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3
지난 글에 이어서 최봉영 선생님의 사람됨에 대한 풀이를 스스로 묻고 따져 풀어 보기로 합니다.
다음은 최봉영 선생님의 '인격을 존중하거나 무시하는 일'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람들이 인격을 존중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내가 남의 인격을 존중하거나 무시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내가 남의 인격을 존중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내가 나의 인격이나 남의 인격을 값지게 또는 값싸게 여기는 일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나는 나의 인격을 값지게 또는 값싸게 여기는 것을 바탕으로 삼아서 남의 인격을 값지게 또는 값싸게 여기는 일로 나아가서, 남의 인격을 존중하거나 무시하는 일을 꾀하게 된다.
최봉영 선생님은 인격에 대한 존중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내가 나의 인격을 값지게 여기면서 남의 인격도 값지게 여기는 가운데 남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때 나는 나와 남의 인격을 모두 값지게 여겨서 차별을 두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와 같은 생각을 바닥에 깔아 놓고서 나와 남의 인격을 같게 보려고 한다.
여기 까지는 덜 심각하게 읽다가 이어지는 내용을 나에게 대입해 보면서는 진지하게 묻게 됩니다.
나는 남이 어떤 처지에 놓이더라도 인격을 존중하고자 한다. 이를테면 내가 남보다 크게 낫거나 남이 나보다 크게 못하더라도 나는 그것에 매이지 않고, 인격을 존중하려고 한다. 내가 이렇게 하려면 사람이 가진 인격이 얼마나 크게 값진 것인지 깊이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나는 인격이 무엇인지 묻고 따져서 밝게 깨치는 일로 나아가야 한다.
솔직하게 고하면 어린 시절부터 점수로 사람을 평하는 일에 길들여져 온 나는 사회에 나와서 업무 수행 능력으로 사람을 나도 모르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도 다음 문장의 의미를 깨닫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려면 사람이 가진 인격이
얼마나 크게 값진 것인지 깊이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다행스러운 일은 <우리는 처음부터 개성을 가진 존재다>를 쓸 때 그리고 이글에서 인용한 아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순간에는 평가할 수 없는 우리의 가치를 느끼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비단 그때만은 아니고 <뇌과학으로 배우는 대화라는 작용>을 쓸 때에도 우리의 생리적 특성을 이해하고 상대를 고려하여 말차림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런 활동이 쌓여서 이해와 행동이 일치할 때 인격에 대한 깨달음도 깊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최봉영 선생님의 글로 돌아가 봅니다.
둘째는 내가 나의 인격을 값싸게 여기면서 남의 인격을 값지게 여기는 가운데 남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때 나는 나와 남의 인격에 차별을 두고서 나보다 나은 것만큼 남의 인격을 존중하려고 한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까닭이 있을 수 있다.
분별이 개입된 경우인데, 이에 대해서도 두 가지 까닭이 있다고 합니다.
먼저 내가 나의 인격이 남의 인격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알고서 남의 인격이 나보다 나은 만큼 남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하려면 인격의 크기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어야 하고, 인격에서 앞선 이를 존경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첫 번째는 저 스스로도 익숙한 경우입니다. 두 번째를 조금 다르네요.
다음으로 내가 나의 인격이 남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서 남의 인격이 나보다 나은 만큼 남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다. 나는 인격의 크기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게 된다. 그런데 나의 인격을 값싸게 여기고, 남의 인격을 값지게 여기는 일에 버릇이 든 사람은 곧잘 이런 일을 하게 된다.
페북에 포교활동이 이용당한다고 느껴지는 분들에 대해 쓰고 난 다음날 또 다른 종교 단체에서 사거리에 가판대를 설치하고 포교활동을 하는 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아마 호객 행위에 가까운 일을 하거나 아무도 듣지 않는 소음에 가까운 말을 하며 스스로의 인격을 낮추는 일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 때문일 듯합니다.
다시 선생님 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를테면 인격에 대해서 스스로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이 없이, 남들이 성인(聖人), 현인(賢人), 군주(君主), 위인(偉人), 영웅(英雄)라고 일컫는 것을 그냥 따르는 이들은 나의 인격을 값싸게 여기는 일에 젖어서 남의 인격을 무턱대고 존중하는 일에 빠질 수 있다.
무작정 강자를 추종하거나 힘 있는 사람의 뒤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 듯한 사람들은 굉장히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나는 인격의 크기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일이라고 여겨본 적은 없는 듯합니다.
