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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Jan 06. 2022

그위란 무엇인가?

묻따풀 훈련 No. 11

한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너무 오래 쉬어서 최봉영선생님의 12월 29일 페북 글에 기초해서 훈련한다.


‘그위’란 무엇인가?

예전에 최봉영선생님 글 중에서 '그위'라는 표현이 미심쩍었는데 그냥 흘려버린 일이 있다. 이번에 다시 훑어 보기로 한다.

사람들은 마음에 있는 뜻을 밖으로 드러내어 또렷하게 주고받기 위해서, 말을 만들어 쓰게 되었다.

밖으로 드러내는데 왜 '그 위' 인가? 

사람들이 만들어 써온 말은 모두가 두루 함께 하는 ‘그위(公)’의 것이다. 말은 낱낱의 내가 저마다 배우고 쓰는 것이지만, ‘그위(公)’에 자리하여 모두가 두루 함께 함으로써, 말로서 구실한다.   

그위는 두루 함께 한다는 뜻이란 말인가? 

낱말이 두루 함께 하여 말이 된다는 뜻인가?

'그위'와 公, 공평할 공은 같은 뜻인가?

의문을 갖고 계속 최선생님의 글을 읽어보자.


그위에 머물어야 말이 된다

아래 단락을 읽고 붙인 제목이다.

말이 나에게 ‘~라’고 말하게 하는 것을 내가 벗어나게 되면, 나는 모두가 두루 함께 하는 ‘그위(公)’를 벗어나서, 나만 따로 하게 된다. 이를테면 말이 나에게 “이것은 딸기라”라고 말하게 하는 것을 내가 “이것은 감자라”라고 말하고, 말이 나에게 “이것은 내가 한 것이라”라고 말하게 하는 것을 내가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그위(公)’를 벗어나서, 나만 따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는 나의 밖에 있는 다른 모든 이들이 함께 하는 것을 저버린다.  

말이 말로서 기능을 하려면 '그위'에 함께 해야 한다. 함께? 공평하게? 

일단, '그위'의 뜻이 불분명하지만 조금 느낌이 온다.


양치기 소년과 그위

이솝 우화 양치기 소년이 떠오르는 문단이다.

말이 나에게 ‘~라’고 말하게 하는 것을 벗어나서, 내가 나만 위하려고 말을 달리해서 말하는 것을 거짓말이라고 일컫는다. 말이 나에게 ‘~라’고 말하게 하는 본디의 말은 참말이고, 내가 참말과 다르게 겉으로 지어서 꾸며낸 말은 거짓말이다. 사람들이 참말을 두고서,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은 모두가 두루 함께 하는 ‘그위(公)’가 가진 힘을 훔쳐서, 저만 따로 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만큼 ‘그위(公)’의 것으로서 말이 가진 힘이 따라서 줄어들게 된다.    


양심과 그위

양심이라... 양심이 등장할 줄이야! 

사람들은 말이 나에게 ‘~라’고 말하게 하는 것을 양심(良心)이라고 일컫는다. 사람들이 양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말이 나에게 ‘~라’고 말하게 하는 본디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말이 나에게 “그것은 내가 한 일이다” 또는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와 같이 말하게 하는 본디의 말이 양심의 소리이다. 양심은 ‘그위(公)’의 것으로서 말에서 비롯하는 어진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언행일치


한국사람과 그위

오호... 그렇다고?

한국사람은 ‘그위(公)’의 것으로서 모두가 두루 함께 하는 말을 바탕으로 삼아서 ‘나’, ‘나라’, ‘구실’, ‘아름’, ‘어울림’, ‘아름다움’, ‘사람다움’ 따위를 말해왔다. 

알듯말듯한 말이다.

첫째로 낱낱으로서 저마다 따로 하는 나는 모두가 두루 함께 하는 말을 배우고 쓴다. 모두가 두루 함께 하는 말은 ‘그위(公)’의 것으로서, 저마다 따로 하는 낱낱의 나에게 ‘~라’고 말하게 하는 것이다. 

나라! 그렇구나. 국민국가 이전에 우리에게 나라의 개념이 있었을 수 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가정을 빼면 나 다음에 나라다.

둘째로 저마다 따로 하는 낱낱의 나에게 ‘너는 ~라’고 말하게 하는 줏대로서, 으뜸인 것이 ‘나라’이다. ‘나라’는 모두가 두루 함께 하는 ‘그위(公)’의 것으로서, 낱낱의 나에게 ‘너는 ~라’고 말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라’고 시키고 부리는 줏대이다. 이를테면 ‘나라’는 나에게 ‘너는 군인이 되어라’, ‘너는 세금을 바쳐라’, ‘너는 사람을 해치지 마라’, ‘너는 물건을 훔치지 마라’라고 시키고 부리는 줏대이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낱낱의 나를 이렇게 또는 저렇게 다스리는 ‘國’을 ‘나라=나+라’라고 말하고, 나라를 움직이는 官을 ‘그위=그+위’라고 말하고,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國事’를 ‘그윗일=그위+ㅅ+일’이라고 말하고, 나라가 낱낱의 나에게 하도록 하는 일을 ‘구실=그윗일(役/稅/貢)’이라고 말했다. 

