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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Dec 07. 2023

살림살이라는 말이 나에게 주는 자극들

묻따풀 2023

지난달에 문득 줏대와 잣대라는 말에 대한 녀김이 드디어[1] 작동하는 듯하여 <줏대와 잣대로 삶의 순간들을 차려 보자>를 썼습니다. 이해가 시간을 두고 온다는 사실을 체험한 것이죠.


말차림법 묻따풀의 시작

그러던 차에 <한국말 말차림법> 묻따풀을 영상으로 모여서 하는 자리에서 '살림살이'란 말에 대해 도반들의 반응을 뜨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음 그림을 공유하자, 한 도반이 다음 그림을 '살림살이'를 상징하는 그림인 양 연결했습니다.

전부터 수차례 인용했지만, '살림살이'란 뜻으로 인용한 일은 없었는데, 그다음부터는 저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최봉영 선생님이 그리신 위 그림은 이후로는 살람살이의 필요성이나 살림살이를 해 나가는 바탕을 표현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화상 미팅을 하고 일주일쯤 지났는데 한 페벗 님의 글을 보며 언젠가 '살림살이'란 주제를 두고 묻고 따져 글로 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로 다음 내용입니다.

스스로 무슨 말을 풀어낼 수 있을까요? 이틀이 지난 지금 풀어 보면 <줏대와 잣대로 삶의 순간들을 차려 보자>고 할 때 차림의 핵심 도구가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더 풀어야 할 내용은 이미 <얽힘 상태를 읽는 것에서 시작한다>에서 페벗 님(같은 분)이 주신 댓글을 푸는 과정으로 이미 진행 중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 그랬군요!


사람이 임자로서 차리는 살림살이

사실 지금까지 쓴 내용은 미뤄두었던 '살림살이'에 대한 묻따풀입니다.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또 다른 페벗 님의 글을 보다가 생긴 표현 욕구 탓입니다.

읽어 본 적 없는 책의 일부지만, 즉흥적으로 느낌을 해석해 보게 되었습니다. 박문호 박사님에 따르면 생명 활동에서 '유용하다'는 판단은 생물 차원에서 접근과 회피 둘 중에 '접근'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향해 끄는'을 뜻하는 우리말이 '살리는 힘'이기도 하고, 한국말 '살다', '살리다'는 나아가 '살림' 나 '사람'의 말의 뿌리가 같다는 사실을 연결하면 위 문장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말처럼 읽힙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을 우리는 임자라고 합니다.


밑줄이 없는 아래 문단도 보겠습니다. 역시 처음 보는 글인데, 술술 풀어집니다.

'사람들이 물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한국말 낱말로 바꾸어 잣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건에 고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만, '조물주에게 부여받은 그 물건 고유의'를 나타내는 한국말을 알고 있습니다. 이를 한국말로 '그위'라고 한다는 사실을 오래전에 최봉영 선생님께 배운 덕분이죠. :)


그래서 살림살이는?

'살림살이'란 말을 둘러싼 여러 가지 생각은 풀었는데, 정작 살림살이에 대해 묻고 따지지 못하겠습니다. 사실 제가 이제야 겨우 익숙해진 말에 대해 정의할 실력에는 아직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최근에 겪은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어머니 혼자 살던 집에 저와 여동생이 머문 기간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오래도록 필요 없어 보이는 물건을 여기저기 쌓아두셨는데, 동생이 그걸 싹 치웠습니다. 커다란 쓰레기 봉지 몇 개가 꽉 채워졌습니다. 병원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당연히 불편해하셨습니다.


결혼 후에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아내와 장모님 사이에서도 갈등이 느껴졌습니다. 결혼 전에는 상상도 못 한 일인데, 주방의 소소한 배열에 다들 굉장히 민감했습니다. 주도권을 건드리면 갈등이 촉발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느끼고 실제로 경험할 정도였죠. 제주에 살다 보니 서울에 있으면 어머니 혼자 살던 집에 종종 머무릅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저도 살던 집인데, 이제는 어머니의 사는 방식이 매우 불편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자신의 살림살이에 애정을 갖고 계시고 그걸 변화하는 모습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대개는 그냥 참습니다.


이런 경험이 '살림살이'가 축적되면 정체성 혹은 줏대와 비슷한 효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그래서 살림살이란 그저 세간이나 가정 경제를 뜻한다고 아주 좁게 배웠는데, 이제는 삶의 순간의 차림이 살림살이로 축적되고 재편하고 충돌함을 깨닫습니다.


주석

[1] 그 단어에 처음 관심을 보인 때와 '이제 알겠다'라고 깨달은 시간 차이의 간격이 2년이 넘었음을 표현한 말입니다.


지난 묻따풀 2023 연재

1. 한국말에서 위함과 바람과 꾀함과 보람

2. 욕망하는 두 개의 나: 온인 나와 쪽인 나

3. 사람으로 살아가는 네 가지 일

4. 두 가지 온인 나 그리고 쪽인 나로 살필 여섯 가지

5. 사람들이 한국말로써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

6. 사람들이 영국말로써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

7. 한국사람에게 힘은 무엇을 말하는가?

8. 영국말로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을 활용해 보자

9. 영국말에서 있음, 꼴됨, 이됨, 일됨 살펴보기

10.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

11. 한국말은 어떻게 나눠지는가?

12. 한국말에서 문장은 곧이말을 풀어내는 것이다

13. 한국말에서 자유란 무엇인가?

14. 한국사람에게 사람이란?

15. 한국사람에게 나 그리고 인간(人间)은 무엇인가?

16. 한국사람이 임자로 살아야 하는 이유

17. 언어로 빚는 살리는 힘을 조직하는 능력

18. 한국사람에게 사람됨이란 무엇인가?

19. 사람됨 안에 쌓이고 녹아 있는 문맥

20. 줏대와 잣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기

21. 사회적 성공과는 기준이 다른 줏대

22. 줏대와 잣대로 삶의 순간들을 차려 보자

23. 한국말에서 사람됨과 인성, 인품, 인격

24. 사람됨의 줏대 : 주관(主觀)

25. 줏대를 펼쳐서 누리는 힘 : 권리(權利)

26. 보편적인 인권 그리고 내 삶의 균형

27. 사람의 구실 : 자격(資格)에 대한 묻따풀

28. 우리가 인지조차 못하는 인격에 대한 욕망

29. 인격을 존중하거나 무시하는 일

30. 대한민국에 인격 차별이 존재하는가?

31. 인격 차별이라는 유산과 수평적 소통

32. 사람답게 살아야 하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33. 존비어체계와 민주적 인간관계의 충돌(上)

34. 존비어체계와 민주적 인간관계의 충돌(下)

35. 얽힘 상태를 읽는 것에서 시작한다

36. 사람이 눈으로 무엇을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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