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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Feb 21. 2024

선과 악은 해로운 경우가 많은 개념이다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지난 글에 이어서 최봉영 선생님의 《나도 알 수 없는 내 마음》을 묻고 따져 풀어보는 글입니다.


왜 기억을 해야 되는가?

다음 다발말[1]의 첫 번째 포기말[2]은 경험의 필요성을 떠오르게 합니다.

05.
사람은 무엇을 머리로 아는 것에서 마음으로 믿는 것으로 나아가면 무엇을 몸으로 꾀할 수 있는 것이 그만큼 늘어난다. 그런데 사람이 무엇을 몸으로 꾀하더라고 그대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떤 것을 믿는 것과 어떤 것을 이루는 것이 언제나 함께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아마 경험이 기억을 만들고, 기억이 감정을 풍부하게 하기 때문이라 생각하는데, 더 정확한 내용은 <왜 기억을 해야 되는가?>에 있습니다.

한편, 다음 포기말은 '항상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란 말과도 흡사합니다.

어떤 것을 믿는 것과 어떤 것을 이루는 것이 언제나 함께 하는 것은 아니다.


빙산과 같은 밑바탕 마음(곧, 무의식)

계속 살펴봅니다.

06.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갖가지로 믿음을 쌓게 되면, 그것이 밑천이 되어 밑바탕 마음이 생겨난다. 밑바탕 마음은 내가 알 수 있는 마음의 밑에 자리하고 있어서 들여다볼 수 없게 되어 있다. 밑바탕 마음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는 마음이고, 내가 말리려고 해도 말릴 수 없는 마음이고, 내가 어찌하려고 해도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이다. 밑바탕 마음은 내가 그저 멍하니 있더라도 그냥 절로 가고, 그냥 절로 끌리고, 그냥 절로 쓰이는 마음이다.  

지난 글에도 인용했던 빙산 모델이 '밑바탕 마음'이란 말로 나타나는 듯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무의식'이라고 부릅니다.


욕망은 밑바탕 마음을 기틀로 한다

우리가 자신의 욕망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유도 분명해집니다.

07.
밑바탕 마음은 느끼거나 녀기는 일이 비롯하는 바탕으로서, 그냥 절로 생겨나서 언제나 늘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러한 밑바탕 마음에서 욕구와 욕망을 아우르는 갖가지 욕심들이 생겨나서 ‘하고 싶음’과 ‘되고 싶음’과 ‘답고 싶음’과 같은 모습으로 꿈틀댄다. 사람은 이러한 마음을 기틀로 삼아서 삶에서 볼 수 있는 온갖 것을 알고, 바라고, 꾀하고, 이루고자 한다.

밑바탕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믿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합니다.

08.
밑바탕 마음은 믿음으로 이루어져 있는 까닭으로 믿음이 굳세면 그만큼 굳세게 되고, 믿음이 여리면 그만큼 여리게 된다. 밑바탕 마음은 믿음이 굳셀 때, 흔들림이 없이 한결같을 수 있다. 믿음이 여리게 되면 밑바탕 마음은 조그만 일에도 흔들려서 불안하고, 두려운 상태에 놓인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믿음을 굳세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에 갖가지로 힘을 쏟는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럴듯한 주장이라 생각합니다.


선과 악은 해로운 경우가 많은 개념이다

굉장히 공감이 가는 다발말입니다.

09.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서 일을 좋게 또는 나쁘게 만들 수 있다. 사람이 무엇을 좋은 쪽으로 믿게 되면 좋지 않은 일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게 되고, 무엇을 좋지 않은 쪽으로 믿게 되면 좋은 일도 좋지 않은 쪽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이 무엇을 좋은 쪽으로 믿어서 도리어 나쁜 결과가 나타날 수 있고, 나쁜 쪽으로 믿어서 도리어 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이 무엇을 믿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무엇을 좋은 쪽으로 믿거나 나쁜 쪽으로 믿는 것이 버릇이 되어서 고치기 어렵다. 사람들은 이들을 지나치게 긍정적인 사람이나 지나치게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믿음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 때문에 무슨 일이던 그르치기 쉽다.

이에 대해 푸는 것으로 이번 글을 마쳐야겠네요. 포기말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서 일을 좋게 또는 나쁘게 만들 수 있다.

