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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Feb 20. 2024

머리로 알고 마음으로 믿고 용기를 내어 몸으로 행한다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지난 글에 이어서 최봉영 선생님의 《나도 알 수 없는 내 마음》을 묻고 따져 풀어보는 글입니다.


머리로 알고 마음으로 믿는다

02번 다발말[1]을 다룰 차례입니다.

02.
사람은 머리로 알고 있는 어떤 것이 실제로 그러하다고 녀길 때, 그것을 마음으로 믿게 된다. 이를테면 사람이 자전거를 배우는 경우에 머리로 안다는 것은 그가 자전거를 어떻게 타는 줄 아는 것을 말하고,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그가 자전거를 어떻게 탈 수 있다고 믿는 것을 말한다. 자전거를 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자전거를 타는 일을 당연하게 여겨서 그렇게 하려고 할 것이다.  

'머리로 알고 마음으로 믿는다'는 대응은 꽤 마음에 듭니다. 더불어 마음으로 믿는다는 일이 '줏대와 잣대'와도 연관이 있겠구나 싶습니다. 그래서 제 글 중에서 관련 내용을 찾다가 <사람됨의 줏대 : 주관(主觀)>에서 다음 다발말을 발견합니다.

살림살이의 임자인 사람들은 저마다 사람됨의 줏대를 갖고 있다. 사람은 사람됨의 바탕인 인성을 밑천으로 삼아서 온갖 것을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일을 꾀하면서 저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고, 즐거워하거나 괴로워하는 나름의 줏대를 갖게 된다. 사람은 나름의 줏대를 좇아서 가질 것과 버릴 것, 가까이할 것과 멀리할 것, 받아들일 것과 물리칠 것 따위를 가려서 다스리게 된다.


믿음이 판단의 바탕을 이룬다

다음 다발말의 문맥에서 만난 '믿음'은 단어만으로 따로 만나는 '믿음'과는 느낌이 굉장히 다릅니다.

03.
사람이 어떤 것을 아는 것은 그냥 아는 것에 그칠 수 있지만 어떤 것을 믿는 것은 실제로 그러하다는 것을 바탕에 깔고 있다. 사람이 무슨 일을 꾀하는 것은 실제로 그러하다는 믿음이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이 어떤 것을 믿는 것은 어떤 것을 꾀하는 일의 바탕이 된다.

아는 것에서 그친다는 말은 믿음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말일까요? 앞서 줏대와 잣대를 떠올리며 찾아본 글 중에 <줏대와 잣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기>도 있습니다. 그 내용 중에서 '임자의 줏대는 축적된다'는 제 주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글에서 인용한 <왜 기억을 해야 되는가?>에서 배운 뇌과학 지식도 따라옵니다.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믿음을 지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 기억이 만든 현상적 세계는 실제 세계가 아니다

많이들 알다시피 기억은 왜곡됩니다. <현상적 세계와 물리적 세계를 구분하기>에서 다룬 대로 내 기억이 만든 세계는 현상적 세계로 일종의 가상 세계입니다. 다른 사람도 똑같이 느끼고 감각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란 것이죠. 알고 나면 당연한 듯한데, 알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 같습니다.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이 비유하는 현상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꾀함과 사명

꾀함이라는 낱말을 보니 다발말에서 관심이 벗어나서 최근에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난 Kent Beck의 사명이 떠오릅니다.

04.
무엇을 믿는 것에서 무엇을 꾀하는 힘이 생겨난다. 사람은 무엇을 꾀할 수 있는 힘을 용기라고 부른다. 사람이 용기를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몸으로 꾀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의 사명은 저에게 굉장한 영향을 끼친 듯합니다. 어쩌면 번역을 하도록 이끌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번역서의 부록에 이를 넣기도 했습니다.

이번 글은 꾀함과 사명이라는 말들의 바탕을 푸는 일로 마쳐야겠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꾀하다'의 풀이를 보다가 자연스럽게 ''의 풀이로 나아갔습니다. 풀이가 좀 심심해서 제 스타일로 손때[2]를 묻혔습니다.

꾀의 뜻을 보면 꾀하다의 풀이가 보입니다. 묘한 생각을 수단으로 삼아서 일을 꾸미거나 해결하는 일이라는 사실이 그대로 보입니다.