아름이라.. 또 굉장힌 생소한 해석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의 해석은 아름답다. :)

셋째로 저마다 따로 하는 낱낱의 것이 ‘아름’이고, 낱낱의 ‘아름’이 ‘그위’에 자리한 것을 바탕으로 삼아서 안팎으로 함께 잘 어울려서 ‘그위’와 하나를 이루는 것이 ‘아름다움’이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나다움, 너다움, 사람다움, 꽃다움 따위를 말한다. 이런 까닭으로 한국사람은 사람이 사람인 것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고 말한다.   


말을 바탕으로 살아가기

'그위'는 <스틸니스>에서 말하는 나와 '더 큰 존재' 사이에 존재하는 공동체를 뜻한다는 직관이 생긴다.

사람들은 ‘그위(公)’에 자리한 말을 바탕으로 삼아서, 모두가 함께 더불어 어울려 살아가는 일을 한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말에 담아서 뜻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까닭으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곳곳마다 옹기종기 모여서 다닥다닥 붙어서 살아갈 수 있다. 


XP의 제1가치는 의사소통을 포함해 내가 여러차례 글쓰기 주제로 삼았던 의사소통 얘기다.

사람들이 모두가 함께 더불어 어울려 살아가는 일을 잘 하려면, 무엇보다도 서로 주고받는 말의 뜻이 쉽고 또렷해야 한다. 말의 뜻이 쉽고 또렷해야, 서로 뜻을 잘 사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배우고 쓰는 말의 뜻이 어렵거나 흐릿해서, 뜻을 서로 잘 사무칠 수 없다

표의문자를 쓰는 중국에서 살 때, 정작 한국에서는 못보던 우리의 특징이다. 아마 표음문자를 쓰고, 강대국 귀퉁이에서 통상국가로 살면서 생긴 습관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눈떠보니 선진국>이 된 현대에는 그런 습관을 극복(?)해야 한다.

첫째로 어떤 사람은 제가 뜻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말을 씀으로써, 뜻을 서로 잘 사무칠 수 없게 만든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지도리’, ‘돌쩌귀’, ‘타당성’, ‘급발진’, ‘코스프레’, ‘레거시’와 같은 말의 뜻을 또렷하게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게 되면, 뜻을 서로 잘 사무칠 수가 없다. 그런데 한국사람의 경우에 이와 같은 일이 여기저기서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상대의 말을 잣대로 쓰기

권위주의자의 말버릇이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말로써 다른 사람을 누르기 위해서, 일부러 뜻을 알아보기 어려운 말을 쓴다. 이들은 말로써 뜻을 서로 사무치는 일보다, 남을 누르고 이기는 일에 힘을 기울인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말의 힘이 모자랄 때, 아랫사람을 힘들게 만들고자 할 때 흔히 쓰는 방법이다. 

나는 주로 사람들의 말에 기초하여 그의 가치관을 파악한다. 앞서 말한 권위주의자 해석의 그 예다.

사람들은 누가 하는 말을 들어보게 되면, 그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인지 얼추 알아볼 수 있다. 

아래 문장이 내가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을 잘 설명하는 듯도 하다.

첫째로 어떤 사람이 ‘그위(公)’의 것으로서 말이 말하게 하는 바를 그대로 따르는 사람인지 아닌지 살피게 되면, 그가 가진 양심이 어떤 것인지 얼추 알아볼 수 있다. 

내가 가치관을 파악하기 위해 하는 질문들을 분석한 듯한 글이다. :)

둘째로 어떤 사람이 ‘그위(公)’의 것으로서 말이 가진 낱낱의 뜻을 어디까지 묻고 따지는지 살피게 되면, 그가 생각하는 것이 어느 정도로 어디까지 깊고 넓게 미칠 수 있는지 얼추 알아볼 수 있다. 

앞서 가치관이라는 말을 썼지만, 묻따풀에서 배운 표현대로 하면 상대를 임자로서 바라보는 잣대라고 할 수도 있겠다.

셋째로 어떤 사람이 ‘그위(公)’의 것으로서 말이 가진 사무치는 힘을 어느 정도로 느끼는지 살피게 되면, 그가 남과 함께 하는 일이 어느 정도로 어디까지 깊고 넓게 미칠 수 있는지 얼추 알아볼 수 있다.

아직, 그위에 대한 명확한 느낌은 없지만, 일단 시작하고 기록하는 데에 의미를 둔 기록이다.


지난 묻따풀 훈련

10. 나를 이해하는 함께성과 따로성

9. 일을 차리는 틀을 만들어보자

8. 함께 하는 묻고 따져 차리기

7. 지금 어떤 나를 위해 행동하는가?

6. 묻따풀을 생활의 일부로 배양하기

5. '울음'과 '우리'에 대해서 따라가기

4. 욕망을 둘러싼 세계 - 욕망 탐구IV

3. 욕망과 거품에 대해서 - 욕망 탐구 III

2. 욕망에 대한 탐구 II

1. 욕망에 대해 탐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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