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지난 글에 이어서 최봉영 선생님의 글 《어떻게 큰일이 벌어지는가?》7~9번을 풀어 봅니다.
다음 구절을 읽다가 '헉'하게 됩니다. '안누구'가 혹시 저를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죠.
07.
터박이 바탕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알게 되었을 때 큰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나는 여러 사람을 통해서 또렷이 보게 되었다. 김누구1, 한누구, 최누구, 유누구, 노우구, 윤누구, 김누구2, 김누구3, 안누구1, 송누구, 김누구4, 이누구1, 이누구2, 안누구2, 신누구, 황누구 그리고 그 밖의 누구누구와 같은 이들은 나름으로 큰 깨달음을 얻은 이들이다. 이즈음 나와 함께 묻고 따지는 이들은 말이 말을 주고받는 가운데 신나게 부지런히 말을 묻고 따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겨레가 일구어 놓은 슬기를 만나고 누리는 일에 크게 즐거워하고 있다.
그런데 큰 깨달음은 무엇일까요? '나름으로'라는 수식이 있으니 비교값이 아닌 '저마다'의 '큰 깨달음'이라고 느껴지는데. 일단, 큰 깨달음이 무엇일까요? 얼마 전에 최봉영 선생님께 물은 흔적이 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크다'의 정의입니다. 선생님 풀이에 고유성을 더하는 표현은 '크는 일을 온전하게'에 있습니다. 이는 바로 작년 10월 <한국사람에게 사람이란?>에서도 봤던 특징입니다.
한국말에서 사람은 ‘살다’, ‘살리다(살+리+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말이다. 사람은 온갖 것이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임자를 말한다.
위 정의를 바탕에 두면 '크다'는 사람이 임자로서 행한 결과로 벌어지는 일입니다. 지난 글에서 손때를 묻힌 그림을 다시 불러 볼까요? '크다'의 바탕에는 사람의 살아가는 일의 '펼침새'와 연관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고, 반대로 임자가 '하다'의 쓰임새로 무언가를 택하면 '크다'가 등장해 '살다'가 비로소 짜임새를 갖춥니다.
다른 분이 지나가다 한 수 가르쳐 주신 내용도 있습니다. 마차 미분과 적분처럼 쌍을 이루는 듯한 구절이 보입니다.
빅뱅의 결과로 생겨난 틈이라는 시공간을 사는 우리는 그 틈 안에서 마찬가지로 살리는 삶을 사는데, 이는 또 우리와 인연을 맺는 다양한 사람과 사물과 사이에 있는 틈을 발견하고 이를 채우거나 혹은 비우거나 하는 식으로 살아간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풀이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나 주고받는 것으로 되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이유는 7번 글귀의 뒤쪽 문장에 나와 있습니다.
이즈음 나와 함께 묻고 따지는 이들은 말이 말을 주고받는 가운데 신나게 부지런히 말을 묻고 따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겨레가 일구어 놓은 슬기를 만나고 누리는 일에 크게 즐거워하고 있다.
일단 저는 신이 나 있고 부지런하게 할 생각이라 설사 지금 오류가 있다고 해도 어느 때에는 나아질 것입니다. 콩 심은 데 콩이 나는 것처럼요. 그리고 '겨레가 일구어 놓은 슬기'란 말을 보면서 <‘그위’에 자리한 것으로서 말>을 쓰면서 조금 더 가까워졌던 '그위'를 떠올립니다. 말의 바탕이 되는 '그위'란 바로 '겨레가 일구어 놓은 슬기'구나를 깨닫기도 합니다.
8번은 전혀 다른 입장으로 읽게 됩니다.
08.
나는 김택신 교사와 더불어 20년 가까이 어린 학생들이 터박이 바탕 낱말의 뜻을 알게 되었을 때, 생각과 행동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촘촘하게 살펴왔다. 언제나 놀라운 일어났다. 새 학기가 되고 나서 두세 달이 지나지 않아서 교실의 분위기가 천국처럼 변하고, 묻고 따져서 푸는 일이 매우 야무지게 이루어지는 것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어린 학생들이 '사람'과 '살림'의 바탕뜻이 무엇이고, '나'와 '너'의 바탕뜻이 무엇이고, '우리'와 '남'의 바탕뜻이 무엇이고, '어울림'과 '아름다움'의 바탕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고, 태도가 바뀌는 것을 환히 볼 수 있었다. 이런 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하나하나 또렷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자료를 모아 놓았으니 궁금한 이들에게 보여줄 수도 있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을 참하게 만드는 것은 아주 가까이 있는 일이고, 매우 쉬운 일이다.
묻따풀 하는 임자가 아니라 두 아들과 함께 배우는 아빠 입장에서 기대하게 됩니다. 제가 사랑하는 둘째 녀석이 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무려 20년 동안 검증된 한국말 책이 초등학생 용으로 나온다고 하니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마지막 구절은 숙제를 내주신 듯합니다. ;)
09.
한국사람이 물, 불, 땅, 하늘, 바다, 사람, 나, 너, 우리, 남, 것, 일, 꼴, 성, 정, 덕, 신, 본, 보기, 어짊, 모짊, 떨림, 울림, 어울림, 아름, 그위, 아름다움과 같은 터박이 바탕 낱말의 뜻을 제대로 알아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들이 숨 쉬며 누리고 살아가는 삶의 바탕이 그 속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제대로 알게 되면 누구에게나 복이 굴러오는 큰일이 벌어지게 된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큰일이 벌어지게 된다.
2. 정신을 차리고 터박이 바탕 낱말을 또렷하게 따져 묻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