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회, 드러커를 만나다
'때가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건강한 조직이 만들어지는 배경> 이라는 글을 발행한 직후 강한 충동에 의해 책꽂이에 읽지 않고 방치되어 있던 <경영의 실제>를 펼쳤다. 그리고 내가 느낀 점을 기록으로 남긴다.
내가 페북에 <건강한 조직이 만들어지는 배경> 발행을 알리며 쓴 글이다. 붉은색으로 밑줄 친 내용은 요즘 내 일에 대한 회의감을 극복하고 의미를 부여한 문장이다.
내 입장에서 <건강한 조직이 만들어지는 배경> 편의 핵심은 아래 그림이다. 그런데 이런 개념적 선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나의 경영 능력에 대한 확신도 없고, 나의 미래가 경영자인지 확신도 부족했다.
그럴 때 충동에 의해 펼친 <경영의 실재> 첫 장의, 첫 줄은 강한 임팩트를 주었다.
개인 경영자(manager)는 모든 종류의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생명력의 원천이다. 경영자의 리더십이 없다면 모든 "생산요소"는 단지 자원 그 자체로서 머무를 따름이므로 결코 생산물이 될 수 없다.
그 임팩트를 그림으로 다시 그렸다. 그저 두 줄의 문장을 읽었을 뿐인데, 나는 용기를 얻었고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에 없던 영감을 받았다. [1]
내가 받은 영감 중에서 위로는 마음으로 받고, 떠오르는 생각은 위와 같이 그렸다. 놀랍게도 <경영의 실재> 에 비슷한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경영자는 그 존재의 정당성과 권위를 오직 그가 생산하는 경제적 결과에 의해서만 인정받을 수 있다.
나는 HBR 정기 구독을 통해 드러커의 글을 종종 접했다. 그때마다 감탄을 했지만 특히 <피터 드러커의 <경영과 세계 경제>를 읽고> 편을 쓸 때는 88년에 쓴 글을 엘론 머스크의 행적에 빗대어 현대적으로 소화하는 경험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드러커 기사를 접하고도 두 달이 지나서야 한참 전에 사 두었던 <경영의 실재>를 편 일을 두고 나는 만남에 대해 선과 점으로 묘사했던 기억을 소환했다.
나는 2015년 고미숙 선생님에게 <명리학>을 배우며, 합리주의라는 믿음을 깨뜨린 일이 있다. 그 후로 나는 종종 '운명'을 믿는다는 말을 했고, 종교활동을 하면서 '은총'도 비슷한 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그런 표현보다는 '섭리'가 더 편안하지만, 나는 그런 말로 표현하려는 메시지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만일 내가 IT컨설팅 회사를 그만두고 중국 땅에 가지 않았으면 지금 같은 수준으로 사람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욕망을 탐구하는 행위 따위를 진지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난관과 좌절을 일상으로 통제하는 현재의 삶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며 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때가 되어 만난 드러커의 문장으로 인해 나는 꾸역꾸역 걷기로 마음먹은 직후에 든든한 후원자를 얻은 기분이 되었다.
[1] 그것은 비단 경영자로 성장하는 과정일 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이자 IT컨설턴트로 살아온 배경을 다시 활용할 수도 있는 인간 안영회로서 드러커가 기록으로 남긴 지식을 어떻게 흡수하여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각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실천을 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으니 그 기록은 연재로 남기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