믿음이 만들어 주는 용기

다음 포기말[3]은 멈춰서 돌아보게 하는 울림을 줍니다.

사람은 무엇을 꾀할 수 있는 힘을 용기라고 부른다.

용기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몇 가지 사건들이 떠오릅니다.


몇 년 전 술자리의 일입니다. 끊임없이 뭔가 꾀하는 저에게 한 지인이 용기 있다고 했을 때, 꾀함과 용기가 무슨 관계인지 의아해했습니다. 이제는 알겠네요.


그리고, '용기'를 키워드로 제 글 검색을 하다가 <저는 의지를 믿지 않습니다>에서 '아기 발걸음'이란 말이 용기를 만드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제 행동 양식도 발견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제대로 하려는 욕심을 다스리고, 대신에 잽을 한 대 맞고 시작해도 좋다는 용기를 훈련했다.

그런 용기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첫 번째 포기말에 답이 있습니다.

무엇을 믿는 것에서 무엇을 꾀하는 힘이 생겨난다.

저는 용기에 대해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이를 테면 독립운동은 저에게 경외하는 수준의 용기의 상징입니다. 제가 행하는 용기 뿐 아니라 제가 행하지 못하는 그런 무모할 정도의 용기도 결국은 믿음에서 나오겠죠.


임자와 사명

마지막으로 사명(使命)을 풀어 봅니다.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는 두 갈래입니다.

「1」 맡겨진 임무.
「2」 사신이나 사절이 받은 명령.

영어의 mission 풀이도 한자어와 비슷하게 왕이나 신과 같은 절대자가 부여한 임무를 나타냅니다. 스스로를 임자로 두면 누군가의 지시를 따르는 듯한 어감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델을 떠올려서 우리의 현실을 숲의 관점에서 보면 신을 믿지 않는 저 역시 사명이란 표현의 어감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티어의 빙산 의사소통 모델입니다. 우리는 우리 행동의 바탕을 온전히 알고 무언가 행하지 못합니다.

두 번째는 최봉영 선생님의 일명 '욕망 그림'입니다. 선생님은 '말과 문명 세계와 자연 세계'라고 이름을 붙이셨지만, 저는 그보다는 욕망을 중심으로 파동처럼 나와 연결된 세계를 표현한 그림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펼쳐짐 속에서 우리는 믿고 용기를 내어 꾀합니다.


주석

[1]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학습법과 창의성 모두 기억이 핵심이다>에서 인용한 박문호 박사님의 말, '내 감정의 손때를 묻히라는 겁니다'에서 유래합니다.

[3]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연재

1. 마주해야 보인다, 본 것에 마음이 가면 녀긴다

2. 정신을 차리고 터박이 바탕 낱말을 또렷하게 따져 묻기

3. 말의 바탕치, 짜임새, 쓰임새, 펼침새 따위를 살피다

4. 속말과 말차림: 대화에서 얻은 보물

5. 임자인 사람은 살리고 그 결과는 크다

6. 말과 마디말에 대하여

7. 개념의 구성 요소: 원칙, 생각, 믿음

8. 생각을 또렷하게 펼치려고 힘을 쏟기

9. 아직 잔재가 남았지만 곧 사라질 형식적 권위주의

10. 아이와 영어책을 읽다가 영어 문장의 차림을 짚어 봄

11. 낱말의 뜻을 또렷하게 알아야 할까?

12. 말의 바탕치와 짜임새를 살펴보는 일

13. 말의 쓰임새와 펼침새를 살펴보는 일

14. 논쟁 승리와 진리 추구 그리고 권위주의 청산

15. 사람들이 배우고 쓰는 낱말의 유기체스러움

16. 낱말은 덩어리가 아니라 인수분해 하면 또렷해진다

17. 한국말 낱말 다시 분류하기: refactoring

18. 자기 잣대에 따라 말을 골라 쓰는 바탕

19. 한국인에게 지식인(知識人)은 누구인가?

20.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

21. 사람들이 한국말로써 무엇을 어떤 것으로 알아보는 일

22. 마음에 들어있는 온갖 것들의 바탕을 알아가는 일

23. 나의 마음에 들어있는 것

24. 알아보기는 머리가 마음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일

25. 객체의 속성 대응 그리고 내가 나의 바탕을 알아보는 일

26. 알음알이:늧으로 느끼거나 말로 녀겨서 갖가지로 아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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