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지난 글에 이어 최봉영 선생님이 쓰신 《“너 자신을 알라”》에 대해 묻고 따져 풀어 보는 세 번째 글입니다.
선생님의 다발말[1] 구분 '5. 나의 마음에 들어있는 것'으로 이어갑니다.
01.
사람들이 무엇을 어떤 것으로 알아보는 일은 “무엇은 어떤 것이다”라는 말차림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컨대 사람들이 ‘이것’이나 ‘그것’을 ‘붉은 것’으로 여겨서 “이것은 붉은 것이다” 또는 “그것은 붉은 것이다”와 같이 알아보는 것이다.
위 다발말을 풀 때는 지난 글에서 살펴보았던 다음 포기말[2]이 바탕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그것을 바탕으로 마음이 생기고, 일어나는 것을 좇아서 “무엇을 어떤 것으로 알아보는 일”을 하게 된다.
지난 글을 쓰며 위 포기말을 읽을 때 제 머리는 이렇게 속말을 하고 있었거든요.
마음에 일어나는 일을 푸는 것이 말이구나
그래서 선생님의 글을 비교적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붉다'는 8개의 몸통것 앛씨말에 없음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쓴 글 중에서 찾아보니 '앛씨말의 세 가지 갈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05.
한국말에서 마디말의 기틀을 나타내는 앛씨말에는 세 가지, 곧 몸통것 앛씨말과 풀이것 앛씨말과 풀이지 앛씨말이 있다. 이를테면 ‘물’, ‘불’, ‘하늘’, ‘바다’, ‘운동’, 사랑‘, ’친절‘과 같은 것은 무엇이 가진 몸통을 가리키는 몸통것 앛씨말이고, ‘먹음’, ‘먹기’, ‘붉음’, ‘붉기’와 같은 것은 무엇에서 볼 수 있는 어떤 것을 나타내는 풀이것 앛씨말이고, ‘먹다’의 ‘먹’, ‘잡다’의 ‘잡’, ‘붉다’의 ‘붉’, ‘크다’의 ‘크’와 같은 것은 무엇을 어떠한 것으로써 풀어주는 풀이지 앛씨말이다.
'붉다'는 '무엇을 어떠한 것으로 풀어주는 풀이것 앛씨말'이네요.[3]
다시 선생님의 '5. 나의 마음에 들어있는 것'으로 돌아갑니다.
02.
사람들이 무엇을 어떤 것으로 알아보는 일은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사람들이 마음의 밖에 있는 ‘이것’을 마음의 안에 있는 ‘그것’으로 여겨서, “이것은 사슴이다”와 같이 알아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마음의 안에 있는 ‘그것’을 마음의 안에 있는 또 다른 ‘그것’으로 여겨서, “도깨비는 뿔이 하나이다”와 같이 알아보는 것이다.
다시 손때[4]를 묻혔던 그림이 유용할 듯하여 불러옵니다.
이번에는 이보다는 선생님의 그림이 더 유용할 듯합니다. 다음 그림은 두 가지 갈래에서 사람들이 마음 밖에 있는 '이것'을 마음의 안에 있는 '그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잘 묘사된 듯합니다.
이것을 좀 더 또렷이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계속 이어갑니다.
03.
사람들이 마음의 밖에 있는 ‘이것’을 마음의 안에 있는 ‘그것’으로 여겨서 ‘이것은 사슴이다’라고 알아보는 것은 마음의 밖에서 어떤 사물로서 자리하고 있는 ‘이것’과 마음의 안에서 어떤 말로서 자리하고 있는 ‘사슴’을 하나의 줄로 이어서, 내가 “이것을 사슴인 줄로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것을 사슴인 줄로 알아보는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이것은 사슴이다“라고 말하게 된다.
선생님의 그림과 맥락은 겹치지만, 손때를 묻혀가며 제 인식을 그림으로 나타내 봅니다. 사슴 아이콘이 없어서[5] 사슴을 토끼로 대신합니다.
