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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Dec 06. 2023

사람이 눈으로 무엇을 보는 것

묻따풀 2023

이 글은 최봉영 선생님이 지난 11월 25일 페북에 쓰신 글을 바탕으로 스스로 묻고 따져 풀어 본 기록입니다.


눈이 보인다 = 시각 입력, 마주해야 보인다

01.
사람이 눈으로 무엇을 보려면 먼저 눈에 무엇이 보여야 한다. 한국사람은 눈에 무엇이 보일 수 있으면 “눈이 보인다.”라고 말한다. “눈이 보인다.”는 눈이 무엇이 보일 수 있는 상태에 있음을 일컫는 말이다. 눈이 잘 보이는 사람은 눈이 좋은 사람이고,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은 눈이 나쁜 사람이다.

쉬운 표현이라 그러한지 아니면 박문호 박사님의 '감정의 손때를 묻히라'는 말의 감동 때문인지 때문인지 단순한 뇌과학적 지식으로 풀여 보고 싶었습니다. 눈이 보인다는 것은 두뇌의 상태인지이고, 시각 입력이 정상적으로 실행된다는 것을 인지한 후 녀기고 니를 수 있은 말이겠죠.


다음 구절은 '마주하기'가 등장하며 흥미가 생깁니다.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은 빛이 반사될 대상이기도 하고 내 눈이 향(向)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02.
눈이 잘 보이는 사람이라도 눈이 무엇을 마주하고 있어야 눈에 무엇이 보이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한국사람은 눈이 무엇을 마주해서 무엇이 보이는 일이 일어나면 “눈에 무엇이 보인다.”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눈에 산이 보인다.”, “눈에 작은 글씨가 보인다.” 따위로 말한다.

<공부의 90% 손으로 하는 겁니다>라는 박문호 박사님 가르침에 따라 생각을 그려 보았습니다.


보다: 보고자 하는 무엇을 보는 일

'보이다'와 '보다'의 한 끗 차이로 이렇게 달라지다니 한국말에 간결함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수도 없이 쓰던 말을 이제 와서 감탄한다는 사실이 우습지만, 어쨌든 감탄을 합니다.

03.
사람은 눈에 무엇이 보이면, 보고자 하는 무엇을 보는 일로 나아간다. 한국사람은 보고자 하는 무엇을 보는 일을 두고서 “나는 산을 본다.”, “나는 작은 글씨를 본다.” 따위로 말한다. “나는 산을 본다.”는 나의 마음이 눈으로 산을 보는 일에 꽂혀 있고, “나는 작은 글씨를 본다.”는 나의 마음이 눈으로 작은 글씨를 보는 일에 꽂혀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는 일에 꽂혀 있다는 표현에서 '마음이 가다'로 바뀌는 과정에 대해 선생님의 글에 제 손때를 묻혀 표현해 봅니다. 그런데, 보다와 나머지는 어쩐지 층위가 다른 듯합니다. 어떻게 표현할까 하다가 인지적으로 강하게 느껴지는 보다는 그대로 두고 나머지는 점선과 흐린 글씨로 나타냈습니다.

한편, '따위'를 보자 <한국말 말차림법>을 함께 묻따풀 하는 도반들이 부정적 어감으로 사용을 꺼리던 '따위'를 써야겠다고 말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들을 변하게 한 배경에서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 쓰기> 인용문이 있었습니다.[1]

출처: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쓰기>


시력(視力)과 지력(智力)으로 보다

다음 단락으로 이어갑니다.

04.
사람은 눈으로 보는 일을 잘하려면 먼저 눈이 잘 보여야 하고, 다음으로 눈에 무엇이 잘 보여야 하고, 끝으로 무엇을 눈으로 보는 일을 잘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쉽지 않다.

왜 쉽지 않을까요? 평소 따져 보지 않던 질문입니다.

첫째로 사람이 눈이 잘 보이려면 눈을 좋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눈을 좋게 만들어야 눈이 잘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눈을 좋게 만드는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람이 무엇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꼴을 또렷이 볼 수 있도록 시력(視力)을 좋게 만드는 일이다. 사람은 시력을 잃으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조차 볼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무엇에서 꼴이나 일이 비롯하는 까닭과 흐름을 꿰뚫어 볼 수 있도록 지력(智力)을 좋게 만드는 일이다. 사람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있어야 무엇을 어떠한 것으로 알아볼 수 있다. 사람은 시력과 지력을 좋게 만들면 온갖 것이 잘 보이는 좋은 눈을 가질 수 있다.

본다는 활동에는 두 가지 힘이 필요하다는 설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시력(視力)과 지력(智力)이죠. 다시 그려 봅니다.

그리면서 절로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배운 '녀기다'라는 낱말을 연상합니다.


지식을 훔치려면 의견을 완전히 비우고 들어라

다음으로 갑니다. 뜻밖의 풀이라는 느낌이 먼저 듭니다.

둘째로 사람은 눈에 무엇이 잘 보이려면 무엇이든 그냥 마주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람이 열린 마음을 갖게 되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 따위가 그냥 눈에 들어와 보이게 된다. 사람은 무엇이 그냥 눈에 들어와 보여야 무엇을 그냥 눈으로 보는 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이 닫힌 마음을 갖게 되면 마음에 두고 있는 것만 눈에 보이게 되어 눈으로 그냥 보는 일을 하지 못한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라는 속담이 그것이다. 그것밖에 눈에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에 눈으로 무엇을 보는 것이 그냥 그것에 갇혀서 일어난다.      

