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3
지난 글에 이어서 최봉영 선생님의 사람됨에 대한 풀이를 스스로 묻고 따져 풀어 보기로 합니다.
최봉영 선생님 글입니다.
살림살이의 임자인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의 줏대를 펼쳐서 누리는 힘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나름의 줏대를 펼쳐서 누리는 힘을 권리(權利)이라고 말해왔다. 이런 권리는 임자가 줏대를 뜻대로 펼쳐갈 수 있는 자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람들은 임자가 줏대를 뜻대로 펼쳐서 누리며 살아가는 것을 ‘자유(自由)롭다’라고 말하고, 임자가 줏대를 뜻대로 펼쳐서 누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자유(自由)스럽다’라고 말한다.
<사회적 성공과는 기준이 다른 줏대>를 쓰면서 표현했듯이 사람들이 자유롭다는 말이 굉장히 모호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물론 일순간에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고 과거에도 느꼈지만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가 스스로 임자가 되려고 하니 나 역시도 그러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을 읽자 지난 글에서 언급한 과거사가 떠오릅니다. 무작정 열심히 하지 말고, 사태를 주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문제 정의를 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던 때가 '자유'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사람이 줏대를 펼쳐서 누리는 것에서 ‘자유(自由)’가 비롯하기 때문에 임자가 줏대를 갖지 않거나 가질 수 없는 경우에 ‘자유’와 ‘자유로움’과 ‘자유스러움’이 어떤 뜻도 갖지 못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임자의 권리가 미칠 수 있는 자유의 범위를 권한(權限)이라고 말하고, 권리에 따르는 자유에서 비롯하는 책임을 의무(義務)라고 말한다.
아마 <대체 뭐가 문제야>를 처음 펼칠 때 물었다면, 대답할 수 없었을 질문입니다. 여섯 번을 읽고 숙지한 지금은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어디서 비롯된 지도 모른 채 눈앞에 보이는 결과만 열심히 만들어내던 그때, 모든 것을 멈추고 얻고자 했던 것은 어쩌면 자유(自由)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후에 저는 내면에 이끌림과 지인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회사를 설립하였고,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하게 느끼고 충실히 몸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
인권과 특권은 개념적으로는 명료하게 나눠질 수 있으나 내 삶에서 이를 포착하고 차리는 일은 간단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줏대가 저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쪽과 저쪽이 내세우는 권리도 다를 수 있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의 권리를 내세우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내세우는 권리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모두가 함께 하는 인권(人權)이고, 다른 하나는 저만 또는 저들만 따로 하는 특권(特權)이다. 인권은 사람이면 누구나 펼쳐서 누릴 수 있는 권리로서, 모두가 다 같이 두루 하는 일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반면에 특권은 저만 또는 저들만 따로 펼쳐서 누릴 수 있는 권리로서, 저만 또는 저들만 오로지 하는 일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저나 저들이 오로지 할 수 있는 힘만 갖게 되면 갖가지로 특권으로 만들어서 저나 저들만 따로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저는 현재 대한민국 집권세력은 인권보다는 특권을 중요시한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그들을 뽑은 다수의 국민들은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기에 뽑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언론이 그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 능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고, <정보홍수시대에 문해력은 어떻게 갖출 수 있는가?>에서 쓴 대로 미디어 환경 자체가 국민 대다수가 올바른 잣대는 갖는 일을 매우 어렵게 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음 문장을 보면 막막함이 조금은 해소되는 듯합니다.
특권이나 인권은 그냥 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고 지키는 일을 통해서 생겨난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특권이나 인권을 놓고서, 만들어 지키려는 쪽과 허물어 없애려는 쪽이 서로 맞붙어서 힘겨루기를 벌이는 일이 많다. 사람들은 어떤 하나의 일을 놓고서, 특권을 앞세우는 쪽에서 벌이는 특권투쟁과 인권을 앞세우는 쪽에서 벌이는 인권투쟁이 서로 뒤엉켜서 어지럽게 돌아가는 일이 벌어진다.
어릴 적에 영화로 보았던 모세이야기나 대한민국의 현실 정치나 모두 특권을 지키려는 세력과 인권을 확장하려는 세력의 충돌이라는 패턴으로 보면 일치하는 현상입니다. 정치에 무심했던 저는 중국에 살 때 벌어진 촛불집회를 보는 외국인들의 시각을 보면서 민주주의가 그냥 얻어지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배웠습니다. <함께 성장하며 함께 일하기 위한 3가지 필수 조건>에서 이에 대해 쓴 일이 있습니다.
