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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Jan 16. 2024

말의 바탕치와 짜임새를 살펴보는 일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최봉영 선생님의 페북 글《한국의 지식인과 얼치기 낱말》중에서 '3. 사람이 낱말의 뜻을 아는 일'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다발말[1] 중에서 04번에 대해 묻고 따져 풀어 보는 글입니다.


손때의 힘이 키워주는 말 차리는 힘

다음 다발말을 읽을 때 '바탕치, 짜임새, 쓰임새, 펼침새'는 어딘가 귀에 익습니다.

04.
사람들이 낱말의 뜻을 알아보는 일에 힘을 기울여서 묻고 따지는 일을 할 때, 어떤 낱말이 가진 바탕치, 짜임새, 쓰임새, 펼침새를 살펴보는 것은 다음과 같다.

방금 ‘귀에 익습니다’를 쓰기 전에 먼저 '낯이 익다'라고 썼습니다. 쓰는 과정에서 '낯이 맞나?'하고 스스로 묻다가 '눈에' 그리고 '귀에' 등을 대입해 보았습니다. '귀에'가 적절하단 생각이 스쳤는데, 저도 '속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일까요? 아니면 최근에 쓴 <속말과 말차림: 대화에서 얻은 보물> 탓일까요? 어찌 되었든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손때[2]의 힘을 느낍니다.


한편, 표현을 어찌 하든 익숙하다 느낀 이유는 <말의 바탕치, 짜임새, 쓰임새, 펼침새 따위를 살피다>라는 흔적으로 인과관계가 드러납니다. :)

말의 바탕치 그리고 나의 바탕치

손때의 효과를 실감하고 나니 또다시 손때를 묻히게 됩니다. 첫 번째 길잡이는 다음 다발말입니다.

낱말의 바탕치는 사람들이 어떤 낱말을 만들어 쓰게 된 바탕을 말한다. 사람들이 바탕치에서 알 수 있는 뜻이 바탕뜻이다. 이를테면 한국말에서 “토끼는 토끼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문장에서 ‘토끼’와 ‘토끼는 것’은 바탕을 같이 하는 말이다. 이를 통해서 사람들은 ‘토끼는 일’의 바탕이 ‘토끼’라는 사물에 있음을 또렷이 알 수 있다. 영국말은 “파리는 파리인 것이다.”를 “Flies fly.”라고 말한다. “Flies fly.”라고 말하는 문장에서 ‘파리’를 뜻하는 ‘Flies’와 ‘날아가는 것’을 뜻하는 ‘fly’는 바탕을 같이 하는 말이다. 이를 통해서 사람들은 ‘fly’의 바탕이 ‘Flies’라는 사물에 있음을 또렷이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낱말의 바탕치를 살펴봄으로써 낱말의 바탕뜻을 알아볼 수 있다.

선생님의 말씀을 묻고 따지며 푸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저의 바탕치가 섞입니다.[3] 바탕치를 풀려고 하니 <작동하는 지식과 기억 용량을 주여주는 대칭화>에서 다루었던 박문호 박사님표 '대칭' 개념이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나의 바탕치가 소환하는 줏대와 잣대

여기서 제가 쓴 '저의 바탕치'란 말과 최봉영 선생님이 쓰신 '말의 바탕치'의 차이를 인식합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둘 사이 차이를 깨우치려고 시도하게 됩니다. '저의 바탕치'라고 쓸 때는 정확하게 뜻을 차려 쓰지는 않았지만, 대략 '빙산 의사소통'에서 말하는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은 부분과 유사한 개념을 바탕에 두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머리를 더 굴려 보니, 이번에는 줏대와 잣대도 떠오릅니다. 그리고 잣대가 말뜻을 이루는 바탕이라는 의미의 그림을 이미 그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그래서 둘을 함께 배치하는 그림을 그립니다.


짜임새는 인수분해처럼 보기

다음은 짜임새에 대해 손때를 묻힐 시간입니다.

낱말의 짜임새는 어떤 낱말이 갖고 있는 말소리의 짜임새를 말한다. 이를테면 ‘살다와 살리다’, ‘죽다와 죽이다’, ‘졸다와 졸리다’는 말소리와 말뜻을 서로 달리하는 말이지만 ‘살+다와 죽+다와 졸+다’는 같은 짜임새를 갖고 있는 말이고, ‘살+리+다와 죽+이+다와 졸+리+다’는 같은 짜임새를 갖고 있는 말이다. ‘살+다와 죽+다와 졸+다’는 무엇이 어떻게 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고, ‘살+리+다와 죽+이+다와 졸+리+다’는 무엇이 어떻게 되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사람들은 낱말의 짜임새를 살펴봄으로써 낱말의 짜임뜻을 알아볼 수 있다.  

짜임새에 대해 묻고 따지는 일은 비교적 간단했습니다. 비유적으로 사용하는 인수분해[4]에 함께 이해의 바탕으로 작용합니다. 다발말을 읽으며 새롭게 배운 내용은 당연하게도 '말소리'를 단위로 말이 짜임새를 갖춘다는 인식입니다.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학습법과 창의성 모두 기억이 핵심이다>에서 인용한 박문호 박사님의 말, '내 감정의 손때를 묻히라는 겁니다'에서 유래합니다.

[3] 이걸 바탕치라 표현하는 것이 낱말의 뜻에 부합하는지 확실치 않지만 저질러 봅니다.

[4] 인수분해를 키워드로 브런치의 제 글을 검색하면 다수의 결과가 나옵니다. 2008년 이후 임춘봉 님과 교류하면서 배운 내용의 실천이죠. 인수분해는 비단 수학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노하우의 핵심입니다.


지난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연재

1. 마주해야 보인다, 본 것에 마음이 가면 녀긴다

2. 정신을 차리고 터박이 바탕 낱말을 또렷하게 따져 묻기

3. 말의 바탕치, 짜임새, 쓰임새, 펼침새 따위를 살피다

4. 속말과 말차림: 대화에서 얻은 보물

5. 임자인 사람은 살리고 그 결과는 크다

6. 말과 마디말에 대하여

7. 개념의 구성 요소: 원칙, 생각, 믿음

8. 생각을 또렷하게 펼치려고 힘을 쏟기

9. 아직 잔재가 남았지만 곧 사라질 형식적 권위주의

10. 아이와 영어책을 읽다가 영어 문장의 차림을 짚어 봄

11. 낱말의 뜻을 또렷하게 알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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