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최봉영 선생님의 페북 글《한국의 지식인과 얼치기 낱말》중에서 '5. 지식인과 낱말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다발말[1]에 대해 묻고 따져서 풀어 보는 글입니다.
01.
‘지식인’이라고 말할 때, ‘지식(知識)’은 사람들이 좋게 여기고, 낫게 여기고, 값지게 여기고, 뛰어나게 여기는 지식을 가리키고, ‘인(人)’은 어떤 무리에 속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식인’은 사람들이 좋게 여기고, 낫게 여기고, 값지게 여기고, 뛰어나게 여기는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을 낱으로 또는 무리로 일컫는 말이다.
지식인은 사람들이 좋게 여기고, 낫게 여기고, 값지게 여기고, 뛰어나게 여긴다고 합니다. 과연 그런가 질문을 던졌다가 깨닫습니다. 그것은 제가 딱히 지식인이 누구인가 따져 묻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02.
사람들이 누구를 ‘지식인’이라고 할 때, ‘지식인’은 누가 가진 자격을 나타낸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지식인’을 ‘일정한 수준의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이거나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으로 말하는 것이 것이다. 그런데 누구를 ‘지식인’으로 일컫는 잣대는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아서, 그때그때마다 달라질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풀이가 앞선 다발말에 비해 쉽게 받아들여집니다. ‘지식인’이라는 범주가 워낙 포괄적이라 잣대가 하나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배우고 쓰는 낱말의 유기체스러움을 생각해 보면 그때그때마다 달라지는 지식인의 정의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음 다발말은 숨겨진 진짜 바탕을 보는 느낌을 줍니다.
03.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지식은 시대나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 조선시대에 사람들이 뛰어난 지식인으로 받들던 이들이 갖고 있던 지식 가운데 많은 것은 오늘날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갖고 있는 지식보다 뒤지거나 초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식만 비교해서 조선시대에 뛰어난 지식인으로 알려진 이들이 지식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식인은 무엇에 대해서 아는 것을 꿰어서 차려내는 힘을 가진 이들을 말한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포기말[2]이 번뜩입니다.
지식인은 무엇에 대해서 아는 것을 꿰어서 차려내는 힘을 가진 이들을 말한다.
다음 다발말도 술술 읽힙니다.
04.
지식인은 사람들이 좋게, 낫게, 값지게, 뛰어나게 여기는 지식을 갖기 위해서 지식을 갖추는 일에 힘을 기울인다. 그런데 그들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갖가지 낱말의 뜻을 또렷하게 알아서 차리는 일로써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그들이 무엇에 대한 지식을 갖는 일은 무엇을 가리키는 어떤 낱말의 뜻을 묻고 따지고 푸는 일을 통해서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알아서 차려내는 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박문호 박사님의 영상에서 배운 '결정적 지식'이라는 개념이 절로 떠오릅니다.
05.
누가 어떤 성격의 지식인인지 알아보려면 어떤 낱말을 어떻게 배우고 쓰는지 살펴보면 된다.
먼저 어떤 지식인이 좋아하는 낱말의 갈래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어떤 이는 터박이 낱말을 좋아하는 반면에 어떤 이는 뜨내기 낱말을 좋아하는 것이라든지, 어떤 이는 생겨난 낱말을 좋아하는 반면에 어떤 이는 들여온 낱말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것을 살펴보면 어떤 지식인이 가진 성격이 잘 드러날 수 있다.
다음으로 어떤 지식인이 낱말의 뜻을 어떤 방식으로 알고 쓰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어떤 이는 낱말의 뜻을 묻고 따져서 알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에 어떤 이는 낱말의 뜻을 그냥 되는대로 알고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좋아하는 낱말의 갈래에 따라서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지난 글인 <자기 잣대에 따라 말을 골라 쓰는 바탕>에서 다룬 내용을 다시 보는 느낌입니다.
첫째로 지식인이 갖고 있는 터박이 낱말과 얼치기 낱말에 대한 태도이다.
지식인 가운데 터박이 낱말에 이끌리는 이들은 터박이 낱말이 가진 바탕과 내력을 밝혀서 쓰는 일에 관심을 갖는 반면에 뜨내기 낱말에 이끌리는 이들은 뜨내기 낱말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쓰임새를 앞질러 쓰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
새로운 쓰임새를 앞질러 쓰는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지식인이 갖고 있는 짜임새 낱말과 덩어리 낱말에 대한 태도이다.
지식인 가운데 짜임새 낱말에 이끌리는 이들은 낱말이 가진 짜임새를 밝혀서 쓰는 일에 관심을 갖는 반면에 덩어리 낱말에 이끌리는 이들은 덩어리 낱말이 가진 단순한 쓰임새를 편하게 가져다 쓰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
지식인들도 짜임새 낱말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덩어리 낱말이 가진 단순한 쓰임새를 편하게 가져다 쓰는 일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셋째로 지식인이 갖고 있는 생겨난 낱말과 들여온 낱말에 대한 태도이다.
지식인 가운데 생겨난 낱말에 이끌리는 이들은 안에서 생겨난 낱말이 가진 까닭과 바탕을 밝혀서 쓰는 일에 관심을 갖는 반면에 들여온 낱말에 이끌리는 이들은 밖에서 가져온 낱말이 가진 선진의 권위를 빌려서 쓰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 탓인지 선진의 권위에 대한 의존은 조선시대 못지않습니다. 한편으로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일하는 과정에서 온통 들여온 낱말로만 지식을 익혀 온 영향도 있음을 스스로의 경험에서 알 수 있습니다.
넷째로 지식인이 갖고 있는 알뜰한 낱말과 얼치기 낱말에 대한 태도이다.
지식인 가운데 알뜰한 낱말에 이끌리는 이들은 알뜰한 낱말이 가진 알맹이를 차려서 쓰는 일에 관심을 갖는 반면에 얼치기 낱말에 이끌리는 이들은 얼치기 낱말이 가진 선동 효과나 홍보 효과를 부풀려 쓰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
06.
지식인은 무엇을 묻고 따져서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풀어서 차리는 일에 힘을 기울인다. 그래야 좋고, 낫고, 값지고, 뛰어난 지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지식인은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풀어서 차리는 일보다 낱말을 가지고 재주를 부풀리는 일에 힘을 기울인다. 그들은 이런저런 낱말을 끌어다가 자랑하기, 선전하기, 선동하기, 허물기, 무찌르기 따위를 일삼는다. 그들은 무엇을 묻고 따져서 낱말의 뜻을 풀어서 차리는 일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
내용이 길어져 여기서 끊어야겠습니다. '자랑하기, 선전하기, 선동하기, 허물기, 무찌르기 따위'라는 매듭말[3]을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1]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왜 매듭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정신을 차리고 터박이 바탕 낱말을 또렷하게 따져 묻기
3. 말의 바탕치, 짜임새, 쓰임새, 펼침새 따위를 살피다
6. 말과 마디말에 대하여
10. 아이와 영어책을 읽다가 영어 문장의 차림을 짚어 봄
16. 낱말은 덩어리가 아니라 인수분해 하면 또렷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