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과 함께 배우기
초등학생인 큰 애에게 유익할 듯하여 칸아카데미 웹 강의를 알려주었더니 유치원 다니는 둘째도 따라 합니다. 특별히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덧셈이나 뺄셈 정도는 합니다. 하지만 하나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아직 자막을 읽지 못해 영어 듣기가 힘든 모양입니다. 다시 <항해하듯 아이와 밀당하기>를 소환합니다. 아이가 답답함을 참고 영어를 들을 수 있다면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영어 배우고 싶지 않아'라고 응수합니다. 우리나라가 인구가 줄어서 네가 나중에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그런데 지금은 어리니까 배울 필요는 없다고 말하여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줍니다.
그러고 나서 배우지 않아도 되니 들으면서 흉내 내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했습니다. 어려운 일에 맞서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흥미를 느끼게 할 수 있을까 해서 제안했는데 반갑게도 아이가 조금씩 중얼거렸습니다. 흐뭇하게 지켜보는데 제가 무언가를 배우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기 발걸음과 실패할 용기>의 응용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아미그달라가 '잘해야 한다'라는 부담 때문에 우리를 제약하는 일을 회피하는 요령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못하는 일을 극복하라는 부담에 노출시키는 대신에 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지속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아들에게 취한 행동과 평소에 '아기 발걸음'이라는 개념에 담아서 실천하는 요령을 동시에 설명하는 표현인 듯합니다.
<영어 문장 AI가 알아듣게 읽기 놀이> 이후에 큰 아이가 추가 학습을 하지 않습니다. Arlo 발음이 어려운 점이 회피를 부르는 혹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듯합니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당장은 떠오르지 않았는데, 야구 영상을 보다가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었다가 곱창집을 물려받아 운영하는 정인욱 님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처음에는 남들의 시선 때문에 힘들었지만, 결국 '야구하는 거처럼 자연스러워졌다'라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내가 아이들이 씻기와 양치, 방정리 등과 같이 미루는 일을 교정하려고 한동안 칭찬 스티커를 활용했습니다. 차곡차곡 스티커를 모아서 장난감을 사는 일이 우리 집에서는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죠.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 최근에 칭찬 스티커가 사라졌는데, 그 빈자리를 제가 활용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어 문장 AI가 알아듣게 읽기 놀이>를 지속할 방법은 연구 개발하려고 합니다. 영화 Sing Together를 본 이후에 아이들이 흥얼거리는 노래를 Arlo 발음 극복을 위한 단계로 삼고자 합니다.
과연 가능할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