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말을 걸어 글로 쓰는 이야기
'들어가며'를 읽다가 다음 구절에서 울 뻔했습니다.
나는 야구라는 것으로 인생을 전하고 싶었다. 단순히 이기고 지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절망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야구에는 '다음 경기'가 있지 않은가.
엘리멘탈을 보다가 아빠가 딸에게 하는 말을 듣고 울컥했는데, 옆에서 보던 큰 아이가 놀라웠느니 그 후로 계속 아빠는 영화 보다가 운다는 말을 합니다.
잠시 저의 영화 보다가 우는 행동으로 관심을 옮겨 보겠습니다. 저의 우는 행동은 기록으로도 남겨져 있습니다.
전쟁 영화인 FURY를 볼 때 나에게 위로를 주는 듯한 장면으로 (넓은 극장에서 거의 혼자) 펑펑 울었던 기억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FURY에서 제가 감동해서 운 장면과 야신의 글 사이에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FURY의 주인공이 탱크를 떠나지 않듯이 야신은 어떤 일이 있어도 야구를 떠나지 않습니다. 영화 보다 울기라는 사건을 찾아보다가 그 사건의 바탕에 놓인 저의 가치관을 찾은 듯합니다. 그리고 기록을 담은 글에도 이미 '꾸불꾸불한 인생의 길(道)'이란 표현이 있었습니다.
자꾸만 결과에 대해 몰아치는 듯한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은 큰 위로가 됩니다.
지금 당장 즐겁든 슬프든, 자신이 그 속에서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운 탓, 남 탓만 하며 비관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 자기가 지금 베스트라는 확신이 들 만큼 열심히 하면 기회는 언젠가 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는 사회 초년생 시절 알려주신 <어려움 속에서 반드시 여유를 만들라>는 지혜를 떠오르게 합니다. 하지만, 야신은 위로하려고만 책을 쓴 것은 아니겠죠. 인용한 다발말[1] 속에 '어떻게'에 대한 그의 생각이 들어 있습니다. 바로 '무엇이든 자기가 지금 베스트라는 확신이 들 만큼 열심히 하면'을 전제합니다.
다시 보니 열심히 했다고 생각할 때 결과가 좋지 않아도 괜찮다고 위로해 주었던 장면 중 하나로 영화 FURY를 볼 때 흘렸던 감동의 눈물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야신이 야구를 통해 전하는 인생의 핵심은 바로 '무엇이든 자기가 지금 베스트라는 확신이 들 만큼 열심히 하기'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결과가 좋지 않아도 우리는 '다음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