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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Feb 20. 2024

괴짜(Geek, Nerd), 해커 그리고 덕후

말이 말을 걸어 글로 쓰는 이야기

막바지 번역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만난 다발말[1]이 다시 말을 걸어 글을 씁니다.

나중에 그의 사명을 확인했습니다. 저자의 말에 나오듯 그의 사명은 괴짜들이 세상을 안전하다고 느끼도록 돕는 일입니다. 그의 관점에서 저는 괴짜였습니다. 켄트 벡의 메시지를 받고, 그가 말하는 안전함을 저도 느꼈습니다. 번역에 능하지 못하더라도 소프트웨어 설계 괴짜로서 제가 하려는 일의 가치를 그가 알아볼 테고, 심지어 그를 도울 테니까요.


Geek과 괴짜

사실 이 책을 번역하기로 마음먹기 전까지 '괴짜'란 단어는 잘 쓰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Kent Beck의 사명에서 기인한 영어 단어이니 Geek입니다.

geek의 뜻부터 찾아보겠습니다. 위키피디아 정의 일부입니다.

The word geek is a slang term originally used to describe eccentric or non-mainstream people; in current use, the word typically connotes an expert or enthusiast obsessed with a hobby or intellectual pursuit. In the past, it had a generally pejorative meaning of a "peculiar person, especially one who is perceived to be overly intellectual, unfashionable, boring, or socially awkward".

마지막 영어 포기말[2]을 읽을 때 느낌은 '괴짜'란 단어가 딱 잘 어울립니다. 그럼 이번에는 '괴짜(怪짜)'의 뜻을 찾아볼까요?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는 빈약하네요.

「1」 괴상한 짓을 잘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세부사항에 집착하는 괴짜 그리고 직업의식

한편, 처음에 인용한 글에서 '소프트웨어 설계 괴짜'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글은 제가 쓴 글입니다. 오랜 소프트웨어 설계 경험이 있지만, 실무에서 쓰지 않는 경우가 많은 요즘에도 관심을 버리지 않는 저를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던 차에 번역을 하며 배운 것입니다.


다음은 책의 추천 서문(forward)을 쓴 래리 콘스탄틴의 다발말을 번역한 내용입니다.

이론적으로 보면, 이론과 실제 사이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차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 명언은 요기 베라나 알버트 아인슈타인, 그리고 다른 이들의 말로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오직 괴짜처럼 말을 다루는 사람만이(저 역시 낱말 괴짜임을 시인합니다.) 그 올바른 출처가 예일 문학잡지 1882년 판에 쓴 예일 학생이었던 벤자민 브루스터의 글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QuoteInvestigator.com에서 활동하는 헌신적인 낱말 괴짜들 덕분에 여기서 독자들에게 괴짜스런 내용을 자신 있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세부 사항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데 달려 있는 일종의 직업의식입니다.

번역이 아니라면, 대충 지나쳤을 특정 문장이 누가 먼저 말한 것인지에 대한 문장을 제대로 번역하려고 거듭 다루면서 제 취향이라는 울타리를 허물고, 관심 밖의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소프트웨어 설계 전문가로 일할 때 익히고 여전히 지니고 있는 직업의식은 세부사항에 집착하는 괴짜적인 경향을 나에게 심어 주었구나 하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일민 형을 볼 때마다 느꼈던 일종의 결벽증 같이 보이던 것을 뭐라 불러야 할지 몰랐는데, geeky였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어떤 측면에 대입하면 저도 그런 모습을 지니고 있다죄는 사실이고, 더 놀라운 사실은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는 점입니다.


긍정적으로 재해석 중인 Geek 그리고 Nerd

Geek에 대한 위키피디아 정의 중에서 생략한 내용이 있는데, 다음 포기말입니다.

In the 21st century, it was reclaimed and used by many people, especially members of some fandoms, as a positive term.

과거에는 부정적인 어감이었던 말이 이제는 점차 긍정적인 쓰임새를 얻어가는 모양입니다. 그 출처 중에 눈에 띄는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BBC 뉴스의 Are 'geek' and 'nerd' now positive terms? 인데요. 왜냐 하면 앞서 인용한 래리 콘슨탄틴의 다발말에서는 괴짜스러움을 나타날 때 또 다른 영어 낱말 nerdy를 썼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제미나이[3]의 요약을 사용합니다.

위키피디아에서 nerd 풀이도 찾아봅니다. Geek과 마찬가지로 긍정적으로 재해석되는 내용과 전통적인 정의 뒤에 이어집니다.


