게 힘은 무엇을 말하는가?

8. 영국말로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을 활용해 보자

9. 영국말에서 있음, 꼴됨, 이됨, 일됨 살펴보기

10.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

11. 한국말은 어떻게 나눠지는가?

12. 한국말에서 문장은 곧이말을 풀어내는 것이다

13. 한국말에서 자유란 무엇인가?

14. 한국사람에게 사람이란?

15. 한국사람에게 나 그리고 인간(人间)은 무엇인가?

16. 한국사람이 임자로 살아야 하는 이유

17. 언어로 빚는 살리는 힘을 조직하는 능력

18. 한국사람에게 사람됨이란 무엇인가?

19. 사람됨 안에 쌓이고 녹아 있는 문맥

20. 줏대와 잣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기

21. 사회적 성공과는 기준이 다른 줏대

22. 줏대와 잣대로 삶의 순간들을 차려 보자

23. 한국말에서 사람됨과 인성, 인품, 인격

24. 사람됨의 줏대 : 주관(主觀)

25. 줏대를 펼쳐서 누리는 힘 : 권리(權利)

26. 보편적인 인권 그리고 내 삶의 균형

27. 사람의 구실 : 자격(資格)에 대한 묻따풀

28. 우리가 인지조차 못하는 인격에 대한 욕망

29. 인격을 존중하거나 무시하는 일

30. 대한민국에 인격 차별이 존재하는가?

31. 인격 차별이라는 유산과 수평적 소통

32. 사람답게 살아야 하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33. 존비어체계와 민주적 인간관계의 충돌(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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