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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Nov 21. 2023

사람의 구실 : 자격(資格)에 대한 묻따풀

묻따풀 2023

지난 글에 이어서 최봉영 선생님의 사람됨에 대한 풀이를 스스로 묻고 따져 풀어 보기로 합니다.


사람의 구실 : 자격(資格)

최봉영 선생님의 글입니다.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갈 때, 낱낱의 사람은 저마다 나름의 구실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갖고 있는 나름의 구실을 자격(資格)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격을 기틀로 삼아서 가족, 씨족, 겨레, 마을, 지역, 국가와 같은 무리를 이루어서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주어진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여 문제를 해결하던 컨설턴트 시절에 자주 쓰던 R&R(Role and Resposibilities)이란 개념이 떠오릅니다. 2008년 즈음에는 차세대 프로젝트에서 계획을 수립하고 함께 일하는 기준을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당시 제가 만든 결과물 중에서 가장 힘이 있었던 산출물은 코드(프로그램)가 아니었습니다.


누가 무엇을 한다는 사항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개발 케이스인데, 해당 프로젝트에서는 제가 이걸 만들고 논리를 설명하자마자 마치 재판관 같은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1]

그런 경험은 제가 스스로 능력자라고 믿게 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는 일은 5년 정도 더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거대한 조직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섞인 프로젝트에서 주요 역할을 맡으면서 문제 정의에 따라 R&R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체득했습니다.


임자가 되기 위한 선행 조건

이에 대해서는 이전 글에서 '임자가 되기 위한 선행 조건'을 소제목으로 하여 설명한 바 있습니다. <대체 뭐가 문제야>에서 제랄드 와인버그는 문제가 무엇인지 묻기 이전에 '누구들의 문제인지?'부터 물으라고 깨우쳐 줍니다. 당시에는 '이해관계'란 표현만 알 뿐, 그 기저에 깔린 욕망은 일터에서 꺼낼 개념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지각에 따른 욕구와 생각에 따른 욕망>을 쓸 즈음에야 비로소 일종의 금기어로 알았던 '욕망'이 사실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단서란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자리한 금기를 깨고 이를 입 밖으로 꺼내고 자주 말하는 데에는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이때, 공동체의 욕망을 다루는 일에 대해서 제가 인지하지 못한 부분을 깨우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텍스트가 있었습니다. 피터 드러커가 쓴 <경영의 실재>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기업과 공동체

저는 당시 사무쳤던 경험을 <드러커의 <경영의 실제>를 펼친 날>이라는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가 말한 '경영'과 더불어 '기업은 진정한 통일체여야만 한다'라고 역설한 그의 기업 개념은 제가 공동체의 욕망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기준이자 원형이 된 듯합니다.

기업은 진정한 통일체여야만 한다. 기업은 자신을 구성하는 부분품들을 합한 것보다도 더 커야 하고, 또는 적어도 부분품들을 합한 것과는 달라야 하며, 기업이 산출하는 것은 모든 투입 요소를 합한 것보다도 커야만 한다.

하지만, 드러커가 말하는 기업과 다른 목적을 띈 듯 보이는 기업도 많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공동체라고 하면 기업보다 더 원형이라고 생각되는 이미지가 박문호 박사님의 기억에 대한 영상을 볼 때 등장했습니다.


공동체와 나의 줏대

아무튼 이러한 배경 지식 아래서 다음 문장을 읽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낱낱의 사람이 무리를 지어서 함께 어울리는 것을 사회(社會)라고 부르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을 사회생활(社會生活)이라고 부른다. 교통, 교류, 교역, 통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는 것이 점점 커져서, 곳곳에 있는 온갖 사람들이 하나의 마을처럼 지구촌을 이루어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다음 그림이 우리가 줏대와 잣대를 활용해서 누구들의 문제이고, 내 문제는 무엇인지 묻기 위한 바탕으로 저에게 상징화된 최봉영 선생님의 그림이 또 떠오릅니다.

다음 단락을 읽으면서 새겨 봅니다. 이러한 바탕을 이해한 뒤에 인성에 바탕을 두고 나에게 펼쳐지는 관계를 차려나가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갈 때, 낱낱의 사람은 저마다 갖고 있는 구실을 입, 손, 발, 몸 따위를 놀려서 노릇하는 일로써 풀어낸다. 노릇은 사람이 구실을 갖가지 일로 풀어내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입, 손, 발, 몸 따위를 놀려서 사람 구실을 사람으로 노릇하는 일로써 풀어내고, 아버지 구실을 아버지로 노릇하는 일로써 풀어내고, 학생 구실을 학생으로 노릇하는 일로써 풀어내고, 시민 구실을 시민으로 노릇하는 일로써 풀어낸다. 사람들은 구실을 노릇하는 일로써 풀어내는 것을 바탕으로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주석

[1] 당시 경험을 2009년 월간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잡지에 기고했는데, 웹 사이트에 해당 기사가 공개되어 있습니다.


지난 묻따풀 2023 연재

1. 한국말에서 위함과 바람과 꾀함과 보람

2. 욕망하는 두 개의 나: 온인 나와 쪽인 나

3. 사람으로 살아가는 네 가지 일

4. 두 가지 온인 나 그리고 쪽인 나로 살필 여섯 가지

5. 사람들이 한국말로써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

6. 사람들이 영국말로써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

7. 한국사람에게 힘은 무엇을 말하는가?

8. 영국말로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을 활용해 보자

9. 영국말에서 있음, 꼴됨, 이됨, 일됨 살펴보기

10.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

11. 한국말은 어떻게 나눠지는가?

12. 한국말에서 문장은 곧이말을 풀어내는 것이다

13. 한국말에서 자유란 무엇인가?

14. 한국사람에게 사람이란?

15. 한국사람에게 나 그리고 인간(人间)은 무엇인가?

16. 한국사람이 임자로 살아야 하는 이유

17. 언어로 빚는 살리는 힘을 조직하는 능력

18. 한국사람에게 사람됨이란 무엇인가?

19. 사람됨 안에 쌓이고 녹아 있는 문맥

20. 줏대와 잣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기

21. 사회적 성공과는 기준이 다른 줏대

22. 줏대와 잣대로 삶의 순간들을 차려 보자

23. 한국말에서 사람됨과 인성, 인품, 인격

24. 사람됨의 줏대 : 주관(主觀)

25. 줏대를 펼쳐서 누리는 힘 : 권리(權利)

26. 보편적인 인권 그리고 내 삶의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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