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발걸음 실천법 No. 14
이런 기막힌 우연이 있나? 지난 글에서 인터페이스에 대응하는 한국말을 찾다가 만남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그런데 또 지난 글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던 <내 운명은 고객이 결정한다>에서 아래 문구를 읽고 책에 메모를 하다가 만남이란 단어와 인터페이스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에 글을 쓴다.
인터페이스가 접점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이면은 기회일 수 있다. 가정만 했는데 짜릿하다. 그렇게 믿으면 모든 대화 전에 이렇게 질문을 던질 수 있으니까.
이번에는 무슨 기회일까?
나는 또 스스로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묻는다.
근데 꺼리는 대화 상대나 주제를 만날 때도 그게 가능할까?
가능할 것 같기는 하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바로 어제 오전에도 불편한 대화를 자청해서 나가서 50점(?) 정도 성과를 냈으니까. 하지만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다. 일단 대화의 이면은 기회라고 믿기로 한다.
그리고 작년 10월 최봉영선생님께 배운 만남에 대한 기록도 찾을 수 있다.
사람은 준비한 만큼 만나게 되어 있다.
연이어 최근 자주 인용한 빙하가 떠오른다.
빙하로 연상한 느낌을, 만남을 표현하기 위한 형태로 바꿔본다. 나의 삶은 시작과 끝이 있는 선분이다. 그리고, 내 몸은 순간만 살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 꿈을 꿀 수 있고, 기억을 해낼 수 있고, 허구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순간에 무엇을 담고 느낄지는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 그리고, 과거에 내가 했던 행동의 누적이 가능성을 제한한다.
아버지와 떨어져 살며 어린시절을 보낸 아버지는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끝내 제대로 알지 못하신 채로 돌아가셨다. 상경해서 열심히 사시느라 거기까지는 못하셨으리라고 그를 이해한다. 아버지보다는 나았다 할 수 있으나 어머니나 다른 형제들을 포함한 가족내 소통방식도 아주 발전된 형태는 아니었다.
성인이 된 후 나의 의사소통 스킬은 온전히 직업 공간에서만 키우고 활용했다. 다행스러운 일은 아이를 나을 즈음 고착화 된 나의 비대칭 소통 즉, 밖에서는 그럭저럭 대화에 노력을 기울이면서 집에서는 소극적인 과거 방식이 머무는 현상을 까닫고 고쳐 나갔다. 그중에서 특히나 육아를 아기발걸음으로, 더불어 배우는 자세로 행하면서 내면을 관찰하는 순간이 다시 내 생활이나 자세 전반을 성찰하게 했다.
그리하여 최근들어 아기발걸음으로 깨닫는 의사소통 시킬을 가족관계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앞서 예를 든 육아인데, 요즘은 아내와의 대화나 어머니와의 대화에도 활용하고 있다. 특히 어머니와 여동생 사이에 골깊은 갈등이 발생했을 때, 100분토론 사회자 역할에서 영감을 얻어 대화의 맥락을 분명하게 하고 갈등을 두 사람 각각의 관점으로 나눠 보여주는 일은 나름 효과를 발휘했다.
한 번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이를 밈(Meme)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난 글에 소개한 바 있는 세션 관리에 대화가 있을 때는 이렇게 묻도록 인터페이스를 구현 해야겠다.
이번에는 무슨 기회일까?
두레이라는 내가 쓰는 도구에 한정했지만, 대화 세션에서 위 질문을 떠올리게 인터페이스를 준비하는 일은 간단하다. 이미 <페북에서 발견한 문구 바로 써먹기>에서 방법을 설명한 바 있기 때문이다. 두레이 세션 관리 업무용 템플릿에 아래와 같이 써두면 매일 세션 관리 업무를 생성할 때마다 환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 일정을 보면서 대화가 있을 세션을 골라놓고, 기대에 찬 질문을 하면 된다.
이번에는 무슨 기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