그리고 해커의 재해석

괴짜라는 말에 대해 알아갈수록 별개의 사건으로 일어난 박성철 님의 인터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들었던 말 중에서 '해커'의 정의는 당시 저에게 굉장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안: 굉장한 관점 전환이네요.
박: 그러니까 여기서 해커란 게 보안을 뚫고 정보를 빼내고 하는 일반적으로 쓰는 의미의 해커가 아니고요. 원래 의미의 해커는 아마추어 컴퓨터 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가 좋고 신기해서 파고들면서 어떻게 써먹으면 재미있고 신기한 일을 할 수 있을지 골몰했던 사람인 거예요.
안: 그렇네요. 해커네요. 그런데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전에는 그 사람들이 재미를 위해서 일했는데, ASP 프로그래머들 같은 경우에는 재미보다는 생업으로 일했다는 점이겠어요.
박: 해커들이라고 무조건 아마추어이기만 한 건 아니에요. 다만 저는 ASP 프로그래머를 통해서 처음으로 해커라는 부류의 사람을 인지한 겁니다. 고급 사용자와 프로그래머를 구분하는 경계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그리고 지금 이 세계에서는 이렇게 컴퓨터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해커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높은 평가를 받아요. 회사에서 뽑으려고 안달하고 경쟁적으로 뽑으려 하는 사람들이 요즘엔 해커인 거예요. 일종의 직업 해커 또는 대중화된 해커라고 할까요.
안: 프로그래밍은 아까 말씀하셨던 대로 점점 고도화되고 있고, 또 거꾸로 그만큼 개인화되고 복잡해지고 있는데, 그 말인 즉 결국 응용에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해커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도움이 되겠네요.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그러면 프로그래머에 대해 이렇게 내린 정의와 프로그래머가 가져야 할 태도는 어떻게 이어지나요?
박: 그러니까, 요즘 우리가 프로그래머라고 부르는 이들 중에서 우대받는 사람이 누구냐, 봤을 때 그게 해커라는 거고요, 그렇다면 지금의 프로그래머들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가 이어지겠죠.

사실 제 관심사 속에서만 놓고 보면 괴짜, geek, nerd, 해커는 거의 같은 느낌을 주는 같은 뜻의 단어들입니다.


그리고 덕후

마지막으로 최근에 이들과 비슷한 뜻으로 자리매김한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덕후'인데요. 이미 <AI 시대에는 수능보다 덕후>를 쓸 때, '오타쿠', '덕질', '덕후' 따위의 단어 뜻을 찾다가 입에 붙인 단어죠. 당시 AI 시대라고 맥락을 깐 이유는 마침 오늘 봤던 페친 님의 글에 나타난 인식과 굉장히 비슷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가 돈을 주며 시키거나 (목사 님이나 천공 등에 의해) 세뇌당하지 않고서는 하지 않는 일을 집요하게 매달려서 (누가 돈을 더 주지지도 않는데) 하는 사람들을 괴짜 혹은 덕후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생성형 인공 지능이 막강한 도구가 됩니다. 그들이 심지어 사회적으로 바뀌고 시장을 잘 활용하겠다고 하면...


주석

[1]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제미나이는 생성형 AI 서비스인 구글 Bard의 새로운 이름이며, <배경 지식이 부족해도 AI 논문을 빠르게 읽는 법>을 쓴 이후에 급격하게 친해져서 습관처럼 쓰는 중입니다.


지난 말이 말을 걸어 글로 쓰는 이야기 연재

1. 질문이 우선하고, 실행이 질문을 만든다

2. 스피노자 대신에 김성근 감독님

3. 야구라는 것으로 인생을 전하기

4. 야신이 말해 주는 자신만의 길

5. 새로운 운칠기삼(運七技三) 활용법

6. 인간에겐 한계가 없다는 걸 모르고 산다

7. 말이 말을 걸어 나의 차림을 돕는다

8. 우울증이란 진단명은 나의 개별성을 뭉갠다

9. 야신이 거북이에게 배운 자신의 프로세스를 만드는 법

10. 속말하지 않고 드러내 기록하고 다듬는 일의 힘

11.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12. 일상에서 만난 낱말 바탕 풀이의 즐거움

13. 바탕이 되는 기본, 바탕을 닦는 기초 그 위에 첨단

14. 다양한 뜻의 그릇 역할을 하는 한국말의 유연성

15. AI 시대에는 수능보다 덕후

16. 일단 공개적으로 시작하면 만나게 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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