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최봉영 선생님의 페북 글《한국의 지식인과 얼치기 낱말》중에서 '3. 사람이 낱말의 뜻을 아는 일'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다발말[1] 중에서 04 05 ~ 05 06번[2]에 대해 묻고 따져 풀어 보는 글입니다.
선생님은 낱말의 뜻을 알아보는 까닭을 둘로 나눕니다.
사람들이 낱말의 뜻을 알아보는 일에 힘을 기울이는 것은 크게 두 가지 까닭이 있다.
남에게 이기려는 본성은 두 아들을 키우면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사람들의 행동 양식입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무엇을 아는 일에서 남을 이겨보고 싶은 마음에 이끌려서 낱말의 뜻을 아는 일에 힘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들은 남을 이길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남을 이기는데 필요한 낱말을 찾아서 뜻을 또렷하게 알아보려고 한다.
둘이 사이좋게 놀다가도 형은 항상 자신에게 유리한 규칙을 정하고, 둘째는 그게 억울해 항의하거나 하소연하는 모습을 매일 볼 수 있습니다. 비단, 저의 두 아들에게만 국한된 일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두 번째 까닭은 이기려는 마음이 아니라 알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무엇을 깊고 넓게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이끌려서 낱말의 뜻을 아는 일에 힘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들은 낱말을 뜻을 깊고 넓게 알아서 생각을 또렷하게 펼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파고 들어서 또렷하게 밝혀내는 일에 힘을 기울이고자 한다.
다발말을 읽자마자 아인슈타인의 명언이 떠오릅니다.
다시 최봉영 선생님의 구분으로 돌아가 두 가지 상황을 상호배타적으로 보고 이분법으로 엮어 보니 굉장히 이질적인 두 길이 보입니다.
그 결과로 며칠간 있었던 소소한 감정 소모와 내적 갈등을 반성합니다. 전자가 (꼭 이기려는 욕망뿐 아니라 넓게 보아) 잘잘못을 따지는 일이라면 후자는 진리로 향하는 방향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말을 담아 두었던 자신을 반성하자 감정이 해소되는 듯합니다.
다시 '형식적 권위주의'에 대한 다발말입니다.
06.
한국사람은 깊게 물든 형식적 권위주의로 말미암아 생각을 또렷하게 펼치는 일을 꺼려한다. 그들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튀어서 좋을 것 없다.”, “찍히면 죽는다.”와 같은 생각에서 무엇이든 그냥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니 그들은 낱말의 뜻을 또렷하게 아는 일에 힘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이 낱말의 뜻을 또렷하게 아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남에게 돋보이고 싶거나 남을 이기고 싶을 때, 필요한 낱말을 찾아서 뜻을 살피는 것에 머문다.
저는 국민의 힘이 보수주의 정당보다는 '권위주의 정당'에 가깝다고 믿습니다. 기득권을 지키는 일도 그렇지만, 대한민국 정체성을 미군정이나 군사 정권과 같이 실질적인 힘을 가진 세력에 기반한 것으로 보는 관점이 고스란히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친명 사대주의와 닮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그들이 숭상해 마지않는 故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든 국민 교육 헌장은 권위주의를 종교 수준으로 운영하려는 야심이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어떤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좋은 말 같지만, 배타성을 유도하고 귄위주의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근거로 사용할 의도가 보입니다. 마치 구약 성서의 '원죄' 개념처럼, 일부 인간이 전체 인류 혹은 다수 인간 집단을 함부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오만하고 비과학적인 시도이기도 합니다.
한편,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은 故노무현 대통령의 명언설을 떠올리게 합니다.
[1]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페이스북에는 각각 04, 05로 되어 있으나 번호가 앞선 단락말과 중복이라 05와 06으로 간주합니다.
2. 정신을 차리고 터박이 바탕 낱말을 또렷하게 따져 묻기
3. 말의 바탕치, 짜임새, 쓰임새, 펼침새 따위를 살피다
6. 말과 마디말에 대하여
10. 아이와 영어책을 읽다가 영어 문장의 차림을 짚어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