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행동을 변화시키기
<호흡의 기술>을 읽은 후 삶에 작은 변화를 끼친 부분을 찾아보았다. 독서가 읽기 자체에 그치지 않고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길 바라기 때문이다. 브런치 기록은 3개가 있다.
먼저 <Great Oxidation Event과 코의 역할> 편을 보니 과거에 배운 과학적 지식을 강화하고 <목숨걸고 코숨호흡> 과 같은 새로운 유튜브 강의로 나를 이끌었다. 키워드를 알아야 검색을 할 수 있다. 구글과 유튜브가 일상의 도구가 된 현실에서는 단어와 맥락에 대한 이해가 곧 어휘력과 문해력인지도 모르다.
다음으로 <호흡의 기술>이 운동과 측정을 자극한다 편을 보면 심박수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심박수 측정과 목숨걸고 코숨호흡> 편을 보면 몇 차례 측정을 하였다. 하지만, 간헐적 측정이었고, 코로 숨을 쉬는지 여부와 심박수 연관성을 들여다본 정도다. 그리고 기억에는 등산할 때, 가장 힘든 순간 심박수를 쳐다본 숫자가 어렴풋이 남겨져 있다. 그리고 페벗님 추천으로 사둔 책이 있다.
잊지 않고 수행하도록 두레이 개인 업무로 백로깅(당장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일로 남겨두는 일)해야 겠다.
회사 동료와 책 교환으로 받은 <운동화 신은 뇌> 역시 단지 읽기만 하지 않고 행동 변화로 끌고 가고 싶다. 어떤 행동 변화를 실천할지 탐색하며, 책에서 밑줄을 치고 메모를 남긴 부분을 옮겨보자.
먼저 서문부터 인상 깊은 내용이 나온다.
유쾌한 기분이 드는 진정한 이유는 운동을 해서 혈액을 뇌에 공급해주면 뇌가 최적의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중략> 운동을 하는 진정한 목적은 뇌의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목숨걸고 코숨호흡>에시 코가 뇌를 식히는 냉각장치 역할을 한다고 묘사했다. 비슷하게 비유하면 운동은 뇌라는 컴퓨터에 전기를 공급하는 일을 한다. 사실 그 이상이다. 전기는 구조 개선을 해주지는 않지만 운동의 뇌의 구조까지 개선한다. 이는 뒤에 나오는 가소성과 연관이 있다.
가소성이란 개념은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운동이 어떻게 뇌의 기능을 촉진해서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중략> 뇌세포 간의 연결은 과학자들이 한때 상상했던 것처럼 고정된 것이 절대로 아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연결이 일어난다. <중략> '활동 의존적 학습'이라는 개념의 적용을 받는다. 즉 새로 만들어진 뉴런은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하고 만다.
가소성이란 개념을 조직의 막강한 힘인 loosely-coupled와 연결하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하지만 주제가 산만해질 우려가 있어 자제한다. <코숨호흡>에서 코의 역할을 두개골 안에서 배출구로 보는 방식이 신선했는데, <운동화 신은 뇌> 역시 비슷하게 유기적인 통찰에 대한 훌륭한 예시를 제공한다.
1장에서 아래 문장을 보면서 내가 등산할 때 찍어본 최대 수치가 182 BPM란 사실을 떠올렸다.
여러분의 평균 심장박동 수치는 최소한 185는 돼야 합니다.
걷기 정도는 자주 하지만, 격한 운동을 하지 않는다. 책과 같은 체육선생님을 만나지 못하는 나는 어떤 수치로 운동을 해야 할까?
구글링을 해보니 최대 심박수 계산법이 있었다. 그리고 흔히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흔히 당신의 운동 강도는 "최대 심박수의 몇% 심박수에서"라는 표현을 쏜다.
최대 심박수 계산식은 아래와 같다:
운동을 해 온 사람의 경우 : 205 - 연령/2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 : 220 - 연령
일단, 높은 심박수의 운동을 한 번이라도 하는 할 일을 등록해야겠다. 그리고 (실천을 한) 이후에는 아래 내용을 나에게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자.
0교시 수업의 목적은 격렬한 운동을 통해서 학생들의 두뇌를 학습에 적합한 상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학생들의 뇌를 깨어 있는 상태로 만들어서 교실로 들여보내는 것이지요.
아래 내용을 읽으면서 감탄했다. 진정성이 올바른 지표를 만들어주는 순간이다.
롤러는 학생들의 성적을 매기는 기준이 빨리 달리지 못하는 학생들의 의욕을 꺾는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중략> 점수를 올리고 싶은 학생은 아무 때나 편한 시간에 체력 단련실에서 8킬로미터 거리만큼 페달을 밟으면 되었다.