일이 좋다 혹은 나쁘다는 어떻게 판단할까요? 한때 도올 선생의 <노자가 옳았다>를 읽고 유튜브 강의도 본 일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따져 묻듯이 공부하지는 않았고, 여행하듯 훑어보는 식이었습니다. 당시 강의에서 들은 내용 중에 우리말 한자에는 원래는 '나쁠 악'이라는 풀이는 없고, '미워할 오'만 있었다고 했습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풀이였습니다. 저는 경험에 따라 대체로 선악 구분이 사고력을 해치고, 집단에 분열을 일으키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일을 좋게'라고 할 때 '쪽인 나' 입장에서 보고 싶습니다. 일됨에 좋거나 일에 참여하는 모든 쪽에게 좋은 것이 '좋게'라고 생각합니다.


사고를 흐리게 하는 믿음의 작용

반면에 다음 포기말은 임자의 인식 즉, 선호에 해당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좋은 쪽으로 믿게 되면 좋지 않은 일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게 되고, 무엇을 좋지 않은 쪽으로 믿게 되면 좋은 일도 좋지 않은 쪽으로 생각하게 된다.

사특한 믿음을 예로 들 때, 사실인가 싶을 정도의 현실의 예가 있습니다. <가치와 믿음 그리고 가치 정렬 프로세스>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 인물과 그에 얽힌 현상들입니다.

안 그래도 박문호 박사님의 강력 추천에 따라 사서 읽기 시작한 매력적인 제목의 책이 떠오릅니다.

이 책의 제목에 시사하는 바는 다음 포기말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무엇을 좋은 쪽으로 믿거나 나쁜 쪽으로 믿는 것이 버릇이 되어서 고치기 어렵다.


어떻게 과학적 태도를 배양하고, 사실충실성을 갖출 것인가?

하지만, 뜻 대로 된다고 해서 꼭 좋은 것도, 뜻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꼭 나쁜 것도 아니란 사실을 우린 경험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무엇을 좋은 쪽으로 믿어서 도리어 나쁜 결과가 나타날 수 있고, 나쁜 쪽으로 믿어서 도리어 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저에게는 다음 포기말과 같은 태도가 '과학적 태도'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이 무엇을 믿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과학적 태도를 배양하기 위해서 세 가지 노력을 합니다. 첫 번째는 가급적 감정과 판단을 구분하려고 훈련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사실에 입각하여 판단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틈이 나면 과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주석

[1]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연재

1. 마주해야 보인다, 본 것에 마음이 가면 녀긴다

2. 정신을 차리고 터박이 바탕 낱말을 또렷하게 따져 묻기

3. 말의 바탕치, 짜임새, 쓰임새, 펼침새 따위를 살피다

4. 속말과 말차림: 대화에서 얻은 보물

5. 임자인 사람은 살리고 그 결과는 크다

6. 말과 마디말에 대하여

7. 개념의 구성 요소: 원칙, 생각, 믿음

8. 생각을 또렷하게 펼치려고 힘을 쏟기

9. 아직 잔재가 남았지만 곧 사라질 형식적 권위주의

10. 아이와 영어책을 읽다가 영어 문장의 차림을 짚어 봄

11. 낱말의 뜻을 또렷하게 알아야 할까?

12. 말의 바탕치와 짜임새를 살펴보는 일

13. 말의 쓰임새와 펼침새를 살펴보는 일

14. 논쟁 승리와 진리 추구 그리고 권위주의 청산

15. 사람들이 배우고 쓰는 낱말의 유기체스러움

16. 낱말은 덩어리가 아니라 인수분해 하면 또렷해진다

17. 한국말 낱말 다시 분류하기: refactoring

18. 자기 잣대에 따라 말을 골라 쓰는 바탕

19. 한국인에게 지식인(知識人)은 누구인가?

20.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

21. 사람들이 한국말로써 무엇을 어떤 것으로 알아보는 일

22. 마음에 들어있는 온갖 것들의 바탕을 알아가는 일

23. 나의 마음에 들어있는 것

24. 알아보기는 머리가 마음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일

25. 객체의 속성 대응 그리고 내가 나의 바탕을 알아보는 일

26. 알음알이:늧으로 느끼거나 말로 녀겨서 갖가지로 아는 일

27. 머리로 알고 마음으로 믿고 용기를 내어 몸으로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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