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 말차림법 묻따풀
지난 글에 이어 <한국말 말차림법> 2장 '말과 녀김'을 함께 읽고 묻고 따져 풀어 본 기록입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갑니다.
사람들이 말을 만들어 쓰는 것은 무엇을 어떤 것으로 녀기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녀김 역시 앞서 묻고 따지는 과정에서 그린 그림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아래 문장을 수월하게 한 번에 읽었는데, 도올선생의 <노자가 옳았다>를 과거에 읽은 탓입니다.
"도가도 비상도"는 "사람들이 말로써 도를 어떤 도라고 녀기게 되면, 말하고자 하는 본래의 도와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명가명 비상명"은 "사람들이 말로써 이름을 어떤 이름이라고 녀겨서 말하게 되면, 말하고자 하는 본래의 그 이름과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노자가 옳았다>의 해당 구절을 찾아보았습니다. 30쪽 내용입니다.
도를 도라는 언어개념 속에 집어넣어 버리면, 그 개념화된 도는 항상 그렇게 변화하고 있는 도의 실상을 나타내지 못한다.
여기에 더하여 박문호 박사님께 들은 '현상적 세계'라는 설명이 더욱 명료하게 녀길 수 있게 도왔습니다.
다음 문장을 <사피엔스>에서의 배움과 연결하면 허구에 모양을 만들어 내고 물질로 만들어 온 문명이라는 역사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말로 녀겨서 알아보는 일을 통해 늧으로 주어지지 않은 것까지 나아갈 수 있다. <중략> 사람들이 말을 만들어 쓰는 것은 무엇을 어떤 것으로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일에 쓰고자 하는 뜻에서 비롯하는 일이다. 이러니 사람들이 어떤 말을 만들어 쓰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하는 뜻이 바탕에 깔려 있다.
흔적을 좇다 보니 과거에 인용한 <생각의 노예가 아닌 주인 되기>에서 인용한 내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고지능'은 생각하는 능력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을 언어와 관념의 사용으로 보고 있으니, '사고지능'의 역사가 대력 20만 년이지만, 설형문자를 만들어 사고의 내용을 유기체 외부에 저장할 수 있게 된 3,300년 전부터 '사고지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고지능'이 본격화된 것은 언어라는 도구에 기인한 면이 크다는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글에서 소개한 영상에 따르면 언어가 출현하여 인류와 문화가 함께 진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갑니다.
사람들은 말에 담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불러내어 마주할 수 있다.
앞서 묻따풀 결과로 그린 그림을 재사용합니다.
위 그림이 말을 뜻을 만들어내는 사고의 하나의 차원으로 보면 사회에서 불러내어 마주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이 있습니다. 자주 인용한 최봉영 선생님 그림입니다.
위 두 개의 그림은 종횡으로 교차해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굉장히 다층적으로 다양한 맥락이 겹쳐져서 벌이지기 때문에 2차원 평면 같은 것은 아닙니다.
녀기다와 니르다가 쌍으로 활용되는 상황은 역시 앞서 그린 그림으로 형상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뜻으로 녀겨진 후에 니를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니름 자체를 정의한 것은 아니고 대화를 그린 것이지만, 대화는 니름의 반복으로 이뤄진다 할 수 있습니다.
니르다에 대한 정의는 책에 있습니다.
낱낱의 무엇을 어떤 말로 녀겨서 니르는 것을 '기호'라고 부른다. 기호는 낱낱의 무엇을 어떤 말로 녀겨서 니르는 소리와 뜻을 하나로 아우른 것이다. <중략> 사람들이 어떤 말을 만들어 쓰는 것은 낱낱의 무엇을 녀겨서 니르는 '기호'를 만드는 일에서 비롯한다.
책에서 하나의 소리에서 펼쳐나간 단어들을 다룰 때 묘한 신비함이 느껴졌습니다.
'녀기다'는 '넋'과 '녘'과 '넉살'과 '넉넉하다'와 바탕을 같이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람은 무엇을 어떤 것으로 녀기는 님자(임자)를 넋이라고 보았다.
한국사람은 녀김의 님자인 넋이 무엇을 향하는 쪽을 녘이라고 불렀다.
넋이 온갖 녘으로 나아가는 것을 넉살이라고 말한다. 넉살은 넋의 살로, 녀김의 님자인 넋에서 나아가는 살을 말한다.
사람들은 넋이 무엇을 어떤 것으로 녀기는 일이 매우 널널하게 이루어진다고 보아서 '넉넉하다'라는 말을 만들어 썼다. 사람이 무엇을 어떤 것으로 녀기는 일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온갖 녘으로 끝없이 뻗어갈 수 있다.
그리고 넋이 녘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널널하게' 혹은 '넉넉하게' 이뤄진다는 표현에서 '살리는' 속성이 느껴졌습니다.
사람들은 넋이 무엇을 어떤 것으로 녀기는 일이 매우 널널하게 이루어진다고 보아서 '넉넉하다'라는 말을 만들어 썼다. 사람이 무엇을 어떤 것으로 녀기는 일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온갖 녘으로 끝없이 뻗어갈 수 있다.
또한 과거의 경험 덕분에 최근에 쓴 <한국사람에게 사람이란?>을 절로 떠올리게 합니다.
한국말에서 사람은 ‘살다’, ‘살리다(살+리+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말이다. 사람은 온갖 것이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임자를 말한다.
2. 욕망: 감정, 느낌, 상태를 관찰해 말로 차려 보자
3. 공공성을 지닌 말의 바탕 그리고 지식 공동체로서의 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