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3
8회 공부 모임에서는 말 차림새와 차림법뿐만 아니라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강의도 이뤄졌습니다.
원문은 최봉영 선생님의 페이스북에 있습니다. A4지 기준으로 6.5장 정도의 분량입니다. 여기서는 전문을 다루기보다는 인상 깊었던 구절을 남기고자 합니다.
자유(自由)는 외래어입니다.
한국말에서 자유는 19세기에 일본의 학자들이 영국말 ‘freedom’, ‘liberty’를 자유(自由)로 번역한 것을 한국사람이 가져다 쓴 것이다.
미묘하게 다른 두 영어 단어를 하나의 단어로 정의한 일본의 번역을 가져다 썼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앞서 소개한 선생님의 페이스북 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강의에서 자유가 한국말로 정착한 과정을 들으며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래 내용입니다.
한국사람은 자유라는 말을 갈고닦아서 ‘자유롭다’, ‘자유스럽다’. ‘자유를 갖다’, ‘자유를 누리다’와 같은 말을 만들었다. 이로써 ‘자유’라는 말이 매우 빠르게 터박이 바탕 낱말로서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사람들은 ‘자유’라는 낱말을 매우 맛깔나게 쓸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터박이 바탕 낱말'에는 들으면서 밑줄을 쳤습니다. 처음 듣는 표현인데 듣자마자 단어 뜻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외래어인데 한국 사회에 들어와서 터를 박고 나아가 바탕 낱말이 되어 풍부한 표현을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닐까 짐작했습니다. 말은 결국 이야기를 표현하는 수단이니까요. 일제 강점기 이후의 자각(自覺), 자주(自主), 자강(自强), 자립(自立)이 연결되어 강조될 수밖에 없던 역사적 배경을 들으니 '아하'하고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 경험으로는 자주(自主)하면 '자주국방'이 떠오릅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시도했던 전지작전통제권 환수 이슈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윤 대통령 재임 이후에는 국방에 있어서는 도리어 자주(自主)와는 굉장히 멀어지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는데, 그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자유'를 강조하는 모습은 매우 모순적이란 인상이 있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자유에 대한 비판적 해석을 듣고 수긍이 가기는 했지만, 여기서는 이를 다룰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정교한 개념이 아니라 진영을 나눌 의도로 쓰이는 표상에 지나지 않는 듯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자유와는 정반대의 말로 느껴지고, 선생님이 정리하신 자유에 대한 정의와도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적어도 자유를 다룰 때는 그 말이 뜻하는 바를 따져 볼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선생님의 글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취지에서 자유의 개념을 차리는데 가장 유용한 문단은 다음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서 사노라면 무엇을 뜻대로 이루고자 하는 갖가지 욕망을 갖게 된다. 사람은 이런 욕망을 이루어보려고 갖은 애를 써가며 온갖 일을 벌인다. 사람은 이런 욕망을 뜻대로 이룰 수 있으면 자유로운 상태에 있다고 느끼고, 그렇지 않으면 자유롭지 않거나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있다고 느낀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이 무엇을 뜻대로 이루고자 욕망하게 되면 자유로움과 부자유로움 사이를 오가면서 끊임없이 시름하는 상황에 놓인다.
욕망과 실제 사이에서 느끼는 자유로운 정도가 우리에게 감정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욕망을 내려놓으라고 조언해 왔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반면에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유를 획득하기도 하지만 설사 얻지 못했다고 해도 성취감을 느끼거나 어딘가 몰입하는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자유로움을 막는 대상을 능력, 자원, 기술, 규범 등의 네 가지로 나눴습니다. 이는 자유로움을 얻고자 할 때 동서남북과 같은 지침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내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의 방향성을 제시하니까요.
강의를 들을 때 다음 문장에 밑줄을 쳤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온인 나’는 내가 위하고자 하는 '나'의 바탕을 밝혀서 내가 나를 바꾸어보는 일에 대해서 보고 듣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알아보기 어렵다.
저는 온인 나의 발상이 익숙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경험적으로는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평소 제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을 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떠올려 보니 이들을 온인 나로 바라보면 그럴 수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분법으로 완전히 나눌 수는 없지만, 저는 대체로 쪽인 나 접근이 편안합니다. 반면, 온인 나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배워야 할 사항들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도 모르게 적응을 위해 배운 사회적 기술 들 중에 상당수[1]는 그런 상황에서의 대처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쪽인 나를 지향하는 저에게는 즉각적으로 마음에 끌리는 문장이어서 밑줄을 쳤습니다.
저만 따로 하는 ‘작은 나’를 넘어서, 다른 것과 함께 하는 ‘큰 나’로 나아가고자 한다. ‘쪽인 나’가 ‘작은 나’에서 ‘큰 나’로 나아가는 것은 나를 나답게 만들어가는 일이다.
10. ‘쪽인 나’는 나를 나답게 만드는 일을 바탕으로 나를 ‘아름다운 나’로 만들어서 ‘사람다운 사람’에 이르고자 한다. 한국사람은 이런 것을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고 말한다. 이런 ‘쪽인 나’는 내가 나의 쪽이 다른 쪽과 함께 함으로써 모든 이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큰 사람’이 되고자 하고, 모든 것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큰 어른’이 되고자 한다.
2016년 즈음 꽤 오래 '자아실현'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과거를 돌아보고 주변 사람들과 나의 차이를 인식하며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식의 자아실현에는 더 이상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선생님 문장에 빗대어 해석해 보면 어쩌면 '작은 나'에서 '큰 나'로 나아가는 것으로 무게 중심을 옮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 회사 설립 직후이기도 하고, 나이로도 마흔이 넘고 아이가 생겨 가장이 된 시점이라는 점도 이러한 변화에 작용을 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인용한 문단에 포함된 단어와 개념들을 보니 언젠가 선생님이 쓰신 <한국사람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후에도 인상적인 내용이 많았지만, 각론의 성격이라 원문을 직접 자신의 상황에 대입하여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마무리는 사람으로서 아름다움은 나다움을 지나 사람다움에 이르는 길이라 하셨는데, 한국어의 사람의 기원이 바로 '살리다'에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1] 대표적인 사회적 기술로 XP, 협상하는 마음 자세, 과학적 태도 배양 등이 있습니다.
4. 두 가지 온인 나 그리고 쪽인 나로 살필 여섯 가지
10.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
11. 한국말은 어떻게 나눠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