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회, 드러커를 만나다 3
드러커의 <경영의 실제>를 읽던 중에 진도를 멈추고 다시 첫 장을 펼쳤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배웠으며, 이후에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점검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이전 글에서 '드러커를 만나는 순간'으로 묘사한 강렬한 문장에 밑줄이 쳐 있었다. 오늘은 이 문단을 내 삶에 투영해보는 것을 글쓰기 목적으로 삼았다.
개인 경영자(manager)는 모든 종류의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생명력의 원천이다. 경영자의 리더십이 없다면 모든 "생산요소"는 단지 자원 그 자체로서 머무를 따름이므로 결코 생산물이 될 수 없다.
여기서 '활력을 불어넣는 생명력의 원천'이라는 말을 읽는 순간 나는 중국에서 겪은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중국에 간 직접적인 동기는 북경 소재의 개발업체 법인장님이 찾아와 직원들이 경쟁력을 갖춘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되게끔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래서, 베터코드 설립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발주에 따라 하청 개발을 하던 오프쇼어 개발센터를 마이크로 서비스를 직접 기획해서 만드는 회사로 바꾸는 일이었다.
회사의 문화를 송두리째 바꾸는 일은 IT컨설팅 회사에서 내가 일하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법을 필요로 했다. 어쩔 수 없이 창발적인 방법이 필요했고, 축덕질을 하며 배운 인사이트를 비롯해서 다양한 방법을 응용하며 길을 찾아갔다.
그러는 중에 나는 직원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나를 찾아올 수 있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자신들의 사장이 고용한 외국인 전문가였다. 직위에 따른 부담에 더하여 내가 중국말을 못 하니 통역을 대동하고 나서야 하는 점을 생각하면 아주 소수의 용기 있는 이들만 꼭 필요할 때 나를 찾았다. 그런 식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접점을 늘리기 위한 방법을 찾았고, 여기저기 기록을 남기게 하고 내가 그걸 찾아볼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그러는 가운데 내가 배운 것은 내가 그들의 일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지지해주는 햇살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를 수행하는 일은 사실 내가 살아가던 방법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기도 했다. 그전까지 결과물을 내놓는 개발자 아니면 해결책을 제안하고 주어진 시간 안에 결과를 만드는 컨설턴트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스스로 일상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난감한 여정을 '개취인정'이라고 불렀다. 개인들이 당장 만들어내는 결과물에 의문이 생겨도 그들을 지지하고 그들의 방식을 인정하도록 내가 바뀌는 것을 목표로 삼고 견뎌냈다.
드러커의 문장에서 '경영자의 리더십'이란 표현을 보면서 내 삶의 큰 변화를 깨달았다. 어쩌면 나는 '개취인정'을 배양한 이후에야 따라가도 괜찮은 리더가 되기 시작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전 회사에서 팀장으로 일할 때, 한 팀원이 나를 이렇게 평가했다.
이사님은 너무 유익한 분이지만, 함께 일하면 너무 힘들다
당시에는 묘한 말이란 생각만 들었던 평이지만, 딱히 나에게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리더십이 없다는 말인 듯하다.
2014년 말에 나는 대기업의 혁신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었고, 외관상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다. 회사에서의 실적과 업계에서 나의 평판은 최고점에 달해 있었다. 하지만, 나의 내면은 엉망이었다. 처음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 초심은 잊어버리고, 버거운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살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 물었다. 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깊이 숙고하는 과정에서 <대체 뭐가 문제야>라는 인생 책을 만났고, 내가 문제 정의는 제대로 하지 않고 무턱대고 풀려고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목적이 있어 태어난 것이 아닌 이상 삶은 순간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들을 어떻게 사느냐가 인생이라 불리는 길을 만들어간다.
목적이 있어 태어난 것은 아니기에, 그때마다 우리는 스스로 질문을 하고, 풀고자 하는 문제를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삶에서 무언가 문제 삼을 수도 있고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가 아니라 목표라고 불러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우리의 행동에 대해 고민을 하는 방식에 대한 설명일 뿐이니까.
2014년 나는 '더 이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고자 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배운 방법, 오래도록 확신에 차 있던 방법을 극복한 삶을 살기 위해 컨설팅 회사에서 쌓아온 기반을 모두 버리고 중국이라는 낯선 환경으로 향했다. 돌아보면 거기서 다시 길이 만들어졌다.
<베터코드 첫 서비스 우여곡절 이야기>에 대략 기술한 과정 속에서 나를 사업을 하도록 이끈 분들이 셋이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경영이란 나의 일에 대해 확신이 없던 시간이 많았다. 다행스럽게 지금은 나아졌다. 이 글에 드러낸 바대로 적극적으로 드러커를 만나고 배우고 삶에서 실천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지난 시간을 회고를 해보니, 전에는 몰랐던 내 안의 울림들이 이 길과 관련이 있음을 깨닫는다.
프로그래머에게는 절망적인 90년대 직장 환경에 대한 선배들의 통념을 거부하고 소프트웨어 공학을 직업 공간에서 실현하려고 분투하던 나
KSUG를 만들며 외국의 User Group과 같은 개발자 문화를 만들고 싶었던 나
한국의 ThoughtWorks를 꿈꾸며 IT컨설팅 회사에서 새로운 팀을 만들고 영업부터 실무까지 다 했던 나
내가 믿고 꿈꿨던 경제적 환경을 제공하는 힘이 바로 경영이라는 사실을 그 당시에는 몰랐다. 나는 개발자였고, 컨설턴트였으니까 내가 경영에 관심을 두거나 심지어 경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몰랐지만, 내 안의 울림에 의해 혹은 사회가 이끌어 나는 그 길로 가고 있었고, 드디어 드러커를 만났다.
마무리를 위해 다시 한번 인용문을 살펴본다.
개인 경영자(manager)는 모든 종류의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생명력의 원천이다. 경영자의 리더십이 없다면 모든 "생산요소"는 단지 자원 그 자체로서 머무를 따름이므로 결코 생산물이 될 수 없다.
내가 사회에 나와서 배운 조직의 행태는 잊자. 이는 경영보다는 공장이나 군대를 모방한 듯한 흔적들이 농후다. 드러커가 말하는 경영자의 본질적인 역할을 명심하며, 가장 먼저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생명력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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