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회, 드러커를 만나다 12
지난 글에 이어서 <경영의 실제>에 대해 앞서 정리한 글귀를 다시 돌아보는 글입니다.
드러커는 경영의 첫 번째 기능은 경제적 성과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경영자는 현대산업사회의 기본적 기관(Organ)>에서 인용한 문장에서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경영자는 그 존재의 정당성과 권위를 오직 그가 생산하는 경제적 결과에 의해서만 인정받을 수 있다.
뒤이어 드러커는 경영의 두 번째 기능을 설명합니다.
경영의 두 번째 기능은 인간과 물질적 자원으로부터 생산적인 기업을 창출하는 일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이것이 바로 경영자를 관리하는 기능이다.
이 문장을 곱씹어 보니 복습을 시작한 <생산성의 원천이라는 말을 곱씹어 보다>에서 생산과 생산성을 구분하며 썼던 문장이 생각납니다.
그들(사람)은 노동력으로 생산의 원천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기업을 위한 생산으로 재조정하거나 의미를 부여하거나 책임지는 활동은 경영자의 몫이고 그래서 생산의 원천은 기업 구성원 모두가 될 수 있지만, 생산성의 원천은 경영자라고 정의하는 것이 개념적으로 명확할 듯합니다.
과학을 공부하면서 배운 개념 중에서 구성 요소가 모인 후에 발생하는 '질적 변화'의 사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혼란을 야기하는 귀찮은 일들을 다루는 경영>을 쓸 때 감명받았던 표현을 다시 봅니다.
기업은 진정한 통일체여야만 한다. 기업은 자신을 구성하는 부분품들을 합한 것보다도 더 커야 하고, 또는 적어도 부분품들을 합한 것과는 달라야 하며, 기업이 산출하는 것은 모든 투입 요소를 합한 것보다도 커야만 한다.
그리고, 다음 문장을 다시 곱씹어 보니 경제 활동에서의 '생산'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문구로도 보입니다.
필요한 것은 자원들을 변형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자본과 같이 무생물 자원은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런 일을 하는 데는 경영자가 필요하다. 확대가 가능한 "자원"은 오직 인적자원뿐이라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다른 모든 자원은 기계의 법칙을 따른다. <중략>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성장하고 또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시너지가 만들어지는 사회를 '좋은 사회'로 본다 오랜 서양 철학의 배경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처음 봤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립니다.
구성 부분들의 합보다도 더 큰 통일체를 만드는 것이 플라톤 시대 이후 내내 인정받고 있는 "좋은 사회"의 정의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일반 근로자를 (경영자와 구분하여) 지시받은 대로 일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자신의 일이나 다른 사람의 일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참여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정의를 내린다.
드러커가 지적한 이분법적 사고의 폐해는 2023년 대한민국에서도 그대로 벌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구글링 결과로 첨부한 사례는 특정 정치세력이 권력을 잡으며 이념적으로만 노조를 보는 시각의 부작용이 보입니다.
정치를 떠나 기업 환경으로 와도 마찬가지 측면이 엿보입니다. <덜 명령하면서 더 힘을 실어주는 리더가 되기>에서 썼던 현대적 리더십에 대한 필요성은 기존의 권위적 혹은 이분법적 리더십의 극복을 바라는 이들의 주장에 근거를 둡니다.
그리고 <경영자는 작업과 직무를 통해 만족을 느껴야 한다>에서 인용한 다음 문장이 뒤따릅니다.
만약 그들에게 경영자의 기능을 부여하면 훨씬 더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데 있다.
드러커의 주장은 2023년에도 유용하다는 점을 HBR 올해의 기사 <진격을 위한 비허가형 기업>이 지지하는 듯합니다.
9. 경영자가 맞이하는 도전
11. 기업은 혼란 속에서 경제적 생산을 늘려가는 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