그러고 나서 <아티스트로 살기 위해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를 쓸 때의 느낌이 살아납니다. 또한, <줏대와 잣대로 삶의 순간들을 차려 보자>를 쓰면서 우물 안 개구리를 떠올렸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마지막으로 박문호 박사님 영상에서 지식을 훔치려면 완전히 자기 의견을 비우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줏대와 잣대로 차리는 살림살이

아래 문단을 보니 다시 <줏대와 잣대로 삶의 순간들을 차려 보자>가 떠오릅니다.

셋째로 사람은 무엇을 눈으로 보는 일을 잘하려면 무엇에 대해서 그냥 묻고 따지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람이 무엇에 대해서 그냥 묻고 따지게 되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 따위를 넘어가게 된다. 사람이 묻고 따지는 일을 통해서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 새롭게 보이게 되고, 이제까지 보지 않던 것을 새롭게 보게 되고, 이제까지 알 수 없었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눈으로 무엇을 보는 일을 넘어서 코와 혀와 살이 어우러진 온몸으로 무엇을 보는 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어제 <한국말 말차림법>을 함께 묻따풀 하는 도반 황호성 님의 '바라다' 풀이 과정을 보면서 세밀한 살림살이 장면을 눈으로 보는 듯했습니다.

저 스스로의 살림살이 과정은 제가 쉽게 보지 못하기 때문에 도반이 보여주는 모습은 굉장히 소중한 관찰 기회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슬기는 바로 보는 데에서 채워진다

마지막은 가장 많은 질문을 만드는 문단입니다.

05.
사람들이 어리석게 살아가는 것은 무엇을 보는 일을 바르게 하지 못해서이다. 그들은 멀쩡한 눈을 갖고 있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에 그것밖에 보이는 것도 없고, 그것밖에 보는 것도 없고, 그것 밖에 아는 것도 없다. 그들은 그것에 갇혀서 그것만 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묻고 따지는 일을 하지 못한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그것을 그것으로 풀어내는 껍데기 앎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산은 산이다’, ‘물은 물이다’, ‘학습은 학습이다’, ‘교육은 교육이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물과 산이 어떻게 함께 하고, 학습과 교육이 어떻게 함께 하는지조차 묻고 따지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모든 것이 다 보이고, 모든 것을 다 보고,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뻔뻔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간다. 가장 큰 어리석음이 가장 큰 앎으로 탈바꿈해 버린다.

먼저 어리석다의 의미를 묻고 싶었습니다.

슬기롭지 못하고 둔하다

새로운 상황을 맞이해도 우물 안에서 상황을 해석하기 때문에 슬기롭지 못한 것이라고 풀어 봅니다. '묻고 따지는 일'은 호기심을 동력으로 삼는데 그게 생기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그것으로 풀어내는 껍데기 앎'이란 무슨 뜻일까요? 왜 껍데기일까요? '그것을 그것으로'를 읽을 때, 과거의 내 경험에 있던 것을 폐쇄 회로처럼 그대로 꺼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 순간에 포함된 새로움을 버리고 마치 과거에 사는 꼴이 됩니다. '새로움을 버리고'의 반대말이 '살리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어로 빚는 살리는 힘을 조직하는 능력>에서 다룬 바로 그 '살리는 힘'을 쓰는 것이죠.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을 함께 묻따풀 하는 도반들 중에서 유영모, 황호성, 이형도 님이 '따위'를 강하게 지지하시는 바람에 저도 이끌려서 이오덕 선생님을 가르치을 따라 <Tidy First 번역> 과정에서 '등' 대신에 따위를 쓰기로 했습니다.


지난 묻따풀 2023 연재

1. 한국말에서 위함과 바람과 꾀함과 보람

2. 욕망하는 두 개의 나: 온인 나와 쪽인 나

3. 사람으로 살아가는 네 가지 일

4. 두 가지 온인 나 그리고 쪽인 나로 살필 여섯 가지

5. 사람들이 한국말로써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

6. 사람들이 영국말로써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

7. 한국사람에게 힘은 무엇을 말하는가?

8. 영국말로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을 활용해 보자

9. 영국말에서 있음, 꼴됨, 이됨, 일됨 살펴보기

10.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

11. 한국말은 어떻게 나눠지는가?

12. 한국말에서 문장은 곧이말을 풀어내는 것이다

13. 한국말에서 자유란 무엇인가?

14. 한국사람에게 사람이란?

15. 한국사람에게 나 그리고 인간(人间)은 무엇인가?

16. 한국사람이 임자로 살아야 하는 이유

17. 언어로 빚는 살리는 힘을 조직하는 능력

18. 한국사람에게 사람됨이란 무엇인가?

19. 사람됨 안에 쌓이고 녹아 있는 문맥

20. 줏대와 잣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기

21. 사회적 성공과는 기준이 다른 줏대

22. 줏대와 잣대로 삶의 순간들을 차려 보자

23. 한국말에서 사람됨과 인성, 인품, 인격

24. 사람됨의 줏대 : 주관(主觀)

25. 줏대를 펼쳐서 누리는 힘 : 권리(權利)

26. 보편적인 인권 그리고 내 삶의 균형

27. 사람의 구실 : 자격(資格)에 대한 묻따풀

28. 우리가 인지조차 못하는 인격에 대한 욕망

29. 인격을 존중하거나 무시하는 일

30. 대한민국에 인격 차별이 존재하는가?

31. 인격 차별이라는 유산과 수평적 소통

32. 사람답게 살아야 하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33. 존비어체계와 민주적 인간관계의 충돌(上)

34. 존비어체계와 민주적 인간관계의 충돌(下)

35. 얽힘 상태를 읽는 것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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