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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Nov 11. 2022

동영상뿐만 아니라 스틸 사진으로도 살아야 함

시골농부의 깨달음과 나의 깨달음 19

<감정을 바라보고 생각을 환기하기> 편을 쓴 이후던가? 시골 농부님의 페이스북 글이 인용하려는 문장과 관련이 있는 듯 보여 함께 다뤄본다.


동영상이 아닌 스틸 사진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일단 아래 글을 두 줄 정도만 읽고 강렬한 자극을 받은 일이 있다. [1]

그날 일상을 보내다가 불편한 감정을 유발하는 지인에게 뭐라고 대응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가만히 있었더니 문제가 해소된 듯 느껴진 일이 있다. 딱히 방법이 없어서 조금 기다렸을 뿐인데, 어색하지만 그런대로 다음의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그 느낌을 기억하는 상태에서 다시 글을 읽었는데, 분명치는 않지만 대략 알 듯도 했다.


그리고 <감정을 바라보고 생각을 환기하기> 편에 이어 책에서 인용하려는 문장과도 연관이 있는 듯 보였다.

'사고지능'에 매달려있던 많은 일들이 '자연지능'에 의하여 저절로 처리됨을 알게 된다.

시골 농부님의 두 개의 글을 섞어 보면, 사고지능이 만든 스토리로 살지 않도록 노력하라는 말로도 들렸다. <월말김어준> 9월 박문호 박사님 강의에서 인간은 낮에도 꿈을 꾼다고 했다. 우리가 감각 기관을 정보를 그대로 인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기억과 느낌에 의해 윤색된 상을 갖는다는 말로 이해했다. 이를 시골 농부님 글과 섞어보자.


그러면, 스토리가 결국 꿈이 된다. 낮에 꾸는 꿈과 실체는 다르다는 점을 알라는 가르침으로 들었다.

모든 생각들은 연기되는 사건에 대한 해석된 참고 정보일 뿐이라는 알아차림도 함께 일어난다.

자고 일어나면 나의 기억도 바뀌어 있지만, 나를 구성하는 세포와 내가 사는 환경도 바뀌어 있다. 그게 연속된 선처럼 지속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와 거리가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사회가 주입한 관념의 다발에 유기체의 심리가 결합된 복합체이다.

나는 위 문장이 최봉영 선생님의 욕망 도식과 줏대와 잣대를 표현한 그림을 어떻게 해석할지 좋은 지침을 제공하는 듯 보인다.

내 생각이라고 혹은 '나'라고 느껴지는 생각들은 사실 사회가 주입한 부분과 내 심리가 섞인 복합체이다. 이를 구성하는 단위는 심지어 우주를 이루는 실체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지금 유기체로 움직이고 동시에 사고지능으로 생각하는 '나'가 어떤 줏대와 잣대를 갖고 움직일지가 삶의 장면들을 구성한다.


다시 말해 지금 내 행동을 지배하는 생각이 유기체인 나의 욕망인지 도덕규범인지 사회체제인지 경계가 모호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아래 문장에 따르면 군집 사회의 도구로 살 수도 있다.

인간 개체의 유지에 필요한 도구가 아니라 군집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사회적 시스템의 단위 모듈이다. 그 모듈은 '나'가 남들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게 하려고 평생을 바둥거리도록 만든다. '나'가 죽는다는 것은 그 모듈의 정체가 드러나 바둥거림이 멈추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에서 일할 때, 위 문장에 딱 부합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료가 있어 단호하게 '그냥 자리만 지키라'라고 말하고 그에게 긍정적 효과를 준 일이 기억난다.


깨달음은 주관적인 현상이다

시골 농부님은 깨달음을 절대적인 경지로 해석하는 일을 경계한다.

깨달음은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상태'가 아니라 완전히 주관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니 구원의 경지를 추종하는 대신에 깨달음을 통해 에너지 낭비 없이 등 따시고 배부른 삶을 사는 효용성을 구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다시 처음에 인용했던 시골 농부님의 페이스북 글 일부를 인용하며 이번 글을 마친다.

그렇게 멀리 떠나버린 초점을 지금 여기로 끌어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토리보다는 시간이 배제된 스틸 사진이 진실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미래로 펼쳐져지는 스토리의 전개를 끊으면 지금 여기의 스틸 사진이 바로 드러납니다. 지금 여기는 단 한 장의 스틸 사진이 아니라 각각 독립적인 많은 스틸 사진들의 뭉치입니다. 지금 여기는 조악하게 빚어진 스토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에너지들이 담겨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스토리로 초점이 가버렸음을 깨달으면, 다시 여기 내 몸이 있는 곳과 감각하는 곳으로 돌려놓는 훈련을 해보자.


주석

[1] 나는 자주 이런 식으로 페이스북 글을 읽곤 한다.


지난 시골농부의 깨달음과 나의 깨달음 연재

1. 시골농부의 깨달음과 나의 깨달음

2. 무의식 변화 인식과 자기 언어 개발

3. 아주 간단한 깨달음 수행법과 믿음

4. 깨달음과 깨달은 사람

5. 깨달음은 무엇이고,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6. 생각에 끌려가지 말고, 생각을 다스리기

7. 동정일여 그리고 몇 주간의 배움

8. 문제삼을 일과 사라지게 둘 해프닝

9. 사고의 틀과 대의적 소프트웨어 설계 방안

10. 주체와 객체 그리고 아기발걸음

11. 홀로서기와 따로 또 같이

12. 깨달음을 전하는 일은 이웃사랑 실천

13. 생각의 노예가 아닌 주인 되기

14. 사고지능의 한계와 자연의 특징

15. 쪽인 나와 무아론

16. 진리의 인식과 존재에 대한 주목

17. '나'와 무아無我의 공존

18. 감정을 바라보고 생각을 환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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