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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Sep 13. 2023

한국말에서 문장은 곧이말을 풀어내는 것이다

묻따풀 2023

지난 글에 이어서  48회 공부 모임에서 배운 내용을 정리합니다. 최봉영 선생님의 '말의 차림새'[1] 설명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내용 중에 하나가 바로 다음 표현입니다.

한국말에서 문장은 곧이말을 풀어내는 것이다


한국말에서 문장은 곧이말을 풀어내는 것

곧이말[2]은 '주어'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합니다. 곧이말 즉 주어에 대해 풀어내는 것 혹은 주어를 중심으로 벌어진 일을 풀어내는 것이 한국말 문장의 기본 패턴이라고 보면 이해가 수월했습니다.


그래서 벌어지는 현상으로 한국말에는 주격이 여러 개 존재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하셨습니다. 강의에서 다뤄진 예시는 다음 문장입니다.

서울이 남대문이 김씨가게가 옷값이 싸다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국어 연구도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아 주격이 여러 개인 'の'를 썼고, 우리말로 '의'가 쓰이게 되었다는 역사적 배경도 들려주셨습니다. 더불어 한때 '~의'를 모두 제거하자는 주장도 있었는데 과하다고 평하셨습니다.[3]


이렇게 다수의 곧이말이 범주의 크고 작음으로 묶일 때 큰 범위를 갖는 곧이말을 '으뜸' 곧이말이라고 하고, 작은 범주에 속하는 곧이말을 '딸림' 곧이말로 분류합니다. 아래에 같이 그려보면 한국말의 표현력을 시각화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첩된 곧이말(주격) 표현


이때 으뜸 곧이말은 딸림 곧이말의 '전제'나 '조건' 역할을 하게 됩니다.


개념을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한국말

선생님이나 선생님 강의를 오래 함께 하신 분들은 한국말이 매우 적확하게 개념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아직 저는 이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습니다만 강의에서 질문에 대한 답이 오가는 과정에서 상당한 자극을 받은 사례가 있어 이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질문은 다음 문장에서 촉발되었습니다.

나는 산이 보인다

선생님은 이 문장을 칠판에 쓰신 후에 한국말은 마주해도 주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편에서 인용한 한국말 말차림법에는 으뜸과 딸림 곧이말 이외에도 얼임 곧이말과 같이 곧이말이 있습니다. 앞서 도식으로 설명한 중첩 혹은 의존 관계가 아닌 형태의 곧이말이 있는 것이죠.

대응한 주격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쪽인 나'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이전에 선생님은 한국어가 전체의 일부로 자신(임자)을 규정하는 '쪽인 나'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생각 방식이라면 나와 산은 내 인식 속에서 쪽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쪽'이라는 것은 또 관계를 암시합니다. 선생님은 산이 빛에 반사되어 보이는 시각을 통해 '보이다'라는 풀이가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과학적인 설명이란 인상을 받았습니다. 더불어 당시에 내가 볼 수 있는 시각 데이터는 산 이외에 다른 것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산을 보는 이유는 기억에 바탕을 둘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4] 이때 우리는 '산'이라는 개념을 이미 갖고 있어야 '스펙트럼에 금은 그은 개념의 입자'로 무언가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름을 붙이기 전에는 '이것 혹은 저것은 무엇일까?'라고 표현하는 단계에 머물 것입니다.


마무리

긴 강의에서 다뤄진 내용 그리고 강렬한 영감 중에서 제가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정도는 여기까지입니다. 제한적인 내용이고 부정확할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한국말에서 문장이란 주격 즉 곧이말을 풀어내는 형태로 펼쳐진다는 사실만 알아도 소득이란 생각을 합니다.


주석

[1]

[2] 곧이말이 무엇인지는 여기서 따지지 않습니다. 관련 글로 묻따풀학당의 윤여경 선생님의 글이 있습니다.

[3] 개인적 경험으로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며 발표까지 하셨던 임춘봉 훈장님이 떠올랐습니다.

[4] 월말김어준에서 들은 박문호 박사님의 뇌과학 강의에 기인한 추정입니다.


지난 묻따풀 2023 연재

1. 한국말에서 위함과 바람과 꾀함과 보람

2. 욕망하는 두 개의 나: 온인 나와 쪽인 나

3. 사람으로 살아가는 네 가지 일

4. 두 가지 온인 나 그리고 쪽인 나로 살필 여섯 가지

5. 사람들이 한국말로써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

6. 사람들이 영국말로써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

7. 한국사람에게 힘은 무엇을 말하는가?

8. 영국말로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을 활용해 보자

9. 영국말에서 있음, 꼴됨, 이됨, 일됨 살펴보기

10.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

11. 한국말은 어떻게 나눠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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