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영회 습작 Jan 25. 2024

낱말은 덩어리가 아니라 인수분해 하면 또렷해진다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최봉영 선생님의 페북 글《한국의 지식인과 얼치기 낱말》중에서 '4. 사람들이 배우고 쓰는 낱말'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다발말[1]중 <사람들이 배우고 쓰는 낱말의 유기체스러움>에서 묻고 따지지 못한 내용을 풀어 보는 글입니다.


짜임새 낱말과 인수에 해당하는 앛씨말

대번에 '인수분해'를 떠오르게 하는 문장입니다.

둘째, 한국말에는 짜임새 낱말과 덩어리 낱말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낱말의 갈래가 있다.

그래서 제 글 중에 찾아보니 <모호함이 사라질 때까지 매개체를 풀어가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아마도 짜임새 낱말은 짜임새가 있어서 모호함이 없거나 분명한 낱말일 듯하고, 덩어리 낱말은 모호함을 담은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맞네요. :)

짜임새 낱말은 어떤 낱말이 둘 이상의 앛씨말(語根/語幹)이 모여서 하나의 짜임새를 이루고 있는 낱말을 말한다. 사람들은 짜임새 낱말이 갖고 있는 짜임새를 풀어야 뜻을 잘 알아볼 수 있다.

이미 지난해에 <한국말은 어떻게 나눠지는가?>에서 입자를 떠올린 일이 있는데, 어간이나 어근을 칭하는 앛씨말은 인수분해 결과로 나타나는 인수(factors)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원문으로 돌아가면 짜임새 낱말의 예시가 이어집니다.

짜임새 낱말에는 세 가지가 있다. 먼저 안에서 생겨난 짜임새 낱말로서 ‘모+내기’, ‘새+참’, ‘몸+가짐’, ‘나+들이’, ‘오+가다’, ‘되+묻다’, ‘세+차다’와 같은 것이다. 다음으로 밖에서 들여온 짜임새 낱말로서 ‘移+秧(-모내기)’, ‘間+食(-새참)’, ‘姿+勢(-몸가짐)’, ‘外+出(-나들이)’, ‘往+來하다(-오가다)’, ‘反+問하다(-되묻다)’, ‘激+烈하다(-세차다)’와 같은 것이다. 이런 것은 안에서 생겨난 짜임새 낱말로 바꾸어 쓸 수 있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移+秧’을 ‘모+내기’로, ‘間+食’을 ‘새+참’으로, ‘姿+勢’는 ‘몸+가짐’으로 바꾸어 쓸 수 있다. 이렇게 바꾸어 쓰게 되면, 사람들은 짜임새 낱말의 뜻을 한층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끝으로 밖에서 들여온 짜임새 낱말로서 ‘事+物’, ‘感+動’, ‘發+芽’, ‘創+意’, ‘地+震’, ‘海+溢’과 같은 것이다. 이런 것은 안에서 생겨난 짜임새 낱말로 바꾸어 쓰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런 것은 사람들이 낱낱의 漢字를 새김말 낱말을 가지고 뜻을 새겨야 한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事’를 ‘일 事’, ‘物’을 ‘것 物’, ‘感’을 ‘느낄 感’, ‘動’을 ‘움직일 動’, ‘發’을 ‘필 發’, ‘芽’를 ‘싹 芽’ 따위로 뜻을 새길 수 있어야 ‘事+物’, ‘感+動’, ‘發+芽’와 같은 낱말의 뜻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다.  


한국말의 뜻의 그릇 역할 그리고 터박이 말

다발말이 말을 겁니다. 마침 <다양한 뜻의 그릇 역할을 하는 한국말의 유연성>을 쓴 이유에서 비롯한 내용입니다. 해당 글을 쓰며 '뜻의 그릇'으로써의 한국말의 훌륭함을 배웠는데요. 그릇에 담긴 후에 말이 계속 쓰이면 '터박이 말'이 됩니다. 반대로 아직 터박이 말로 자리잡지 못한 '구비(口祕)', '구비(具備)' 따위는 '뜨내기 낱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새김말'이란 낱말이 있습니다. 갑골 문자에서 발달한 즉, 새겨진 형상만을 뜻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뜻을 새긴 이후의 말을 뜻할까요? 이건 선생님께 물어야 할 듯합니다.


덩어리 낱말과 인수분해의 필요성

짜임새 낱말과 달리 덩어리 낱말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을 말하는 듯합니다.

