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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Feb 11. 2022

차려서 사는 임자의 사는 얘기

묻따풀 훈련 No. 14

어제는 생일을 맞은 지인과 사는 얘기를 하는 가운데 지난  소재로 다뤄진 생각의 단초를 사용하는 대화가 다시 이어진 하루였습니다. 구구절절 소개할 만한 내용은 아닌지라 마지막에 나눈 사는 얘기라는 메시지에서 느낀 영감을 묻따풀 훈련 삼아 기록해봅니다.


사는 얘기만 듣고 싶다

지인이 헤어질 무렵 '(어떤 면에서는) 모두 사는 얘기죠.'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그의 말에 동의하는 부분만 떼내어 빠르게 답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분법으로 모든 얘기를 사는 얘기와 죽는 얘기 구분했습니다. 궤변이  우려가 있었지만 둘의 대화 맥락에서는 충분히 소통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지인과의 대화 주제는 대략 주체적으로 사는 이야기 나눌  있는 사람들 만나는 비중을 늘리면 삶의  높아진다는 저의 주장에 대한 의견 교환이었습니다. 미디어에 나오는 이야기나 남의 이야기 등의 소문을 전하는 얘기들은 피곤하고, 나의 삶의 질을 낮추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업무상 피할  없는 경우나 가족이 하는 얘기가 아니라면 추가로 듣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삶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그에 반대되는 이야기는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죽는 얘기라고 다소 무리가 있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러면서 어차피 우리는 매시간 죽어가고 있다는 전제를 제시했죠. 그래서, 자신을 위한 생각과 행동을 실천하는데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소극적으로 살면서 죽어가는 얘기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질문과 사는 얘기의 연관성

쓰고 보니 저의 느낌과 달리 기록 자체는 질문과 지겨움을 다룬 지난  아무런 연관이 없는 듯합니다. 그래서 연결점을 드러내자면 아래 그림이 담고 있습니다.

영감의 순간을 담은 글이라 (당시 함께 하지 않았던) 독자님들을 위해 최봉영 선생님의  다시 인용합니다.

무엇에 대한 물음이 일어나는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해내기 위해서 무엇에 대해서 알아야 하기 때문에 무엇에 대한 물음이 생겨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무엇이 어떠한 것인지 궁금해서 무엇에 대한 물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어제 글의 대화 상대인 신재웅 님과 오늘 대화했던 지인 모두는 질문이라고 말할 때 중요한 가치를 띄는 질문이라는 전제로 말을 했습니다.


그런 질문은 바로  삶의 길을 밝히는 촛불 같은 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봉영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물음이 만들어지는 두 가지 동기 중에 전자에 해당합니다.


주체적으로 살기와 차리다

지인들이 질문이라는 말에 '가치 있는 질문'이라는 자신들의 가치관을 암묵적으로 투영한 것과 비슷하게 저는 '사는 얘기'라는 말을   '살다' '주체적으로 살다'라는 가치관을 투영했다고   있습니다. 주체적으로 사는 행위를 떠올리면 바로 생각나는 단어가 최봉영 선생님이 알려주신 차리다 라는 우리말입니다. 전화 통화로 알려주셨지만 충분히 기록을 해두지 않은 탓에 선생님의 글을 찾아 인용합니다.

사람들이 어떤 것에 대해서 풀어서 알게 되면, 그것을 꿰어서 차리는 일로 나아가게 된다. 사람들이 어떤 것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더라도, 그것을 꿰어서 차리는 일을 하지 않으면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제가 묻따풀 즉, 묻고 따지고 푸는 행위를 구체적 목표 없이 꾸준히 이어가는 이유는 어쩌면 차리는 방법을 배우기 위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시리즈 6편쯤을 쓸 때야 비로소 희미하게 그 의미를 알았습니다. 그 전에는 그냥 감에 의해서 일단 해보았습니다.


요즘은 하루 중에   이상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아침 기도를 하고,  먹을  성호경을 긋습니다. 더러는 수첩에 일기를 쓰기도 하는데 다시 보기 위함이 아니라 역시 정신을 차려 무언가 행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는 행위와 달리 내 삶의 새로운 기회를 삶으로 차려갈 때, 저는 지난 글에 표현한 ‘사고 모형’과 ‘아기발걸음’을 활용하여 어제와 달라진 삶의 환경과 상호작용합니다.


여기서 원래 화제로 돌아가보면, 주체적으로 살기라는 표현을 차려서 살기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임자로 살기

임자라는 표현 역시 최봉영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한국사람은 이것과 다른 것이 함께 할 때, 함께 함의 잣대가 되는 이쪽이 나름의 줏대를 갖고서 다른 쪽과 함께 하는 경우에, 나름의 줏대를 가진 이쪽을 ‘임자’라고 부른다. ‘임자’는 ‘님자=님+자’로서, 이쪽이나 저쪽으로서 함께 하는 어떤 것이 나름의 줏대를 갖고서 함께 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식견으로 임자와 앞서 설명한 차리다 섞어서 말해보면, 정신을 차려서 내가 행하는 일을 차려나갈  나는 임자 됩니다. 삶의 다양한 장면에서 다양한 남과 것들이 등장하는데, 임자로 산다는 것은 줏대 세워서 남과 것에 대한 잣대 갖고 차려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일이라고 말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체적으로 산다는 말은 임자로 산다는 말로 바꿔 말할  있습니다. 앞서 최선생님이 ‘꿰어서’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줏대와 잣대를 이용해서 ‘내 길’을 꿰어나가는 것이라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지난 묻따풀 훈련

13. 질문과 지겨움에 대하여

12. 그 위에 속하는 말을 알기

11. 그위란 무엇인가?

10. 나를 이해하는 함께 성과 따로성

9. 일을 차리는 틀을 만들어보자

8. 함께 하는 묻고 따져 차리기

7. 지금 어떤 나를 위해 행동하는가?

6. 묻따풀을 생활의 일부로 배양하기

5. '울음'과 '우리'에 대해서 따라가기

4. 욕망을 둘러싼 세계 - 욕망 탐구IV

3. 욕망과 거품에 대해서 - 욕망 탐구 III

2. 욕망에 대한 탐구 II

1. 욕망에 대해 탐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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