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위’에 자리한 것으로서 말
이 글은 지난 2021년 12월 29일 최봉영 선생님이 페북에 쓰신 글 <사람이 말로써 뜻을 사무침>중에서 <
1. ‘그위’에 자리한 것으로서 말>을 바탕으로 앞선 글에 이어 스스로 묻고 따져 풀어보는 내용입니다.
03.
사람들은 말의 힘을 빌려서 실상과 상상과 공상과 망상 따위에서 비롯하는 온갖 것을 갖가지로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리고 끝없이 생각을 펼쳐서, '있는 것'도 사라지게 만들고, '없는 것'도 생겨나게 만들 수 있는 갖가지 힘을 길러온 결과로 오늘과 같은 문화와 문명에 이르게 되었다.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박문호 박사님이 기억에 대해 설명할 때 보여준 사진이 떠오릅니다. 공유된 경험을 통해 소통이 가능해진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모든 경험을 함께할 수 없기 때문에 맛깔나게 시각화하여 이야기합니다. 그것도 안 되면 실제로 만들어내는 힘으로 문화와 문명이 커져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따져 묻지 않았더라도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아래 최봉영 선생님의 그림과 같은 기능을 띄고 있습니다.
반면에 말의 자유도로 인한 혼선도 있습니다. 대화를 할 때 상대의 말이 실상(實相)인지 상상(想像)인지 혹은 공상(空想)인지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흔히 사리분별이라고 역량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문해력 혹은 리터러시라는 표현도 쓰는데, 먼저 바로 보고 제대로 녀기는 역량부터 필요합니다.
하지만, 편향에서 벗어나 현상을 그대로 보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가능했으나 성인이 되면서 자꾸만 잃어버리는 역량이라고들 말합니다. 긍정, 공감, 경청 따위의 방법이 필요합니다.
<줏대와 잣대로 삶의 순간들을 차려 보자>에서 묻따풀 하며 익숙해진 차림 혹은 살림살이란 개념도 무조건 좋은 면만 있지는 않습니다. 차리는 행위야 가치중립적이지만 우리는 가치관과 선호를 가진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나의 인성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사람됨의 줏대 : 주관(主觀)>을 쓰며 분명히 했습니다.
주관이 지나치게 뚜렷하고 더불어 함께 하는 마음을 잃으면 고집불통이 될 수 있습니다. 저의 과거만 보아도 그랬던 순간들이 꽤나 많습니다. 다행히 더불어 함께 하는 삶은 내가 고집불통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바로 <리더의 직시는 의무고, 과학은 마음의 상태다>에서 표현한 마음 상태가 그러합니다.
<공공성을 지닌 말의 바탕 그리고 지식 공동체로서의 겨레>라는 글을 쓰면서 '겨레'의 뜻을 빌려 지식 공동체를 '유사 겨레'로 만들어가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사실 새로울 것도 없이 서구에서 이미 그런 제안이나 개념이 존재합니다.
실제로 그러한 장을 만들고 실천하여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겠죠. 한편, 많은 사람들이 대화의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저 역시 그랬기 때문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그 과정에서 박문호 박사님의 영상을 만나 배운 내용은 굉장히 소중합니다.
다층적 사고로 맥락이 형성되며, 바로 그 맥락이 상대의 말을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죠.
4. 두 가지 온인 나 그리고 쪽인 나로 살필 여섯 가지
10.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
11. 한국말은 어떻게 나눠지는가?
13. 한국말에서 자유란 무엇인가?
14. 한국사람에게 사람이란?
15. 한국사람에게 나 그리고 인간(人间)은 무엇인가?
24. 사람됨의 줏대 : 주관(主觀)
29. 인격을 존중하거나 무시하는 일
32. 사람답게 살아야 하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35. 사람이 눈으로 무엇을 보는 것
38. 사람이 떡을 먹는 일로 시작하는 바탕 차림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