덩어리 낱말은 사람들이 짜임새를 갖고 있는 어떤 낱말을 그냥 하나의 덩어리처럼 알아보는 낱말을 말한다. 사람들이 짜임새 낱말을 덩어리 낱말로 알아보게 되면 뜻을 제대로 풀어낼 수 없다.  

덩어리 낱말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덩어리 낱말은 세 가지가 있다. 먼저 사람들이 안에서 생겨난 짜임새 낱말을 하나의 덩어리 낱말로 알아보는 것으로서 ‘모내기’, ‘새참’, ‘몸가짐’, ‘나들이’, ‘오가다’, ‘되묻다’, ‘세차다’와 같은 것이다. 이런 것은 사람들이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말의 짜임새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다음으로 사람들이 밖에서 들여온 짜임새 낱말을 하나의 덩어리 낱말로 알아보는 것으로서 ‘이앙(-모내기)’, ‘간식(-새참)’, ‘자세(-몸가짐)’, ‘외출(-나들이)’, ‘왕래하다(-오가다)’, ‘반문하다(-되묻다)’, ‘격렬하다(-세차다)’와 같은 것이다. 이런 것은 안에서 생겨난 짜임새 낱말로 바꾸게 되면 뜻을 알아보는 일이 크게 쉬워진다. 끝으로 사람들이 밖에서 들여온 짜임새 낱말을 하나의 덩어리 낱말로 알아보는 것으로서 ‘사물’, ‘감성’, ‘발아’, ‘창의’, ‘지진’, ‘해일’과 같은 것이다. 이런 낱말은 사람들이 한자(漢字)의 뜻을 새겨서 풀어낼 수 있어야 뜻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다.

위 문장은 두 가지를 말해 줍니다. 우선 첫 번째는 앞서 인용한 <모호함이 사라질 때까지 매개체를 풀어가기>라는 제목에서 '매개체'를 '덩어리 낱말'로 바꿔도 그대로 유용하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한국말이라는 그룻에 담긴 뜻을 풀어내려면 많은 경우 한자(漢字)의 뜻을 새겨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한 근거는 최봉영 선생님이 자세히 풀고 있습니다.

한국말에는 한자 낱말이 매우 많다. 교과서에 나오는 학술 용어는 거의 모두가 한자로 된 짜임새 낱말로 되어 있다. 한자를 배우지 않은 사람은 이들을 모두 덩어리 낱말로 받아들이게 되어, 낱말의 뜻을 흐릿하게 알아본다. 그런데 한자를 아는 사람도 한자의 뜻을 바르게 새길 수 있어야 낱말의 뜻을 또렷하게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한자 낱말의 뜻을 그냥 얼치기로 새겨서 풀어낸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學’을 ‘배울 學’으로, ‘習’을 ‘익힐 習’으로 뜻을 새기지만, ‘배+우+다’와 ‘익+히+다’가 무엇을 뜻하는지 또렷하게 알지 못하는 까닭으로 ‘學習’의 뜻을 ‘익혀서 배우는 일’로 풀어내지 못하고, ‘배우고 익히는 일’로 풀어낸다. 그들이 ‘學習’의 뜻을 ‘배우고 익히는 일’로 풀어내는 것은 마치 고기를 ‘씹어서 삼킨다.’라고 말해야 할 것을 ‘삼켜서 씹는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주석

[1]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연재

1. 마주해야 보인다, 본 것에 마음이 가면 녀긴다

2. 정신을 차리고 터박이 바탕 낱말을 또렷하게 따져 묻기

3. 말의 바탕치, 짜임새, 쓰임새, 펼침새 따위를 살피다

4. 속말과 말차림: 대화에서 얻은 보물

5. 임자인 사람은 살리고 그 결과는 크다

6. 말과 마디말에 대하여

7. 개념의 구성 요소: 원칙, 생각, 믿음

8. 생각을 또렷하게 펼치려고 힘을 쏟기

9. 아직 잔재가 남았지만 곧 사라질 형식적 권위주의

10. 아이와 영어책을 읽다가 영어 문장의 차림을 짚어 봄

11. 낱말의 뜻을 또렷하게 알아야 할까?

12. 말의 바탕치와 짜임새를 살펴보는 일

13. 말의 쓰임새와 펼침새를 살펴보는 일

14. 논쟁 승리와 진리 추구 그리고 권위주의 청산

15. 사람들이 배우고 쓰는 낱말의 유기체스러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