그 후 대한민국의 정치상황은 또 큰 변화가 있습니다. 촛불집회로 실각한 세력들을 감옥에 넣었던 정치세력이 촛불 이후 정권을 이겨내고 집권하여 자신들이 감옥에 넣었던 그들을 풀어줍니다. 국정농단의 주체였던 세력에게 표를 준 이들에게 표를 얻기 위함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단 한 번의 평화적인 권력이양으로 민주주의가 바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배웁니다. 특권층의 교묘한 공작에도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잣대를 가진 시민들이 다수가 되어야 결국 민주주의가 오래 머물 수 있겠죠.
나는 염치가 없는 사람들이 조용히 특권층을 지지하는 모습도 관찰하게 됩니다. 다음 문장도 이를 떠올리게 합니다.
특권은 특별한 이들만 가질 수 있도록 이쪽과 저쪽의 권리를 차별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람들이 특권으로 권리에 차별을 두게 되면, 권리에 따르는 의무 또한 차별을 두게 된다. 특권은 권리를 확대하고 의무를 축소하는 쪽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리고 특권을 가진 사람은 다른 이들이 할 수 없는 것을 자유롭게 펼쳐서 누릴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특권을 갖고 싶어 하는 까닭으로 다른 이들을 누를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은 갖가지로 특권을 만들어서 저만 또는 저들만 따로 하고자 한다.
쉽게 다른 사람을 욕하지만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 남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일을 쉽게 하는 이들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국민의 힘은 MB 집권 때에 '부자 되세요'를 외치더니 이번에도 당신도 부동산 특혜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식의 유혹이 담긴 정책이나 플래카드를 내겁니다. 조금만 따져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간 선거 승리에 잘 먹혔던 구호들입니다.
<다스뵈이다 285회>를 보면 과거 모피아라 불렸던 재경부 출신의 관료들이 검찰의 특권투쟁(?)을 보며 자신들의 특권투쟁을 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집단의 힘을 빌려서 여러 가지 특권을 만들어서 저만 또는 저들만 누리는 일을 해왔다. 특히 사람들은 국가가 가진 공권력을 빌려서 여러 가지로 특권을 만들어서 저만 또는 저들만 펼쳐서 누리는 일을 해왔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이 특권에서 빚어지는 차별을 일상처럼 받아들여서 특권에 맞서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갖가지로 재주를 부려왔다. 이와 함께 그들은 특권을 굳건히 지키기 위해서 시간과 자원과 노력을 들여서 끊임없이 특권투쟁을 벌인다. 그들은 특권을 지키는데 필요한 관례를 만들고, 법률을 만들고, 논리를 끌어들이고, 폭력으로 억누르는 일을 한다. 그들은 특권투쟁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있어도 좀처럼 특권에 대한 꿈을 놓지 않는다.
단순히 특권을 나쁘다는 관점에서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시간에 욕망을 모르면 임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욕망에 충실한 자들이 투쟁을 합니다. 그게 무엇을 향하는지는 임자가 정할 문제입니다.
특권 투쟁과 인권 투쟁은 바라는 바는 다르지만, 욕망의 주체가 되었을 때 행할 수 있는 삶의 양식입니다.
인권은 모든 이들이 함께 누리는 권리로서 이쪽과 저쪽이 권리를 같이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람들이 인권으로 권리에 차별을 두지 않으면 권리에 따르는 의무도 차별이 사라진다. 인권은 권리와 의무를 모두에게 같게 하는 쪽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사람들은 권리 가운데서 누구나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인권(人權)으로 받아들여서, 모두가 다 같이 하고자 한다. 그들은 인권을 지키는데 필요한 관례를 만들고, 법률을 만들고, 논리를 끌어들이고, 폭력으로 억누르는 일을 한다. 그들은 인권투쟁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있어도 좀처럼 인권에 대한 꿈을 놓지 않는다.
4. 두 가지 온인 나 그리고 쪽인 나로 살필 여섯 가지
10.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
11. 한국말은 어떻게 나눠지는가?
13. 한국말에서 자유란 무엇인가?
14. 한국사람에게 사람이란?
15. 한국사람에게 나 그리고 인간(人间)은 무엇인가?
24. 사람됨의 줏대 : 주관(主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