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떡을 먹는 일
이 글은 지난 11월 27일 최봉영 선생님이 페북에 쓰신 글 <사람이 떡을 먹는 일>을 바탕으로 앞선 글에 이어 스스로 묻고 따져 풀어보는 내용입니다.
02.
'나'는 '나다', '낳다=나+히+다', '내다=나+이+다'와 바탕을 같이하는 말이다. 나는 태어난 것으로서 부모가 낳은 것이고, 천지만물이 낸 것이다. ‘나’는 저마다 낱낱의 ‘나’로서 살아간다. ‘나’는 힘이 나고, 뜻이 나고, 생각이 나고, 꾀가 나고, 샘이 나고, 병이 나고, 이름이 나는 것과 같은 온갖 나는 일을 바탕으로 ‘나’로서 살아간다.
자연스럽게 <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를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과 놀람이 떠오릅니다.
그 놀라움을 다른 이에게도 맛보게 해 주고 싶어서 했던 행동이, 행동 그대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레 전파되는 장면들을 경험합니다.
02.
'나'는 '나다', '낳다=나+히+다', '내다=나+이+다'와 바탕을 같이하는 말이다. 나는 태어난 것으로서 부모가 낳은 것이고, 천지만물이 낸 것이다. ‘나’는 저마다 낱낱의 ‘나’로서 살아간다. ‘나’는 힘이 나고, 뜻이 나고, 생각이 나고, 꾀가 나고, 샘이 나고, 병이 나고, 이름이 나는 것과 같은 온갖 나는 일을 바탕으로 ‘나’로서 살아간다.
한편, 위 문단은 <한국사람에게 나 그리고 인간(人间)은 무엇인가?>에서 풀었던 내용과 유사한 느낌을 줍니다. 나에서 임자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마땅히 임자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전에 풀었던 <줏대를 펼쳐서 누리는 힘 : 권리(權利)>와 이어집니다.[1]
나의 바탕을 알고 깨우쳤더니 나만 알고, 다시 너는 그 바탕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03.
‘너’는 ‘넘다’와 바탕을 같이 하는 말로써, ‘나’의 너머에 있는 낱낱의 ‘나’를 말한다. ‘나’는 ‘너’를 ‘너’라고 부르고, ‘너’는 ‘나’를 ‘너’라고 부른다. ‘너’는 저마다 낱낱의 ‘너’로서 살아간다.
나의 너머에 있는 나라니, '와~ 시적'입니다.
다음으로 그로 나아갑니다.
04.
‘그’는 ‘긋다’와 바탕을 같이 하는 말로써, ‘나’와 ‘너’의 밖에 있는 ‘그것’인 ‘나’를 말한다. ‘나’와 ‘너’는 ‘이것’이나 ‘저것’으로 마주할 수 있는 ‘나’이고, ‘그’는 머릿속에 ‘그것’으로 있는 ‘나’이다. ‘나’와는 ‘너’는 머릿속에 ‘그’를 함께 함으로써 ‘그’를 언제든지 불어내어 함께 할 수 있다.
<말의 탄생: 녀겨서 니르기>에서 녀김을 형상화한 덕분에 안에 있는 녀김 중에서 겨레의 다른 임자에게 니를 수 있는 녀김이 바로 '그'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시 <공부의 90% 손으로 하는 겁니다>. 또한, '그위'에 대해서도 형상으로 그려지는 듯해서 만족스럽습니다.
05.
'떡'은 한국사람이 특별한 날에 즐겨 만들어 먹던 음식으로 국, 죽, 묵과 함께 하는 것이다. 국, 죽, 묵, 떡은 이빨이 시원치 않거나 이빨이 없는 이들도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음식이다. ‘떡’은 입에 ‘떡떡’ 달라붙지만 입에 넣고서 우물우물 씹으면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다.
식은 죽 먹기란 말의 바탕에 대해 '이빨이 시원치 않거나 이빨이 없는 이들도 먹을 수 있도록'이라는 표현을 보고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특별한 날'도 떡은 보조적 역할로 물러났고, 패스트푸드로 인해 '이빨이 시원치 않아도 먹는 음식'으로 떡이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이 듯합니다.
한편, ‘떡’은 입에 ‘떡떡’ 달라붙는다는 말이 너무 재밌습니다. 아마도 떡을 먹을 때 생각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잊어버리기 전에 마트에 가면 떡을 하나 사 와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기억을 만들어야겠습니다. :)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풀이입니다.
06.
'한다'는 '해=하+이'와 바탕을 같이 하는 말로써, 하늘에 떠 있는 해가 하는 일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다’는 해가 하는 일에 힘을 입어서 온갖 것에서 온갖 일이 일어나게 하는 것, 온갖 일이 벌어지게 하는 것, 온갖 일이 생겨나게 하는 것 따위를 뜻하는 말이다.
언젠가 한 페벗 님이 극찬을 해서 클릭했던 김상욱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감동해서 <유튜브 물리학 강의가 작명을 돕는 우연>이란 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여기에 최봉영 선생님 풀이를 대입하면, 우리가 하루에도 수도 없이 쓰는 '한다'는 운동을 이르는 보편적인 표현입니다. 거기에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에너지를 쓴다는 지극히 과학적 개념이 내재된 말이었습니다.
이 놀라움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 가치를 느낄 수가 없던 '하다'란 말에 과학적 현상에 대한 함축이 들어있었다니 보고도 믿을 수 없습니다.
[1] 나와 인간 사이를 풀이하고 싶었으나 바탕이 되는 최봉영 선생님의 글에서 멀어지는 일을 막기 위해 생략합니다.
4. 두 가지 온인 나 그리고 쪽인 나로 살필 여섯 가지
10.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
11. 한국말은 어떻게 나눠지는가?
13. 한국말에서 자유란 무엇인가?
14. 한국사람에게 사람이란?
15. 한국사람에게 나 그리고 인간(人间)은 무엇인가?
24. 사람됨의 줏대 : 주관(主觀)
29. 인격을 존중하거나 무시하는 일
32. 사람답게 살아야 하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36. 사람이 눈으로 무엇을 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