혁신은 문제를 다른 눈으로 바라볼 때 벌어진다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문구다.
롤러는 체육 수업을 심장혈관 운동에 초점을 맞추기로 결심하고 내용을 혁신적으로 바꾸었다.
<린 분석> 읽기 모임에서 '좋은 지표'를 논의할 때 나눴던 대화들이 스쳐갔다. 경영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사람들의 의욕을 꺾는 방향으로 설정된 지표를 그들의 의욕적으로 나서도록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3장의 제목은 무시무시하다. 동시에 유기적인 이해를 돕는다. 그렇지만, 스트레스가 '절대 악'은 아니다.
스트레스는 기본적으로 몸의 평형 상태에 대한 위협이다. 반응을 하라는 도전이고, 적응을 하라는 요구이다.
문구가 마치 '변화를 포용하라'는 XP를 연상시킨다. XP는 인간성을 잃지 않으면서 건강하게 개발자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이때, 건강하게는 신체적 건강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통제하여 얻는 건강이다.
현대 사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와 사회 발전의 간극이 크다.
최봉영 선생님의 Linguistic Transformation이 떠오르지만, 나중에 다루도록 하자.
해결책은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방식에 있다.
XPer[1] 이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일을 일상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긴 하지만 언젠가는 나의 책장에 있는 <Stress> 책도 읽을 예정이다.
아래 문구를 내 말로 나타내면 '직면'의 효과다.
오히려 위협적인 상황 때문에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배우고 성장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세포 차원에서 본다면, 스트레스는 뇌의 성장을 자극하는 일종의 스파크다.
그리고 나는 세포 차원이 아니라 인간 개체 차원에서 베터코드 운영과정에서 겪는 많은 스트레스로 인해 배우고 성장하고 있음을 매일 깨닫는다.
회복력은 곧 탄력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회복력이란 <중략> 이 요소들을 신체에 쌓아두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경미한 스트레스를 가하는 것이다. <중략> 신체 시스템은 덜 유연해지고, 스트레스 대응이라는 단순한 역할에만 집중하게 된다.
나는 직면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보며 오직 '스트레스 대응'에 갇혀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나는 탄력성을 키우기 위한 조언에 귀를 기울여왔다. 예를 들면 시골 농부님이 말씀하시는 <동영상뿐만 아니라 스틸 사진으로도 살아야 함>이 그것이다.
그리고 더러는 사라지게 두는 일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계속 배운다.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다.
이미 각인된 공포의 기억을 지우지는 못하지만,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고 강화해서 공포의 기억이 안 떠오르게 하는 것은 가능하다.
내가 트라우마를 극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트라우마 극복의 대가는 자존감이라 믿고 있다.
존스가드는 자신의 방법에 대해 "자신이 내동댕이친 말에 다시 올라타는" 방법에 불과하다고 밝힌다. 이처럼 스스로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에 뇌에 가르쳐주는 것은 불안증을 극복하는 데 아주 중요한 일이다.
내동댕이친 말에 다시 올라탄다는 비유는 압권이다.
운동을 하면 스스로 불안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여 공황으로 발전하지 않게 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자제력이라고 한다.
정신의학이 고작 우울증 치료제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시대 배경을 설명한다.
뇌 연구가 이제 막 시작되던 초창기에는 정신병 치료에 자연과학을 도입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전기 자극보다 특별히 나을 것이 없는 인간의 의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울증은 연결의 문제로 다시 정의를 내리면 왜 환자들이 그처럼 다양한 증세를 겪는지를 설명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중략> 우울증을 일종의 정신적 자물쇠라고 본다면 이 치료법들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바로 모두 일종의 '충격'이라는 사실이다. 즉 뇌의 역학적인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스파크를 일으키는 것이다.
또다시 <린 분석> 읽기 모임에서 상관관계의 한계점에 대해 토론하던 때가 떠오른다.
운동의 효과는 너무 다양해서 자연과학의 요구대로 어느 한 가지의 효과만을 집어낼 수 없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문제를 자연 원리로 풀 수는 없다. 인간의 욕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잠이 오지 않을 때 내가 떠올리는 과거의 기억도 결국 중독이었다. (당혹)
과학자들은 중독을 "기억에 각인되어 반복적인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만성적 질병"으로 간주한다.
<사피엔스>를 읽지 않았다면 무슨 소리인가 싶었을 내용이다.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는 인류를 '장거리 포식동물'이라고 정의했다. 오늘날 우리 몸을 지배하는 유전자는 수십만 년 전 인류가 식량을 찾으러 끊임없이 돌아다니거나 짐승을 쫓아다니는 동안 진화했다.
하지만, <사피엔스>를 읽은 후에는 너무나 뻔한 인류의 역사다.
[1] XP를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사람이라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