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배워 지금 써먹기
작년에 <커피를 둘러싼 이야기와 사업하는 이유>에서 언급했던 카페 사장님을 꾸준히 만납니다. 그냥 만나는 것은 아니고 그곳에 가면 바에 앉아서 손님맞이를 좋아하시는 사장님과 대화하며 취향까지 고려해 주시는 드립 커피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죠.
지인에게 그곳을 소개해 주었더니 어느샌가 저보다 더 좋아하는 눈치였습니다. 그 후 자주 그곳에서 지인과 만났는데 One Day Class를 같이 하자고 해서 수락하고 함께 했습니다.
실습을 하며 바로 앞에서 친근한 사장님이 선생님이 되어 가르쳐 주시니 굉장히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푸어링 하는 모습 등을 보며 저희 성격과 연관성도 이야기를 해 주시고 입체적인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기 발걸음'에 이미 익숙한 저는 여기서 한번 배운 것이 집에서 절대로 바로 될 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푸어링 하나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지인 역시 여러 차례 배워야겠다고 말했지만, 집에 가서 해 보니 커피맛이 엉망이었다며 실망하는 눈치였습니다.
구글링으로 '푸어링'을 검색하니 '상업주의'란 단어만 떠오르는 결과가 즐비해서, '커피 푸어링'으로 검색하니 제가 경험한 뜨거운 물 붓기는 한 가지 양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라떼 푸어링의 경우는 모양까지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핸드드립 과정에서 뜨거운 물을 붓는 행위를 뜻하는 푸어링에 집중하겠습니다.
제가 푸어링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실습을 하는데 물을 붓는 일이 의외로 흥미로웠습니다. 아마 고도의 집중력을 쉽게 훈련할 수 있고, 팔근육 움직임에 따라 물줄기가 조절되는 부분이 뜻밖의 흥미를 주는 듯합니다. 선생님께 집에 가서 푸어링만 연습하겠다고 했더니 화분에 물 주기를 많이 한다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집에 화분이 많기는 하지만, 어머니가 키우는 것인데 주로 선인장류라 물 주기를 자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싶었는데, 마침 커피 푸어링을 위해 주문한 주전자[1]를 뜯고 난 후에 설거지를 하게 될 때 '아하'하며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다음 그림과 같이 프라이팬 손잡이 구멍이 있어서 거기에 물을 부어 보았습니다.
수업에서 순식간에 배운 내용이 상당히 많은 지식으로 나눠진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닫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푸어링 동작도 주전자 꼭지에서 물이 떨어지게 하는 적당한 힘과 물줄기가 떨어지는 위치 변화를 느껴 봅니다. 수업을 할 때는 따라 가느라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들입니다.
그리고, 제가 손잡이를 그냥 잡을 때 세끼 손가락을 습관적으로 뺀다는 버릇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손잡이 안에 세 손가락을 걸었을 때와 네 손가락을 걸었을 때 무슨 차이가 생기는지 시도해 봅니다. 그리고 물줄기를 조절하는 손과 팔의 감각을 익힙니다. 수업을 들을 때와 푸어링 자체를 할 때의 집중하는 포인트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사장님 멘트를 떠올려서 화분에 물 주기도 해 봅니다. 물이 땅에 떨어질 때와 잎에 떨어질 때 변화를 봅니다.
푸어링 즐 물 붓기로 초점을 옮기자 응용 범위는 더 늘어납니다. 심지어 티백 커피를 넣고도 푸어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앞선 푸어링 연습 후에 다시 지인과 커피 클래스를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푸어링 이전에 뜸 들이기 하는 단계에 매료되었습니다. 알면 또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은 중국이라는 땅에 가서 배우는 삶의 단면이나 경영을 하면서 배우는 새로움을 헤쳐나갈 때의 질감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하는 사람과의 교류와 호흡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쏜살같이 두 달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커피숍에 자주 가는 직업 일상 그리고 집에서는 아내가 모카포트로 커피를 마십니다. 그런 라이프 스타일 속에서 이미 제 머릿속에 절로 떠오르는 일들의 우선순위를 미루고 푸어링을 연습할 동기도 식었습니다. 함께 하는 이들과 즐기던 몇 주간의 추억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만,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커피 클래스로 혹은 푸어링의 시간을 여유를 내어 만들 수 있다는 체험이 몸에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여행하듯 같지만 다른 이들과 혹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다시 경험하는 날이 오리라 믿게 됩니다.
[1] 쇼핑몰 상품명에는 '커피드립피쳐'라고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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