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회, 드러커를 만나다 9
3주 이상 멈췄던 <경영의 실제>를 펼쳤습니다. 3장 '경영자가 맞이하는 도전'을 다시 읽는데 이 책이 1985년에 나왔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믿기지 않는다고 감탄했습니다. 밑줄 친 내용과 그에 따른 생각을 기록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퇴근 후에 열심히 공부합니다.
3장은 '오토메이션automation'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신기술의 도래는 1930년대 "계획지상주의자들"이 부르짖었던 모든 슬로건을 다시 상기시킨다.
계획지상주의자란 표현을 듣자 'Planning over Plan'을 설명하며 인용했던 비노드 코슬라의 발언이 떠오릅니다.
드러커의 교훈은 이렇듯 현대의 성공한 창업가의 경험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드러커가 비난하는 계획지상주의자들과 같은 무리는 지금도 도처에 있는 듯합니다.
미래 예측에 관한 모든 항목은 하나같이 계획지상주의자들이 과거 우리들에게 강요한 처방으로부터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드러커가 말하는 계획지상주의자들은 <제로 투 원>에서는 피터 틸에 의해 경제학자의 탈을 쓰고 등장하는 듯한 느낌도 받습니다.
그렇다면 경제학자들은 왜 그토록 경쟁에 집착하며, 경쟁을 이상적인 상태라고 말하는 것일까? 이것은 전적으로 역사의 유물이다. 경제학자들은 19세기 물리학자들의 업적에서 수학을 베껴왔다. 경제학자들은 개인과 기업을 고유한 창조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교환 가능한 원자로 여긴다. <중략> 완전경쟁이 최선의 사업 형태라서가 아니라 모형화하기 쉬운 형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세기 물리학이 예측한 장기적 균형이란, 우주의 열역학적 죽음이라고도 알려진, 모든 에너지가 균등하게 분배되고 모든 것이 멈춰 선 상태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분명 계획지상주의자와 경제학자는 다른 사람들이지만, 인위적 모델로 미래를 설명하려 들었다는 점에서는 확실하게 비슷한 부류인 듯합니다.
다음 문장은 정말이지 전율을 느끼게 합니다.
오토메이션은 그 특성이 "기술적"인 것이 아니다.
디지털화가 화두인 요즘에는 오토메이션에서 필수 고려 사항 중 하나가 UX 즉, 사용자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제가 정리하고 있는 '프로덕트 관리'의 요소 중에 하나이기도 하죠.
중국에 있을 때 미니 프로그램을 경험하며 탈중앙화된 플랫폼이 보여주는 놀라운 UX에 매료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요즘에는 토스를 쓰며 그런 느낌을 받고 있기도 하는데요. 결과적으로 제가 UX에 민감한 장면은 프로덕트 디자인에 깊은 관심을 둔 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문장은 10년 전에 프로젝트를 하며 접한 '디자인 싱킹'을 떠오르게 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기술이 지향하는 목적은 최대로 적합한 프로세스를 찾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최근에 김창준 님이 쓰신 글을 인용하는 편이 제가 느낀 영감을 표현하기에 더 효과적일 듯합니다.
소프트웨어 설계와 개발에 20년 정도를 매진한 내 관심은 프로덕트 디자인과 사회의 디지털 전환에 맞춰져 있습니다. 10년 전에 배운 적이 없는 '디지털 싱킹'이 너무나도 당연한 사고방식으로 느껴진 이유도 제 전공과 직업 일상의 누적이었던 듯합니다.
그래서, 드러커가 1985년에 쓴 '오토메이션'을 (즉흥적이지만) 2023년 저의 언어로 바꿔보니 '인간 중심의 디지털 탈중앙 프로세스' 정도가 될 듯합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봅니다.
오토메이션은, 프로세스상 중요한 것은 사전에 준비되어야 하고 또한 그것은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동안 이미 결정된, 스스로 작동되는 통제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장치를 필요로 한다.
프로그래밍 경험 탓에 '사전에 준비되어야 하고'라는 문구를 보자마자 'configurable'이란 단어를 떠올립니다. 과거 경험이 떠올라 찾아보니 <Configuration Item과 설정 경험의 진화>에서 구성 항목을 추출하고 설정 변경과 연결시켜 쓴 글이 있습니다. 또한, 변화하는 세상에서 '사전 준비'를 구체적으로 할 것인지 혹은 추상적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다룬 Kent Beck의 글에 영감을 받아 쓴 <현실과 시스템 사이 매핑 기술의 진화>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아래 문장은 매우 추상적이긴 하나 놀랍게도 낮에 우리 회사 파트너와 대화했던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
일차적인 것은 프로세스가 처리할 수 없는 것을 제거하거나, 프로세스가 계획된 결과를 생산하도록 프로세스를 조정하거나 하여 프로세스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통제장치가 프로세스에 항상 내장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오직 이런 개념들이 충분히 고려된 후에야 각종 기계들과 장치들을 효과적으로 부착할 수 있게 된다.
저는 드러커가 말하는 '통제장치가 내장된 프로세스'를 동료에게 '(우리의 새로운) 백엔드'라고 불렀습니다. 판매 가능 재고 계산을 위해 프로세스 조정과 유지를 자동화하는 개념을 'Product Availability'라고 칭하며 2017년 완성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다시 구현할 기대감을 설명하는 대화였습니다. 이렇게 백엔드(혹은 백본)가 견고해진 후에야 사용자와 그의 상황에 따른 UX를 고려한 (드러커 표현 그대로) 각종 기계들과 장치를 효과적으로 부착할 수 있죠.
아래 문장을 읽으면서 또 한 번 감탄합니다.
이런 기계화가 곧 오토메이션 그 차체는 아니다. 그것은 다만 오토메이션의 결과이며, 또한 오토메이션에 필수적인 것도 아니다. <중략> 오토메이션은 작업 조직의 한 개념이다.
낮에 대화를 나눈 동료가 다년간 함께 소통하고 스스로 크로스 보더 판매를 위한 작업을 하면 최적화한 '작업 조직'을 중심으로 대화를 했습니다. 비용이 들어가니 '작업 조직'을 구현하는 일을 늦추고 있는 단계적으로 어떤 것부터 만들어 갈지를 논의하는 자리였으니까요.
아래 내용을 읽으면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아마존의 후방 창고나 테슬라의 생산 공장이 떠오릅니다.
깊이 생각하고 계획하는 경영자, 그리고 새로운 도구를 고안해 그것들을 생산하고 또 그것들을 유지보수하고 사용하는 고도로 훈련받은 기능공과 근로자를 필요로 할 것이다. 이 같은 변화가 빠르게 확산되는 것을 막는 주요 장애물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훈련받은 사람들이 부족하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점은 거의 틀림없다.
나아가 HBR 기사에서 다룬 '인간과 기술의 파트너십'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아래 문단은 드러커를 예언가로 느끼게 만듭니다.
오늘날 평사원으로 간주되는 많은 사람들이 경영층이 수행하는 업무를 떠맡을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대다수의 기술자들이 경영자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고, 그리고 경영자적 관점에서 사물을 보고 또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중략> 새로운 기술은 ... 오히려 극단적인 분권, 유연성, 그리고 자율적 경영을 촉구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HBR 기사 <진격을 위한 비허가형 기업>편으로 대신합니다.
키야~
오토메이션을 경영의 일부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경영의 본질에 대한 그 어떤 설명도 충분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장은 이미 1985년에 드러커가 <프로덕트 리더십이 중요한 이유>를 설명한 듯합니다. 놀랍고도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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