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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Dec 25. 2023

두루 함께 하는 말과 ‘그위(公)’의 지배

‘그위’에 자리한 것으로서 말

이 글은 지난 2021년 12월 29일 최봉영 선생님이 페북에 쓰신 글 <사람이 말로써 뜻을 사무침>중에서 <

1. ‘그위’에 자리한 것으로서 말>을 바탕으로 앞선 글에 이어 스스로 묻고 따져 풀어보는 내용입니다.


말은 모두가 두루 함께 하는 ‘그위(公)’의 것

그위(公)를 자주 들으니 익숙해지네요.

04.
사람들이 만들어 써온 말은 모두가 두루 함께 하는 ‘그위(公)’의 것이다. 말은 낱낱의 내가 저마다 배우고 쓰는 것이지만, ‘그위(公)’에 자리하여 모두가 두루 함께 함으로써, 말로써 구실 한다.

모두에게 두루 햇살이 내리쬐듯이 겨레에 녀기고 니르는 힘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겨레말이구나 하는 깨우침을 주는 문장입니다.

05.
말은 ‘그위(公)’에 자리한 것으로서 낱낱의 나에게 ‘~라’고 말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말은 낱낱의 나에게 “이것은 딸기라”, “저것은 감자라”, “그것은 책이라”, “이것은 달려가는 것이라”, “저것은 보고 싶은 것이라”,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라고 말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그위(公)’에 자리한 것으로서 말이 ‘~라’고 말하게 하는 것을 좇아서, 다른 이들과 말의 뜻을 사무치게 된다.


그위(公)가 된 후에는 나를 부린다

앞선 문단은 부드럽게 수긍할 수 있었는데, 다음 문단에서는 '말이 나에게 ‘~라’고 말하도록 시키는 것'에서 멈추게 됩니다.

06.
말이 ‘그위(公)’에 자리한 것으로서 낱낱의 나에게 ‘~라’고 말하게 하는 것은 말이 나에게 ‘~라’고 말하도록 시키는 것이고, 부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이 나에게 ‘~라’고 말하도록 시키는 것과 부리는 것을 제대로 따를 때, 말의 뜻을 서로 잘 사무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배우고 쓰는 말이 저마다 어긋나고 틀어지기 때문에 서로 뜻을 잘 사무칠 수 없게 된다.

말이 나에게 시킨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나아가 부리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말이 나를 부린다는 표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소통을 위해서 우리는 그렇게 그위(公)가 된 것을 따르는 것을 의미할까요? '부리다'는 말의 어감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말의 뜻을 서로 잘 사무치려면 그위(公)를 따라야 함은 분명합니다.


불편한 어감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위(公)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그간 몰랐고, 지금은 인식했다는 사실입니다. 수도 없이 인용한 최봉영 선생님의 그림을 다시 소환합니다.


우리는 문화와 문명의 지배를 받는다

동시에 최봉영 선생님이 대칭화에 대한 설명을 할 때, 우리가 장소에 따라 행동의 제약을 받는 부분이 자연과학의 대칭과 닮았다는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문화와 문명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마치 자연의 지배처럼 말이죠. 말이 그위(公)가 된다는 말의 무게를 조금 이해하게 된 듯도 합니다.


다음 단락으로 가 보겠습니다.

07.
말이 나에게 ‘~라’고 말하게 하는 것을 내가 벗어나게 되면, 나는 모두가 두루 함께 하는 ‘그위(公)’를 벗어나서, 나만 따로 하게 된다. 이를테면 말이 나에게 “이것은 딸기라”라고 말하게 하는 것을 내가 “이것은 감자라”라고 말하고, 말이 나에게 “이것은 내가 한 것이라”라고 말하게 하는 것을 내가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그위(公)’를 벗어나서, 나만 따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는 나의 밖에 있는 다른 모든 이들이 함께 하는 것을 저버린다.

'함께 하는 것을 저버린다'는 표현이 주는 위협에 대해 저항하는 마음이 드는 걸까요? 돌연 아이들에게 자주 읽어 주던 동화 얘기가 떠오릅니다. <웨슬리 나라>라는 책 내용인데요. 이웃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왕따가 되었는데, 외계에서 온 식물 덕분에 웨슬리의 사색하던 힘이 문명을 일구게 된 사건이 떠오릅니다. 저버리다는 말은 공동체에서 소외 혹은 추방될 위험을 전제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문명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전제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아티스트로 살기 위해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도 떠오릅니다. 물론, 세스 고딘의 주장은 남들과 같은 말을 거부하라는 차원은 아닙니다. 다만, 이카루스 신화처럼 ‘그위(公)’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힘에 저항하라는 삶을 '아티스트'로 지칭했죠.


지난 묻따풀 2023 연재

1. 한국말에서 위함과 바람과 꾀함과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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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람으로 살아가는 네 가지 일

4. 두 가지 온인 나 그리고 쪽인 나로 살필 여섯 가지

5. 사람들이 한국말로써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

6. 사람들이 영국말로써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

7. 한국사람에게 힘은 무엇을 말하는가?

8. 영국말로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을 활용해 보자

9. 영국말에서 있음, 꼴됨, 이됨, 일됨 살펴보기

10.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

11. 한국말은 어떻게 나눠지는가?

12. 한국말에서 문장은 곧이말을 풀어내는 것이다

13. 한국말에서 자유란 무엇인가?

14. 한국사람에게 사람이란?

15. 한국사람에게 나 그리고 인간(人间)은 무엇인가?

16. 한국사람이 임자로 살아야 하는 이유

17. 언어로 빚는 살리는 힘을 조직하는 능력

18. 한국사람에게 사람됨이란 무엇인가?

19. 사람됨 안에 쌓이고 녹아 있는 문맥

20. 줏대와 잣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기

21. 사회적 성공과는 기준이 다른 줏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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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한국말에서 사람됨과 인성, 인품,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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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줏대를 펼쳐서 누리는 힘 : 권리(權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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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인격을 존중하거나 무시하는 일

30. 대한민국에 인격 차별이 존재하는가?

31. 인격 차별이라는 유산과 수평적 소통

32. 사람답게 살아야 하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33. 존비어체계와 민주적 인간관계의 충돌(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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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사람이 눈으로 무엇을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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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사람은 어떻게 말이 뜻을 갖게 만드는가?(下)

38. 사람이 떡을 먹는 일로 시작하는 바탕 차림 공부

39. 나-나다, 너-넘다, 그-긋다 그리고 한다의 바탕 차림

40. 대부분 몰랐던 한국말의 놀라운 바탕

41. ‘그위’에 자리한 것으로서 말과 그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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