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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Feb 06. 2024

자기 잣대에 따라 말을 골라 쓰는 바탕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최봉영 선생님의 페북 글《한국의 지식인과 얼치기 낱말》중에서 '4. 사람들이 배우고 쓰는 낱말'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다발말[1]중 <한국말 낱말 다시 분류하기: refactoring>까지 묻고 따지지 못한 내용을 풀어 보는 글입니다.


알뜰한 낱말과 허접한 낱말

지난 글에서 '알뜰한 낱말과 허접한 낱말과 얼치기 낱말' 단락을 모두 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계속합니다.

알뜰한 낱말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어떤 것에서 볼 수 있는 몸통을 가리키는 알뜰한 낱말로서 ‘불’, ‘돌’, ‘해’, ‘달’, ‘별’, ‘풀’, ‘나무’, ‘벌’, ‘나비’, ‘개’, ‘돼지’, ‘사람’, ‘몸’, ‘머리’, ‘마음’, ‘잣대’, ‘길이’, ‘넓이’, ‘무게’, ‘부피’와 같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어떤 것에서 볼 수 있는 꼴됨이나 일됨 따위를 풀어주는 알뜰한 낱말로서 ‘물다’, ‘불다’, ‘오다’, ‘가다’, ‘반갑다’, ‘어질다’, ‘모질다’, ‘무겁다’, ‘싱겁다’, ‘힘겹다’와 같은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낱말에 있는 앛씨말(어근/어간)의 바탕을 알고서 뜻을 차리면 알맹이가 들어차 있는 알뜰한 낱말이 된다. 

알뜰한 낱말은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합니다. 몸통을 뜻하는 낱말과 꼼됨이나 일됨 따위를 풀어주는 낱말이 있다고 합니다. <말과 마디말에 대하여>에서 다룬 '몸통것'과 '풀이것' 구분이 생각납니다.


이제 허접한 낱말입니다.

허접한 낱말은 사람들이 어떤 낱말에 들어 있는 앛씨말(어근/어간)의 바탕을 흐릿하게 알고서 뜻을 허접하게 차린 낱말을 말한다. 사람들이 어떤 낱말에 들어 있는 앛씨말(어근/어간)의 바탕을 알지 못하고 그냥 뜻을 엉성하게 알아서 차리면 알맹이가 흐릿한 허접한 낱말이 된다. 

허접한 낱말을 만드는 행위의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바탕을 흐릿하게 아는 일'이 한 가지이고, 다른 하나는 엉성하게 혹은 허접하게 차리는 일입니다.

허접한 낱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알뜰한 낱말이 갖고 있는 바탕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면 허접한 낱말이 된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반갑다’, ‘어질다’, ‘모질다’, ‘싱겁다’, ‘힘겹다’와 같은 말을 쓰면서도 ‘반+갑다’, ‘어+질다’, ‘모+질다’, ‘싱+겁다’. ‘힘+겹다’에 들어 있는 바탕치를 알아보지 못한 상태에서 그냥 되는대로 배우고 쓰면 알맹이가 흐릿한 허접한 낱말이 된다. 


얼치기 낱말

이제 얼치기 낱말입니다.

끝으로 얼치기 낱말은 사람들이 어떤 낱말에 들어 있는 앛씨말(어근/어간)의 바탕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들여온 말로써 바탕을 삼은 낱말을 말한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물’, ‘불’, ‘해’, ‘달’, ‘누리’, ‘반갑다’, ‘고맙다’, ‘배우다’와 같은 낱말이 갖고 있는 바탕을 알지 못하게 되자, 이런 낱말을 알맹이를 갖지 않은 껍데기 낱말로 여기면서 그 속에 중국말이나 영국말 따위로 알맹이를 채워서 뜻을 알아본다. 

감춰진 신비를 알게 되는 기분입니다.

사람들은 물, 불, 해, 달, 별, 누리, 반갑다, 고맙다와 같은 낱말의 바탕을 알지 못하면 ‘물’의 뜻을 ‘水’로, ‘불’의 뜻을 ‘火’로, ‘해’의 뜻을 ‘日’로, ‘달’의 뜻을 ‘月’로, ‘별’의 뜻을 ‘星’으로, ‘누리’의 뜻을 ‘世上’으로, ‘반갑다’의 뜻을 ‘Nice to meet you’로, ‘고맙다’의 뜻을 ‘感謝하다’로, ‘배우다’의 뜻을 ‘學習하다’나 ‘learn’으로 알맹이를 채워서 알아본다. 그들은 ‘물’이 ‘물다(무엇을 물어주는 일)’와, ‘불’이 ‘불다(무엇이 불어나는 일)’와, ‘해’가 ‘하다(무엇을 하게하는 일)’와, ‘달’이 ‘달다(무엇을 달게 하는 일)’와, ‘누리’가 ‘누르고 눌리다(무엇이 누르고 눌리는 일이 일어나는 곳)’와 ‘반갑다’가 ‘반쪽과 같다(하나의 우리를 이루고 있는 나의 반쪽이 되는 일)’와 ‘고맙다’가 ‘고가 되다(무엇이 나를 하나의 고가 되게 하는 일)’와 ‘배우다’가 ‘배게 하다(내가 무엇을 몸과 마음에 배게 하는 일)’와 바탕을 같이 하는 낱말임을 알지 못한다.

국어 교육의 한계를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가 분명해지는 느낌입니다. 끝까지 묻고 따져서 푸는 선생님이 없어 직업 교사들만 넘쳐 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 전에 의욕 있는 선생님들을 좌절에 빠트리는 교육부의 무능한 공무원들이 배후에 있음을 말할 것도 없습니다.


자기 잣대에 따라 말을 골라 쓰는 바탕

사람들은 이와 같은 낱말의 갈래를 바탕으로 저마다 낱말을 살피고 골라서 생각을 펼친다. 이런 까닭으로 어떤 이는 터박이 낱말에 이끌리는 반면에 어떤 이는 뜨내기 낱말에 이끌리고, 어떤 이는 생겨난 낱말에 이끌리는 반면에 어떤 이는 들여온 낱말에 이끌리고, 어떤 이는 알뜰한 낱말에 이끌리는 반면에 어떤 이는 얼치기 낱말에 이끌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의 잣대를 좇아서 낱말을 살피고 골라서 갖가지로 끊임없이 생각을 펼쳐나간다.  

덧불일 말이 없네요.


주석

[1]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연재

1. 마주해야 보인다, 본 것에 마음이 가면 녀긴다

2. 정신을 차리고 터박이 바탕 낱말을 또렷하게 따져 묻기

3. 말의 바탕치, 짜임새, 쓰임새, 펼침새 따위를 살피다

4. 속말과 말차림: 대화에서 얻은 보물

5. 임자인 사람은 살리고 그 결과는 크다

6. 말과 마디말에 대하여

7. 개념의 구성 요소: 원칙, 생각, 믿음

8. 생각을 또렷하게 펼치려고 힘을 쏟기

9. 아직 잔재가 남았지만 곧 사라질 형식적 권위주의

10. 아이와 영어책을 읽다가 영어 문장의 차림을 짚어 봄

11. 낱말의 뜻을 또렷하게 알아야 할까?

12. 말의 바탕치와 짜임새를 살펴보는 일

13. 말의 쓰임새와 펼침새를 살펴보는 일

14. 논쟁 승리와 진리 추구 그리고 권위주의 청산

15. 사람들이 배우고 쓰는 낱말의 유기체스러움

16. 낱말은 덩어리가 아니라 인수분해 하면 또렷해진다

17. 한국말 낱말 다시 분류하기: refacto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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