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말을 걸어 글로 쓰는 이야기
최봉영 선생님의 예언(?)을 실감하는 날들입니다.
이렇게 <말이 말을 걸어 글로 쓰는 이야기> 시리즈를 쓰고 있지만, 비단 여기 넣지 않은 <속말과 말차림: 대화에서 얻은 보물>도 비슷한 경험을 다룬 글입니다. 글로 다루지 않은 일상의 경험을 포함하면 실로 못 말리는 상황입니다.
<인간에겐 한계가 없다는 걸 모르고 산다>까지 다섯 편의 글은 김성근 감독님의 책 스무 쪽을 읽고 차린 생각들을 말로 남긴 것입니다. 이후에도 책을 읽고 있고, 매번 말이 말을 걸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이 말을 걸어 글로 쓰는 이야기> 연재는 주로 생각 속에서 벌어지는 책과 나의 대화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시간 차를 두기는 했지만 제가 임자가 되어 다양한 사람들과 책과 대화하는 상황은 인식하여 이를 글로 남깁니다.
먼저 시작은 <인생은 순간이다>를 읽고 밑줄을 치며 대화하는 식으로 진행하는 저의 책 읽는 습관에서 비롯하였습니다.
다음 문장에 감탄하며 '아내'라고 메모했습니다.
핑계 속으로 도망치는 인생은 언젠가 앞길이 막히게 되어 있다.
하루 전에 아내가 한 말에 상처를 받고, 탓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저는 이를 아내의 잘못으로 돌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핑계 속으로 도망치지 말자고 마음먹은 탓입니다. 그리고 몇 페이지 지나서, 똑같은 문장을 다시 만났을 때 이번에는 10년 정도 나에게 지침이 되어 주었던 XP를 떠날 때란 생각이 들어 'XP 졸업'이라는 암호(?) 문구[1]를 썼습니다.
이렇게 익힌 내용을 바로 쓸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동료가 마침 아내와 대화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제 상황과 비슷하여 제 각오에 대해서 짤막하게 들려줬습니다. 이를 시각화하면 이렇습니다.
<인생은 순간이다>의 글말이 '핑계를 지우라'라고 말했고, 지난 아내의 입맛을 떠올리며 그에 대처하는 저의 자세를 정했습니다. 그리도 다시 같은 글말을 보며 앞으로는 XP를 대신해 <인생은 순간이다>가 그 지위를 차지하게 한다고 마음먹었습니다.[2]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동료와의 대화에서 이 경험이 퍼뜩 떠올라 그에게 저의 각오를 입말로 들려준 것이죠.
최봉영 선생님 말씀대로 말이 말을 하면 못 말립니다. 날이 지나고 습관적으로 인스타를 열었다가 추천 콘텐츠를 봅니다. 아래 글말이 저에게 말을 겁니다.
제 머릿속은 이렇게 '속말'을 합니다.
맞아! 어제 엄마에게 내가 한 말이잖아.
그리고 어머니와 저녁에 나눈 대화를 떠올립니다. 어머니가 당신의 오빠에 대해 전할 수 없는 조언을 반복하셨습니다. 듣기 싫은 마음도 들고 어머니와 함께 <당신이 옳다>를 읽었기에 '충조평판'하지 마시라고 조언하면서 머릿속으로는 '남 탓 = 핑계'라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이를 다시 그려 봅니다.
이렇게 그림으로 풀어서 따져 보니 <한국사람에게 사람이란?>에 담은 최봉영 선생님의 '차리다'와 '살리다'라는 말씀과 임자의 뜻이 조금 더 또렷해지는 느낌입니다.
[1] 악필이라 가끔 스스로도 못 알아보기에 암호 문구라 칭합니다.
[2] Kent Beck에 대한 고마움과 동시에 잠시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려던 찰나에 이미 그와는 <Tidy First> 번역을 통해 새로운 인연을 맺고 있음을 깨닫자 미안함도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