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3
지난 글에 이어서 최봉영 선생님의 사람됨에 대한 풀이를 스스로 묻고 따져 풀어 보기로 합니다.
인격 투쟁이란 말은 인격 차별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더 낯설다는 느낌을 줍니다.
인격 투쟁은 사람들이 인격을 신분이나 지위로 갈라서 차별하는 것에서 생겨나는 이익과 손해를 생각해 보고서, 이익의 경우에는 더 많이 갖고, 손해의 경우에는 더 적게 갖기 위해서, 이쪽과 저쪽이 서로 맞붙어서 싸움을 벌이는 것을 말한다.
인격 투쟁이 낯서니까 사람들을 차별할 때 이를 지칭하는 다른 말이 무엇인지 스스로 물었는데 막상 적합한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평소에 따져 묻지 않던 문제인 듯합니다.
사람들이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고 생각하거나 “신분이 높은 왕후장상(王侯將相)이 되는 것도 특별한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거나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거나 “우리는 모두 같은 핏줄의 자손이다.”라고 생각하는 경우에 신분이나 지위로 인격을 차별하는 일이 있게 되면,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인격 투쟁에 나서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런 까닭으로 신분이나 지위에 따른 인격 차별이 심하면, 인격 투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대체로 신분 사회였던 조선 시대 이야기인가 싶다가도 현실에서 비슷한 사태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소식 말고, 제가 직접 겪는 다음과 같은 사례는 인격 투쟁이 필요한 듯도 보입니다.
지하철에서 나이가 많다고 젊은 이에게 막말로 자리 양보를 지시하는 노인
좁은 골목 주차 시비가 붙었을 때 젊은 여자라고 막말하는 나이 든 남자
약자에게 막말을 하는 사람들
다시 최봉영 선생님 글로 돌아가 봅니다.
그런데 인격 차별이 심하다고 해서 곧바로 인격 투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인격 차별이 심하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심각한 차별로 여기지 않거나, 그것에 대차게 맞서려는 생각을 갖지 않으면, 인격 투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인격을 신분이나 지위로 갈라서 차별하는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것에 대한 투쟁은 쉽게 일어나지 않다. 인격 투쟁에는 커다란 위험과 엄청난 대가가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격 투쟁에는 커다란 위험과 엄청난 대가'란 단어를 보자 '세월호 사건'이나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등이 떠오릅니다.
각종 자격증 소지자들의 모임에 가 보면 '차별의 질서'는 대한민국에도 여전히 작동함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지배층은 사람의 인격을 신분으로 갈라서 차별하는 일에 많은 힘을 쏟았다. 그들은 가족 차원에서 남자와 여자, 장자(長子)와 중자(衆子), 적자(嫡子)와 서얼(庶孼)을 구별해서 인격을 차별하도록 이끌었고, 국가 차원에서 왕족(王族)과 사대부(士大夫)와 서리(書吏)와 상민(常民)과 천민(賤民)을 구별해서 인격을 차별하도록 이끌었다. 이에 더하여 그들은 종교를 구별해서 인격을 차별하도록 이끌었고, 당파(黨派)를 구별해서 인격을 차별하도록 이끌었고, 지역을 구별해서 인격을 차별하도록 이끌었다. 그들은 구별에 따른 차별의 질서로써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노력 끝에 얻은 결과이기에 어느 정도는 그들의 요구는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신분화하여 고착화하려는 시도만 없다면 오히려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역사를 거슬러서까지 특권을 얻으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스트레이트 보도에 따르면 통일부 장관을 포함한 뉴라이트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발간한 책에서는 헌법 절차를 통해 진행한 탄핵을 전체주의 전복 혁명이라고 지칭한다고 합니다. 차별의 질서에 대한 시대 역행적 추종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조선후기에 영조와 정조는 관리를 뽑아서 직책을 맡기는 일을 고루하고 두루 하는 탕평책(蕩平策)을 펼쳐서 가문(家門)과 당파(黨派)와 지역(地域)에 따른 인격 차별을 줄여보고자 했다. 그들은 가문과 당파와 지역으로 나뉘어서 저들끼리 다투는 백성을 임금 밑으로 모아서 고루 하고 두루 하는 공공(公共)의 백성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런데 정조가 죽고 11세의 순조가 들어서자 외척 세력이 정치를 주도하게 되면서 탕평책은 없었던 일처럼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백성들 사이에 차별을 넘어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여러 가지로 인격 투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정조 이야기가 나오자 영화 속 중용 대사가 떠오릅니다. 영화 '역린'을 흥미롭게 본 탓도 있고, 역린에 등장하는 중용 구절이 너무 좋아 아침 기도 대신 외우던 때가 있었습니다.
정치는 서로 다른 욕망이 부딪히는 공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공동체가 부딪힐 때 이를 해결하는 활동을 정무적인 일이라고 배웠고, 난이도가 높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정치와 무관하게 살지만, 정무적인 활동은 필요하다고 느껴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를 읽으며 '협상론적 세계관'을 익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봉영 선생님 글에 있는 조선 시대의 인격 투쟁의 역사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별다른 흥미를 느낄 수 없습니다. 아마도 사무치지 않기 때문인 듯합니다.
반면에 다음 글을 읽으면 느껴지는 느낌과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한국사람은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이면 누구나 사람답게 살아야 하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까닭으로 인격 투쟁에 대한 열기가 매우 뜨겁다. 이런 열기가 집단으로 나타나면, 시위나 소요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번질 수 있다. 이런 것에 뿌리를 두고서 1919년의 3.1 만세운동, 1960년의 4.19 민주혁명, 1979년의 부마민주항쟁, 1980년의 광주민주항쟁, 1987년의 6월 민주항쟁, 2016년의 탄핵집회와 같은 것이 일어났다.
하나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던 故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뜻을 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떠오르고, 두 번째는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故김대중 대통령입니다.
4. 두 가지 온인 나 그리고 쪽인 나로 살필 여섯 가지
10.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
11. 한국말은 어떻게 나눠지는가?
13. 한국말에서 자유란 무엇인가?
14. 한국사람에게 사람이란?
15. 한국사람에게 나 그리고 인간(人间)은 무엇인가?
24. 사람됨의 줏대 : 주관(主觀)
29. 인격을 존중하거나 무시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