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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Jan 08. 2024

말과 마디말에 대하여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크리스마스를 앞둔 23일 제주에 때 아닌 폭설이 내려서 비행기를 못 탄 일이 되려 전화위복이 되어 묻따풀 강학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때 주제가《한국의 지식인과 얼치기 낱말》이었는데, 최봉영 선생님의 글을 토대로 묻고 따지고 풀어 봅니다. 몇 개의 글로 나뉠 듯한데, 먼저 이 글은 '1. 말과 마디말' 구절을 다룹니다.


말은 녀김의 산물

01.
사람은 무엇을 어떤 것으로 여기는 방식으로 말을 만들어서 갖가지로 생각을 펼친다.  

앞서 손때를 묻힌 그림을 부를 수 있습니다. '말은 녀김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구절을 시각화 한 그림입니다.


말의 펼침은 마디말에 바탕을 둔다

문장의 구성은 지난달 9월에 쓴 <한국말은 어떻게 나눠지는가?>에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02.
사람들이 말을 가지고 생각을 펼치는 것은 마디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람들은 <그+는>과 <딸기+를>과 <먹+었다>와 같은 낱낱의 마디말을 만들고 엮어서 갖가지로 생각을 펼쳐낸다. 그런데 한국말과 중국말과 영국말은 사람들이 낱낱의 마디말을 만들고 엮어서 생각을 펼치는 일에서 같은 점과 다른 점이 있다.

중국말이나 영국말과 다른 한국말 마디말의 특징인 '이원적 구성'을 원자에 비유한 일이 있습니다.

둘이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꽤 그럴싸합니다. 기틀이 되는 앛씨말은 핵(앛, 씨)을 이루는 양성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03.
사람들이 생각을 펼치는 일에서 바탕으로 삼는 마디말은 씨말로 이루어져 있다. 씨말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 데, 하나는 마디말에서 기틀을 나타내는 앛씨말이고, 다른 하나는 마디말에서 구실을 나타내는 겿씨말이다. 이를테면 <그+는> - <딸기+를> - <먹+었+다>에서 ‘그-’와 ‘딸기-’와 ‘먹-’은 기틀을 나타내는 앛씨말이고, ‘-는’과 ‘-를’과 ‘-었다’는 구실을 나타내는 겿씨말이다. 사람들은 앛씨말과 겿씨말로 이루어진 마디말을 가지고서 갖가지로 생각을 펼친다.

반대로 구실을 나타내는 겿씨말은 원자의 상태를 결정하는 전자를 떠올리게 합니다. 아무튼 둘이 붙어서 마디말을 이룬다는 점은 정말로 원자와 닮은 듯합니다.


앛씨말의 세 가지 갈래

앛씨말의 분류가 나옵니다.

05.
한국말에서 마디말의 기틀을 나타내는 앛씨말에는 세 가지, 곧 몸통것 앛씨말과 풀이것 앛씨말과 풀이지 앛씨말이 있다. 이를테면 ‘물’, ‘불’, ‘하늘’, ‘바다’, ‘운동’, 사랑‘, ’친절‘과 같은 것은 무엇이 가진 몸통을 가리키는 몸통것 앛씨말이고, ‘먹음’, ‘먹기’, ‘붉음’, ‘붉기’와 같은 것은 무엇에서 볼 수 있는 어떤 것을 나타내는 풀이것 앛씨말이고, ‘먹다’의 ‘먹’, ‘잡다’의 ‘잡’, ‘붉다’의 ‘붉’, ‘크다’의 ‘크’와 같은 것은 무엇을 어떠한 것으로써 풀어주는 풀이지 앛씨말이다.

최봉영 선생님이 작년 9월에 주신 그림이 당시 묻따풀 했던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 있어 꺼내어 만지고 고칠 수 있습니다. 몸통것 하면 습관적으로 '명사인가?' 하는 잣대로 훑어보게 됩니다. 그런데 슬쩍 보니 '풀이것 앛씨말'에도 명사가 보입니다. 그럼 아니겠죠?

지난 강학회에 들었던 설명을 떠올려서 다시 가정을 세워 봅니다. '현상을 녀김으로 만들 때 몸통이 되는 것'(대상)이 몸통것이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에 현상을 풀어갈 때 '것'에 해당하는 말이 풀이것이라 짜임새를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명사와 동사 혹은 주어와 서술어로 나누는 습관 때문에 마치 컴파일러의 오류 검출처럼 자꾸 머릿속에서 어색하다 소리를 칩니다.


하지만, 한국말은 현상을 일로 설명하는 개념 풀이를 바탕에 둔다는 최봉영 선생님 말씀을 떠올리면 어색함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사람들이 한국말로써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로 풀어내는 구실을 맡은 앛씨말이 '풀이지 앛씨말'입니다. 그리고 원자의 구성이 다양한 것과 같이 앛씨말의 갈래에 따라 그에 어울리는 겿씨말들이 함께 마디말을 이루며 문장을 이루어 뜻을 펼칩니다.

한국말에서 마디말의 구실을 나타내는 겿씨말은 앞에 자리한 앛씨말을 좇아서 세 가지,  곧 몸통것 겿씨말과 풀이것 겿씨말과 풀이지 겿씨말이 있다. 이를테면 ‘물이’, ‘불을’, ‘하늘에’, ‘바다로’와 같은 것에서 ‘이’, ‘을’, ‘에’, ‘로’는 몸통것 겿씨말이고, ‘먹음으로’, ‘먹기에’, ‘먹기는’과 같은 것에서 ‘-으로’, ‘-에’, ‘-는’은 풀이것 겿씨말이고, ‘먹다’의 ‘다’, ‘잡고’의 ‘고’, ‘붉으니’의 ‘으니’, ‘크서’의 ‘서’와 같은 것은 풀이지 겿씨말이다. 사람들은 겿씨말을 통해서 저마다 나름의 구실을 갖게 된 마디말을 가지고서 갖가지로 생각을 끝없이 펼쳐나간다.


지난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연재

1. 마주해야 보인다, 본 것에 마음이 가면 녀긴다

2. 정신을 차리고 터박이 바탕 낱말을 또렷하게 따져 묻기

3. 말의 바탕치, 짜임새, 쓰임새, 펼침새 따위를 살피다

4. 속말과 말차림: 대화에서 얻은 보물

5. 임자인 사람은 살리고 그 결과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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