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3
지난 글에 이어서 최봉영 선생님의 사람됨에 대한 풀이를 스스로 묻고 따져 풀어 보기로 합니다.
계속해서 최봉영 선생님의 인격 차별에 대한 글입니다.
일찍부터 사람들은 신분으로 인격을 차별하는 일을 예사롭게 해 왔다. 처음에 사람들은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이나 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사람을 특별한 신분으로 묶어서 인격을 차별하였다. 그런데 국가 규모가 커지고, 분업 체계가 촘촘해지고, 지배층이 강력해지면서 모든 사람을 신분으로 갈라서 인격을 차별하는 일을 예사롭게 여기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신분으로 인격을 차별하는 일을 마땅한 일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신분으로 인격을 차별하는 것은 정치 체제, 지배 집단, 시대 상황 등에 따라서 차별의 대상, 차별의 범위, 차별의 정도에서 다른 점이 많다.
조선시대를 생각해 보면, 인격 차별은 신분 차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을 듯합니다. 대한민국으로 넘어와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밑에서 살았는데, 이를 당시의 맥락에서 보면 인격 차별이 예사로운 상황과 굉장히 관련이 깊습니다. 어머니가 그런 어려움을 겪고 저에게 물려주지 않으신 점이 새삼 고맙게 느껴집니다. <세대 간 트라우마를 끊어내는 일>에서 인용한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인격 차별에 대해 묻따풀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격 차별은 처음에는 먼 옛날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풀면 풀수록 지금 우리의 삶에도 고스란히 작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깨달아야 차릴 수 있으니까, 묻고 따지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일찍부터 사람들은 신분으로 인격을 차별하는 일을 예사롭게 해 왔다'는 말은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도 무의식적으로 행사한 유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으로 아래 문장은 최근 집권 세력 중에 시대착오적인 인물들에게 대입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국가에서는 신분제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인격을 신분으로 갈라서 차별하는 것을 못하게 한다. 민주주의를 앞세우는 국가들이 늘어나는 것에 따라서 신분에 따른 인격 차별은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앞세우는 국가라고 하더라도 공식 또는 비공식으로 신분에 따른 인격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
스트레이트에 따르면,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촛불 집회에 나서는 일반 국민을 주권자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논리를 듣다 보면 영화 <역린>에서 조선 후기에 정조를 죽이려 했던 세력들이나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한글 반포를 막는 밀본 세력을 떠올리게 됩니다.
조선왕조의 지배층은 인격을 신분으로 갈라서 차별하는 것을 마땅한 일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국왕과 왕족, 사대부, 중인, 상민, 천민 따위를 신분으로 갈라서 인격을 차별하는 것을 왕조체제를 유지하는 기틀로 삼았다. 그들은 신분이 높은 사람을 인격이 높은 사람으로 받들게 함으로써, 신분이 낮은 사람이 신분이 높은 사람을 우러러보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이러한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주희(朱熹)가 집대성한 성리학에서 볼 수 있는 친소본말(親疏本末)과 존비귀천(尊卑貴賤)의 논리를 강조하는 가운데 예의규범(禮義規範)과 강상윤리(綱常倫理)로써 인격 차별을 뒷받침하였다.
우리말에 남아 있는 존비어체계는 조선왕조의 잔존 유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조선왕조의 지배층은 한국말에 있는 ‘존비어체계(尊卑語體系)’를 인격 차별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그들은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높임말을 쓰고,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낮춤말을 쓰게 함으로써 신분에 따른 지배와 복종 관계를 인격에 의한 지배와 복종 관계로 탈바꿈시키고자 하였다. 이 때문에 주막집에서 양반과 상민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밥을 먹더라도 말투로써 인격을 차별하여 양반은 ‘진지를 드시는 사람’으로 높이고, 상민은 ‘밥을 먹는 사람’으로 낮추었다. 그들은 존비어체계를 더욱 촘촘하게 만들어서 인격에 의한 지배와 복종 관계를 더욱 깊고 넓게 만들고자 하였다.
10년 전에 '님'이라는 호칭이 널리 쓰일 때 너무나도 어색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에 년 단위의 시간이 걸린 듯합니다. 지금은 '씨'와 '님'을 혼용해서 쓸 정도로 제 안에서는 둘 사이 차별이 없습니다. 그저 관계를 구분하는 용도로 쓰일 뿐이죠. '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하긴 했지만, 이런 호칭을 익숙해하는 이들과 10년 정도 교류하면서 수평적인 소통에 대해 훈련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
4. 두 가지 온인 나 그리고 쪽인 나로 살필 여섯 가지
10.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
11. 한국말은 어떻게 나눠지는가?
13. 한국말에서 자유란 무엇인가?
14. 한국사람에게 사람이란?
15. 한국사람에게 나 그리고 인간(人间)은 무엇인가?
24. 사람됨의 줏대 : 주관(主觀)
29. 인격을 존중하거나 무시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