불안하면 이제는 아미그달라(편도체)가 떠오르는데 다른 포유류들이 힘 있는 수컷을 따르는 습성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선생님에 따르면 반대로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일은 네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는 내가 나의 인격을 값싸게 여기면서 남의 인격도 값싸게 여기는 가운데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때 나는 나와 남의 인격을 모두 값싸게 여겨서 차별을 두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사람이 뮈 별거냐? 사람하고 개, 돼지가 크게 다를 바 없지.”와 같은 생각을 바탕에 깔아 놓고서 나와 남의 인격을 같게 보려고 한다.
다행인지 제 주변에서 자주 접하지 못하는 부류입니다. 작년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가장 흡사한 행동 양식을 보여주었습니다.
나는 남의 인격을 특별히 값지게 여겨야 할 까닭이 없기 때문에 남을 그냥 나처럼 대한다. 그러나 남의 눈에는 내가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된다. 이 때문에 내가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일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그 친구는 상대의 사후 반응(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일 보임)에 대해 눈치를 보는 듯했습니다. 남을 나처럼 대하는데 뭐가 문제일까를 개별 사건으로 대처하는 듯이 보였습니다.[1]
두 번째 경우를 볼까요?
둘째는 내가 나의 인격을 값지게 여기면서 남의 인격을 값싸게 여기는 가운데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때 나는 나와 남의 인격에 차별을 두고서 남이 나보다 못한 것만큼 남의 인격을 무시하려고 한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 까닭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세 가지 까닭이 이어집니다.
먼저 내가 남이 나의 인격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제대로 알아보고서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이다. 내가 남의 인격을 제대로 알아보게 되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나는 남이 나보다 못한 것만큼 남의 인격을 무시하려고 한다.
가장 먼저 어른이 아이를 대할 때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훈육의 시작이 바로 이러한 인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가 <육아란 무엇인가?>를 쓸 때 느낀 것이 일정 부분 인격 무시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두 번째 까닭입니다.
다음으로 내가 남이 나의 인격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서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이다. 내가 남의 인격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나는 남이 나보다 못한 것만큼 남의 인격을 무시하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잘못 알고서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되면, 곧바로 그렇지 않은 쪽으로 나를 고쳐가게 된다.
한국에서만 살던 분들이 중국인 등의 외국인을 대하는 광경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행태와 행태 변화입니다. 기저에는 생소함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과 상대를 모르는 것 등이 기초했기 때문에 사실 근본 문제는 '무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를 보겠습니다.
끝으로 내가 남보다 인격에서 앞서야 한다고 생각하고서 억지로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이다. 나는 남보다 인격에서 앞서야 하기 때문에 억지를 부려서라도 남을 이기고자 한다. 나의 인격을 높이고, 남의 인격을 낮추는 일에 버릇을 들인 이들은 곧잘 이런 일을 하게 된다. 나는 남의 인격을 값싸게 만들기 위해서 어떤 구실이나 노릇을 빌미로 삼아서 남의 인격을 끌어내리려고 한다. 나는 남을 “~ 구실도 못하는 사람‘, ’~노릇도 못하는 사람‘으로 몰아붙여서 남의 인격을 대놓고 무시하려고 한다.
가까운 친척 어른들에게 아주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어린 시절 일방적인 훈육과 교육에 압도되어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분들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다음 문장을 들을 때는 자연스럽게 <뇌과학으로 배우는 대화라는 작용>의 내용이 떠오릅니다.
사람들이 인격을 존중하는 일과 무시하는 일을 놓고서 다투고 싸우는 일이 잦아지면 인격을 인정하는 일을 놓고서 인정 투쟁을 벌이는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이런 이들은 저의 인격을 값지게 만드는 일과 남의 인격을 값싸게 만드는 일에 온 힘을 쏟는다. 이런 이들은 상대를 생각하거나 마주할 때마다 오로지 상대의 인격을 무너뜨리는 일에 꽂힌다. 어떤 사람이 인정 투쟁에 빠지는 상황에 놓이면, 그의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인격자로 남아 있을 수 없다. 그에게는 인정 투쟁에서 이긴 사람과 진 사람만 있다.
서로 잣대가 다르고 욕망이 달라 감정만 부딪히기 쉬운 대화의 조건입니다. 그래서 기능적 접근으로 대화를 대처하는 편이 이롭다는 생각을 합니다.
[1]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뇌피셜입니다.
4. 두 가지 온인 나 그리고 쪽인 나로 살필 여섯 가지
10.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
11. 한국말은 어떻게 나눠지는가?
13. 한국말에서 자유란 무엇인가?
14. 한국사람에게 사람이란?
15. 한국사람에게 나 그리고 인간(人间)은 무엇인가?
24. 사람됨의 줏대 : 주관(主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