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말을 걸어 글로 쓰는 이야기
이 글에 담으려고 하는 사건의 시작은 아이의 질문이었습니다.
아빠, 타이뻬이는 태국에 있는 거죠?
마침 아내가 타이뻬이 여행을 앞두고 있어서, 아내와 함께 아이에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이의 궁금증은 해결되었지만, 아내와 저는 도리에 궁금증이 새겼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왜 '타이뻬이'라고 부르는지 이유로 모르고 그렇게 부르고 있었단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평소 어원을 따지지 않다가 둘이 함께 궁금해진 점도 신기합니다.
일이 벌어지기 1시간쯤 전에 보았던 최봉영 선생님의 글이 떠올라 인용합니다.
한국사람은 <banality of language : 말의 진부성/상투성/상식성>에 매우 깊이 젖어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말의 뜻을 묻고 따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말은 그냥 배우고 쓰면 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사람들은 한국말의 '바탕치'와 '짜임새'와 '펼침새'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매우 많다. 그런데 그들은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에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서 살아간다.
'타이뻬이'라고 할 때 그냥 '뜻이 통한다'는 생각에 뜻을 또렷이, 다시 말해서 바탕까지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은 것이죠.
하지만, 아내의 욕망은 선생님의 글과는 무관합니다. 그 점이 또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머릿속으로 상관관계를 따지다가 인과 관계와 상관관계가 다르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거기서 다시 파생하여, 또 과거 기록을 찾아보니 <데이터 속의 숫자는 함수적으로 바라보라>에서 관련 내용을 찾았습니다.
상관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며, 특히 수많은 외생 변수가 여기저기 떠다니는 현실 데이터 분석에서는 더욱 그렇다.
외생 변수로 아이가 저에게 질문하기 직전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뒤에 다루기로 하고요. <데이터 속의 숫자는 함수적으로 바라보라>에서 눈에 띄는 문구를 발견합니다. '상관관계는 대칭이고, 인과 관계는 비대칭이다'를 문구룰 봅니다. 당시에도 인용한 글이라 제가 쓴 글이지만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속말로 다지 따져 묻다가 명확해졌습니다. 더불어 역사에 대한 통찰도 얻은 듯합니다. 지난주에 쓴 글 속의 그림의 인용합니다. 인과 즉, 까닭과 열매의 얽힘은 시간 혹은 시공간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인과 관계가 비대칭이란 말은 인간은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는 말이고, 역사는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 인과가 만들어진 기록입니다. 뿌듯하네요. 뿌듯함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도 찾아봅니다. 그리고 다시 손때[1] 묻혀 봅니다.
사회, 사물, 사실, 자연 현상, 학문, 책명 따위를 보면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는 언어가 쓰이는 분야를 '단위'처럼 쓰는 '집합론적 사고'[2]를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풀이에서 분야를 막론하고 공통으로 찾을 수 있는 사항이 둘쯤 보입니다.
하나는 변화나 변천과 흥망을 다뤘다는 점인데요. 다시 말해서 시간 위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사실이나 해석을 다뤘다는 점이죠. 제가 '역사'란 말을 들으면 동시에 떠오르는 E.H.Carr의 명언이 절로 떠오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본보기[3]가 전래로 학문으로 발전한 인과 관계가 보인다는 점입니다. :)
다시 '타이뻬이'의 궁금증으로 돌아가 봅니다. 우리 부분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 둘째의 질문은 아래 보이는 사진의 장난감에서 유래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말한 바로 그 이름이 불리는 데에는 또 다른 많은 요인이 작용했죠.
앞서 인용한 분석자 관점에서 보면 실험(문제의 범위) 대상 바깥은 변수를 지칭하는 '외생 변수'가 있습니다.
상관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며, 특히 수많은 외생 변수가 여기저기 떠다니는 현실 데이터 분석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이들이 (어릴 때 저처럼) 국기를 좋아하는 이유로 함께 국기를 보고 그리며 보낸 시간이 있습니다.
더불어 저에게는 습관이 되어 버린 '아이의 자기 주도 학습을 돕는' 순발력도 작용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지지난 주에 가족 여행을 떠났는데 눈이 와서 차량에 유리한 방향으로 제한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경로를 바꿔 예정에 없던 군산으로 향했다가 인근의 금강철새조망대에 들렀습니다. 하지만, 미세먼지 때문인지 철새를 볼 수는 없었고, 아이들이 놀거리가 있었는데 그중 국기를 소재로 한 게임이 좋아 보여서 비슷한 것을 찾아 구매했습니다.
아빠의 순발력은 다시 아이들의 창의력이라는 '외생 변수'를 만납니다. 거기에 또 기존에 집에 있었던 자동차 발사대가 외생 변수로 작용하죠. 자동차 대신 국기를 발사하는 놀이가 형제 사이에서 이틀 넘게 최고의 놀이로 부상합니다.
그러던 중에 아이가 국기 뒷면에 쓰인 수도 이름을 보고 물은 것입니다. 제가 아이들이 어떻게 놀든 신경 쓰지 않고 날아간 국기를 주울 때면 국기만 보여주고 나라 이름과 수도를 묻습니다. 이러한 질문도 외생 변수로 작용을 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쓰는 낱말만큼이나 외생 변수도 유기체적이란 생각을 합니다.
돌고 돌아 다시 아이의 질문에서 나온 부부의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다룹니다. 곱씹어 보니 해답보다는 앞서 글에 쓴 내용이 저에게는 더 유익합니다. 하지만, 아내는 다른 입장이죠. 제가 아이들과 스키장에 갈 때, 이웃 여인네들과 대만을 가기로 했으니까요.
먼저 습관으로 구글링을 하고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올림픽을 계기로 국제적 이름이 '차이니즈 타이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에는 바드[4]가 나을 듯하여 질문해 보니 '북(北)'자가 들어간 수도명과 같았습니다. 지형을 모르니 와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구글맵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더욱 분명해집니다.
위키 백과에서 배운 내용은 쓰지 않았는데, 요약하면 중국의 압력으로 '타이뻬이'라는 수도가 이름을 대신합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강조합니다. 그러니 중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려면 이를 존중해야 하고, 그러면 별도의 국호는 있을 수가 없으니 중국과 구분하여 부를 때는 수도 이름을 전체를 대신할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1] <학습법과 창의성 모두 기억이 핵심이다>에서 인용한 박문호 박사님의 말, '내 감정의 손때를 묻히라는 겁니다'에서 유래합니다.
[2] 구글링 해 보면 필자의 글이 구글 요약으로 나오네요.
[3] 개발자(혹은 프로그래머) 이력 탓에 '인스턴스'라는 말이 먼저 떠올랐지만 최봉영 선생님 영향으로 인문학적 단어로 의도적으로 바꿉니다. <나 혼자 하는 묻따풀 출사표>를 보면 2021년 <본과 보기 문화이론 >를 읽은 기록이 있습니다.
[4] 바드는 생성형 AI 서비스인 구글 Bard를 뜻하며, <배경 지식이 부족해도 AI 논문을 빠르게 읽는 법>을 쓴 이후에 급격하게 친해져서 습관처럼 쓰는 중입니다.
9. 야신이 거북이에게 배운 자신의 프로세스를 만드는 법
11.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