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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Jan 05. 2024

충조평판 닥치고 '니가 옳다'라고 말하자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지난달부터 약 한 달의 시간 동안 <당신이 옳다> 일부(내 아내의 모든 것[1], 프롤로그 1장)를 다시 읽고 동료들과 논의하며 새로 차린 내용들을 글말로 남깁니다.


존재에 대한 관심은 상대의 상태에 대한 관심

세 번째 읽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 말을 듣는 상대의 입장은 좀 다르다. 죽을 만큼 큰 병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아픈 몸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주길 원한다. <중략> 그 기저에는 무엇보다 자신의 아픈 몸을 아무것도 아닌 듯이 가볍게 여기지 않길 바라는 속마음이 있다. 자신의 고통을 진지하게 대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내 감정과 경험에 바탕을 둔) 의미를 말하기 이전에 상대의 존재에 바탕을 둔 사실과 감정이라는 상태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인간 본연의 욕망을 이제야 분명하게 이해합니다. <뇌과학으로 배우는 대화라는 작용>에서 인용하고픈 그림을 보면 분명 저의 이해에 박문호 박사님 영상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감정은 존재의 핵심이자 나침반

사람의 상태를 인지할 때는 존재의 핵심인 감정을 드려다 봐야 합니다. 저는 다음 다발말[2]을 읽으면서 감정은 나침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책 내용과 섞어 그림으로 그려 보았습니다.

내 감정은 오로지 '나‘다. 그래서 감정이 소거된 존재는 나가 아니다. 희로애락이 차단된 삶이란 이미 나에게서 많이 멀어진 삶이다.

2019년에 이어 작년에 두 번째로 <당신이 옳다>를 꺼내 읽은 동기는 아내와의 대화를 개선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책 내용에 없지만 함께 실천해야 했던 일이 감정을 다스려서 바로 드러내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감정이 해소되지 않으면 조용히 둘만 있는 공간에서 담담한 말투로 내 감정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이 바로 나'라는 문구를 감정을 그대로 아무렇게나 드러내도 좋다는 말로 이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내 감정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잘 헤아려서 삶의 순간들에서 줏대와 잣대로 삼아야 합니다.


정서적 '내 편'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은 종종 자기 확신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네가 옳다'는 타인의 확인이 필요한 건 이렇게 자기 자신도 전적으로 자기편이 돼주기 힘들기 때문이다.

비교적 자존감이 강하다고 여기는 저도 가끔 누군가 곁에 있어 주는 수준의 지지가 고플 때가 있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분들이 정서적 지지가 더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행동 양식을 도식으로 그려 보았습니다.

'당신이 옳다'는 심리적 지지로 감정이 이끄는 대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임자가 될 수 있도록 나는 물론 타인을 돕기로 마음먹습니다.


자기 언어가 주는 혜택

책의 주제를 벗어나서 저자인 정혜신 선생님 고유의 표현을 보면서 '자기 언어의 필요성'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정혜신 선생님의 자기 언어라고 느낀 문구는 이런 표현들이죠.

나는 냉정한 의학 기능공인 셈이었다.

안정적인 일상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집밥 같은 치유의 다른 이름이 적정심리학이다.

나는 돌에 새기듯 깨달았다.

자기 언어를 차리다 보면 아마도 바탕을 이루는 꼴, 까닭, 흐름 등에 대한 이해가 더욱 또렷해질 듯하다는 기대를 했습니다.



주석

[1] 추천사에 해당하는 글입니다.

[2]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1. 우연하게 찾아온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2. 내년부터는 교과서 독서를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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