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지난 글에 이어 최봉영 선생님이 쓰신 《“너 자신을 알라”》에 대해 묻고 따져 풀어 보는 네 번째 글입니다.
이제 04번 다발말[1]로 이어갑니다.
04.
사람들이 마음의 안에 있는 ‘그것’을 마음의 안에 있는 또 다른 ‘그것’으로 여겨서, “도깨비는 뿔이 하나이다”라고 알아보는 것은 마음의 안에 ‘그것’으로 자리하고 있는 ‘도깨비’와 마음의 안에 또 다른 ‘그것’으로 자리하고 있는 “뿔이 하나이다”를 하나의 줄로 이어서, 내가 “도깨비를 뿔이 하나인 줄로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나는 ”도깨비를 뿔이 하나인 줄로 알아보는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나는 ”도깨비는 뿔이 하나이다“라고 말하게 된다.
'하나의 줄로 이어서'라는 표현이 독특합니다. 늧을 개념으로 안착하기 위해 손때[2]를 묻힙니다. 하나의 줄을 만드는 일이 개념의 일부를 개체로 만드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객체 지향 모델링 경험에서 묻은 용어와 습관이 편향으로 섞였습니다. 이렇게 하고 보니 '것'이라는 덩어리를 부르는 말을 몸통것과 풀이것으로 나눈 이유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하 형태로 시각화하고 보니, 최봉영 선생님이 한국말에서 어떤 개념의 속성을 하나의 점으로 묘사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해서 선생님의 글을 봅니다.
사람들이 마음의 안에 있는 ‘그것’을 마음의 안에 있는 또 다른 ‘그것’으로 여겨서, ”그것은 그것이다“라고 알아본 것을 ‘그-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그-것이’는 제가 익숙한 표현으로 바꾸면 '객체의 속성 대응'입니다. 재밌네요.
사람들이 마음의 안에 있는 ’그것‘을 마음의 안에 있는 또 다른 ’그것‘으로 여겨서, ”그것은 그것이다“라고 알아보는 ’그-그-것‘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갈래는 몸소 꾸미는 그-그-것으로 ’나-그-그-것‘입니다. 상상이나 기억의 작용이라 느껴집니다.
첫째로, 내가 마음의 안에 있는 ’ 그것‘을 마음의 안에 있는 또 다른 ’그것‘으로 여겨서, ”도깨비는 뿔이 하나이다“와 같이 알아보고서, 마음에 그러한 것으로서 알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내가 몸소 꾸며서 알고 있는 ’그-그-것‘을 ’나-그-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 갈래는 남에게 듣거나 배우는 '그-그-것'으로 ’너-그-그-것‘입니다.
둘째로, 네가 마음의 안에 있는 ’그것‘을 마음의 안에 있는 또 다른 ’그것‘으로 여겨서, ”도깨비는 뿔이 하나이다”와 같이 알아본 것을, 내가 너에게 듣고서 마음에 그러한 것으로서 알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내가 너에게 듣고서 알고 있는 ’그-그-것‘을 ’너-그-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 갈래는 두 번째와 또 혼선이 느껴집니다. 선생님의 분류 방식을 제가 잘 이해 못 한다고 느낍니다.
셋째로, 그가 마음의 안에 있는 ’그것‘을 마음의 안에 있는 또 다른 ’그것‘으로 여겨서, “도깨비는 뿔이 하나이다”와 같이 알아본 것을, 내가 그에게 듣고서 마음에 그러한 것으로서 알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내가 그에게 듣고서 알고 있는 ’그-그-것‘을 ’그-그-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보니 2인칭과 3인칭 구분 같은데, 듣는 순간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 의문입니다.
드디어 마지막 다발말입니다.
내가 나의 본바탕을 알아보는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격언을 실천하는 첫 번째 방법이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내가 나의 마음에 들어있는 알음알이가 어떠한 바탕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나의 마음에 들어있는 알음알이를 '이-그-것'과 '그-그-것'으로 나누고, 이것을 다시 '나-이-그-것', '너-이-그-것', '그-이-그-것', '나-그-그-것', '너-그-그-것', '그-그-그-것'으로 나누어서, 낱낱의 알음알이가 어떠한 바탕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나의 마음에 들어있는 알음알이의 바탕을 또렷하게 알아볼 수 있게 된다.
매우 정교한 인수분해네요. 지난 강학회 텍스트를 보고 썼던 글들이 수두룩하게 떠오릅니다. 제가 14편의 글을 마치고 나서, 선생님의 수많은 풀지 않은 글 중에서 《“너 자신을 알라”》을 찍은 이유는 늧으로 존재해서 몰랐을 뿐 단순히 우연은 아니었군요.
두 번째 방법이 더 와닿습니다. 그렇게 느끼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내가 누구를 위해서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일을 하려고 하는지 마음의 기틀을 살펴보는 일이다. 나는 내가 저만을 위하고자 하는지, 저들만 위하고자 하는지, 저들까지 위하고자 하는지, 남까지 위하고자 하는지, 것까지 위하고자 하는지 마음의 기틀을 살펴봄으로써, 내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일을 벌이는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인생책인 <대체 뭐가 문제야>를 읽으면서 '누구들의 문제인지?'를 묻는 훈련을 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최근 자주 인용한 욕망 벤다이어그램 때문이죠. 이 둘에 대해 궁금한 독자님들은 <사람됨의 줏대 : 주관(主觀)>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드디어 마지막 포기말[3]입니다.
나는 마음에 들어있는 알음알이의 바탕이 어떠한 것인지 알아보는 일과 내가 누구를 위해서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일을 하고자 하는지 알아보게 되면, 내가 나의 본바탕을 알아보는 일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 또렷이 알아갈 수 있다.
다음 그림은 지금 이 순간에는 지도처럼 여겨집니다. 글을 썼으니 한번 기회를 포착하면 이 그림을 열어 두고 나의 본바탕을 알아보는 일을 해볼 참입니다.
[1]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학습법과 창의성 모두 기억이 핵심이다>에서 인용한 박문호 박사님의 말, '내 감정의 손때를 묻히라는 겁니다'에서 유래합니다.
[3]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정신을 차리고 터박이 바탕 낱말을 또렷하게 따져 묻기
3. 말의 바탕치, 짜임새, 쓰임새, 펼침새 따위를 살피다
6. 말과 마디말에 대하여
10. 아이와 영어책을 읽다가 영어 문장의 차림을 짚어 봄
16. 낱말은 덩어리가 아니라 인수분해 하면 또렷해진다
17. 한국말 낱말 다시 분류하기: refactoring
20.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
21. 사람들이 한국말로써 무엇을 어떤 것으로 알아보는 일
22. 마음에 들어있는 온갖 것들의 바탕을 알아가는 일
23. 나의 마음에 들어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