사람들이 마음의 밖에 있는 ‘이것’을 마음의 안에 있는 ‘그것’으로 여겨서, ”이것은 그것이다“라고 알아본 것을 ‘이-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긴 시간 자바 개발과 객체지향 설계를 해 온 저에게는 자연스럽게 '이것'을 인스턴스(instance)로, '그것'을 클래스(class)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알아보는 일에도 세 가지 갈래가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마음의 밖에 있는 ’이것‘을 마음의 안에 있는 ’그것‘으로 여겨서, ”이것은 그것이다“라고 알아보는 ’이-그-것‘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몸소 겪어서 아는 그것을 이것과 연결하는 일입니다.
첫째로, 내가 마음의 밖에 있는 ’이것‘을 마음의 안에 있는 ’그것‘으로 여겨서, ”이것은 사슴이다“와 같이 알아보고서, 마음에 그러한 것으로서 알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내가 몸소 겪어서 알고 있는 ’이-그-것‘을 ’나-이-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음은 들어서 아는 것을 연결하는 과정인데, 이를 정교하게 표현하기 위해 ’이-그-것‘, ’너-이-그-것‘ 따위의 생소한 표현들이 쓰입니다.
둘째로, 네가 마음의 밖에 있는 ’이것‘을 마음의 안에 있는 ’그것‘으로 여겨서, ”이것은 사슴이다”와 같이 알아본 것을, 내가 너에게 듣고서, 마음이 그러한 것으로서 알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내가 너에게 듣고서 알고 있는 ’이-그-것‘을 ’너-이-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을 읽을 때는 세 가지 갈래의 구분이 어렵다고 느낍니다.
셋째로, 그가 마음의 밖에 있는 ’이것‘을 마음의 안에 있는 ’그것‘으로 여겨서, “이것은 사슴이다”와 같이 알아본 것을, 내가 그에게 듣고서, 마음이 그러한 것으로서 알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내가 몸소 겪어서 알고 있는 ’이-그-것‘을 ’나-이-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내가 그에게 듣고서 알고 있는 ’이-그-것‘을 ’그-이-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저의 관심은 갈래에서 벗어나서 ’나-이-그-것‘과 ’너-이-그-것‘으로 넘어갑니다.
직업 생활 초기에는 UML 모델링으로 전문적인 시각화 일을 했고, 지금은 경영을 하면서 OKR 등으로 목표와 과업을 정렬하면서 배운 일들이 바탕으로 작용한 탓입니다.
사람들이 대화할 때 암묵적으로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그-이-그-것‘을 모두가 머릿속에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이-그-것‘과 ’너-이-그-것‘으로 여러 개의 버전으로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마침 이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인도 엔지니어 관리자가 고맙게도 설 명절을 기억하고, 설 인사를 남겼습니다.
그는 회의를 할 때면 여지없이 앞에 나서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Look at the same page.
04번 다발말이 길어 여기서 또 끊어야겠습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1]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앛씨말의 세 가지 갈래'의 출처인 <사람들이 한국말로써 무엇을 어떤 것으로 알아보는 일>을 보면 빛을 포함하는 몸통것 앛씨말이 있습니다. 풀이가 필요한 몸통의 분류가 아닌가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10개 갈래인데, 앞서 인용한 몸통것 앛씨말의 갈래는 8개입니다.
[4] <학습법과 창의성 모두 기억이 핵심이다>에서 인용한 박문호 박사님의 말, '내 감정의 손때를 묻히라는 겁니다'에서 유래합니다.
[5] 요즘 브런치 글을 쓸 때 https://fluenticons.co/ 아이콘을 쓰고 있습니다.
2. 정신을 차리고 터박이 바탕 낱말을 또렷하게 따져 묻기
3. 말의 바탕치, 짜임새, 쓰임새, 펼침새 따위를 살피다
6. 말과 마디말에 대하여
10. 아이와 영어책을 읽다가 영어 문장의 차림을 짚어 봄
16. 낱말은 덩어리가 아니라 인수분해 하면 또렷해진다
17. 한국말 낱말 다시 분류하기: refactoring
20.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
21. 사람들이 한국말로써 무엇을 어떤 것으로 알아보는 일
22. 마음에 들어있는 온갖 것들의 바탕을 알아가는 일
23. 나의 마음에 들어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